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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마누엘 칼럼] ‘폭식 방송’을 즐기며 지성을 잃어가는 사람들

중앙일보 2018.09.14 00:29 종합 33면 지면보기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지구경영연구원장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지구경영연구원장

요즘엔 버스를 타기가 싫다. 운전석 바로 뒤에 부착된 TV에서 나오는 방송을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방송 내용은 한국 역사에 관한 깊이 있는 프로그램이나 시민들이 알아야 할 중요한 현안에 대한 보도 프로그램이 아니다. 자주 본 것은 미리 준비된 생생한 음식 사진 뒤로 대개는 남성인 출연자가 거대한 만두나 라이스롤 또는 샌드위치를 들고 이를 자신의 입속에 억지로 쑤셔 넣는 것을 보여 주고, 주변에 앉아있는 사람들은 매우 즐거워하는 장면들이 이어지는 무의미한 내용이다.
 

한국 TV에 범람하는 ‘먹방’은
음식 가치 훼손한 기괴한 문화
한국에선 음식 소중히 여기며
욕구 통제와 조절을 중시해 와

이러한 이미지들이 왜 그토록 나를 불쾌하게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공허하고 제멋대로인 쇼 프로그램을 시청하지 않고 동료 시민들과 함께 버스를 탈 권리를 침해당했다고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그 프로그램들은 윤리적 측면에서는 포르노와 다를 것 없는 수준으로 식욕과 뇌간의 본능을 자극한다. 나는 아마도 노골적인 음식 낭비를 그토록 찬양함으로써 시청자들이 음식을 무의미하게 소비하도록 부추기는 것에 불쾌감을 느꼈을 수도 있다. 현대는 사막화의 확산으로 인해 과거 생산력이 높았던 농경지들이 점점 황폐해지고 있으며, 서서히 죽어가고 있는 바다로 인해 식량이 매우 소중해진 시대다. 도처에 굶주리는 사람들이 있다. 이른바 ‘폭식 방송’을 시청하면 이러한 진실을 생각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사람들이 쌀 한 톨과 물 한 방울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도록 해야 한다. 시민들이 폭식을 모방할만하다고 여기게 하는 것은 비윤리적이다. 그 프로그램들은 한국의 전통에서 내가 우수하다고 느끼고 있는 것들, 즉 개인의 근검 절약과 농업 생산에 대해 깊은 존경심을 갖도록 하는 윤리적 의무를 부정한다.
 
나는 그 프로그램의 표면 아래에 잠복해 있는 슬픔에 깊은 연민을 느낀다. 생각 없이 입속에 만두를 쑤셔 넣고 있는 출연자는 영혼 속의 깊은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내가 버스 안에서 보았던, 자신의 스마트폰에 등장하는 비디오 게임·뮤직비디오·의류 사진 또는 음란물을 보면서 정신의 공백을 메우려고 시도하던 많은 사람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임마누엘칼럼 9/14

임마누엘칼럼 9/14

요즘엔 크고 조잡한 음식 사진들이 거의 모든 한국 식당들의 외부를 뒤덮고 있다. 내가 1995년 처음 한국을 방문했을 때만 해도 식당에 그런 사진들이 없었다. 그 당시 한국 여성들은 어디에서 좋은 식재료를 구할 수 있는지, 가족에게 제공할 음식을 어떻게 잘 준비할 수 있는지를 말했다. 그때의 요리 과정은 가족이라는 공동체와 연결된 윤리적 삶의 일부에 속했다.
 
음식을 먹는 것을 오락으로 여기는 이 기괴한 의식은 과거 문화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전통적으로 한국에서는 음식을 구하기가 어려웠고, 결코 음식을 함부로 다루지 않았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뭔가 다른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나는 버스 안에서 한국의 정신세계가 붕괴하고 있음을 목격했다. 한국 사회에서 중시해 온 유교적 덕목은 사라지고 있다.
 
오늘날 우리는 생생한 이미지들로 둘러싸여 있지만, 그러한 이미지들에 본능적으로 반응하는 뇌간 사이에서 산산이 부서진 생기 없고 창백한 현실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 동영상들은 어렵고 곤란한 진실을 전달하거나 전두엽 피질의 논리에 호소하는, 복잡한 윤리를 탐구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 동영상들의 주요 기능은 편도체의 욕망을 자극하는 것이다. 우리는 문자 언어와 표면 아래의 현실에 대한 깊은 이해를 뒤에 남겨둔 상태에서 집단으로 반(反)지성 문화에 깊이 빠져들게 됐다.
 
시민들이 핵전쟁·기후 변화·급격한 부의 집중 등의 위험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이러한 반지성 문화 때문이다. 우리는 현대 사회 분석이나 사적 삶에 대한 과학적 접근 방식을 경시하는 풍조에 빠졌다. 과학기술은 계속 발전하고 있지만, 문명을 발전시키기보다는 오히려 자기 스스로 도덕적 결정을 내리는 능력을 감소시키는 방식으로 우리의 두뇌를 자극하고 있다. 기술적 부가 기능에 의한 정서적 반응이 권장된다.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과학적 접근 방식을 사용할 능력을 잃게 될 경우, 결국 우리 모두 는 길을 잃고 방황하게 될 것이다.
 
전통적으로 한국에서는 시민들이 자신의 욕구를 통제하고 조절할 수 있도록 훈련하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겨왔다. 오늘날 고등교육을 받은 많은 이들이 경박한 장난으로 인해 길을 잃게 된 것을 목격한다. 나는 여기서 ‘과거의 규범을 억압적인 이데올로기가 아닌 도덕적 명령으로 보아야 하지 않는가’라는 생각을 품게 됐다.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지구경영연구원장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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