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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성이 달라 서운하겠다"고 묻던 일본 여성

중앙일보 2018.09.13 15:00
[더,오래] 양은심의 도쿄에서 맨땅에 헤딩(4)
어느 날 한 모임에서 나의 국적과 성(姓)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 갔다.
“일본인과 결혼했으니 남편과 성이 같지?”
“아니야, 나는 원래 성을 써.”
“남편과 같은 성을 쓸 수 없다니 서운하겠다.”
“전혀! 오히려 다행인데.”


결혼한 여성 대부분 남편의 성으로 바꿔
도쿄역 앞에서 웨딩 사진 포즈를 취하고 있는 일본인 예비 신혼 부부. [사진 AP Photo]

도쿄역 앞에서 웨딩 사진 포즈를 취하고 있는 일본인 예비 신혼 부부. [사진 AP Photo]

 
일본에서는 결혼하면 남편이나 아내 어느 한쪽의 성으로 통일해야 한다. 어느 한쪽의 성이라고 하지만, ‘후생성 인구동태 통계 보고’에 따르면 결혼한 여자의 96% 정도가 남편의 성으로 바꾸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나도 당연히 일본 국적일 것이고, 남편 성으로 바꾸었을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종종 있다. 하지만 모든 법적인 서류에 나는 ‘양은심’으로 존재한다. 그 이유는 외국인의 경우 일본인과 결혼해도 국적이나 성은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남편의 성을 따라야 한다는 조항도 없어 한국 이름 그대로 쓰고 남편의 호적엔 ‘배우자’라고 기록돼 있다.
 
지난 7월 18일 도쿄지방법원에서 한 재판이 시작됐다. 부부별성을 꿈꾸며 '사실혼'을 선택했던 커플들이 부부동성을 정한 민법의 규정은 ‘법 아래의 평등’을 보장하는 헌법을 위반한다며 국가와 자치단체를 상대로 소송을 건 것이다.
 
이틀 후 일본의 니혼TV 와이드쇼 스키리(スッキリ)는 최근 증가하고 있는 사실혼에 대한 특집을 내보냈다. 사실혼을 선택하는 이유는 혼인신고를 하게 되면 부부 중 한쪽의 성으로 통일해야 하기 때문이다. 성을 바꾼 사람은 모든 공문서의 성을 바꾸는 처리를 해야 하고, 성이 달라지면 결혼 전의 경력이나 업적이 일시적이라도 단절될 가능성이 있다. 사실혼을 선택할 경우 부부로 인정되기는 하지만 세금혜택 면에서는 불리하다.
 
사실혼도 혼인신고처럼 구청에 신청하면 된다. 세금 문제 이외의 모든 면에서 부부와 같은 처우를 받는다. 신청을 하면 두 사람이 독신인가 확인한 후 사실혼 관계를 인정한다. 내연녀나 내연남이 아니라 ‘부부’가 되는 것이다.
 
사실혼을 선택하는 것은 젊은 사람만이 아니다. 60, 70대 부부도 있다. 특히 서로가 외동아들, 외동딸인 경우 집안의 대가 끊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서로가 본래의 성을 쓰기로 하고 사실혼을 택하기도 한다.


메이지 시대 때부터 부부동성제 채택
휴일을 맞아 우에노 공원을 찾은 사람들. 이 속에 있는 대부분의 가족들은 같은 성을 쓰고 있을 것이다. 부부가 다른 성을 써도 된다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사진 위키백과]

휴일을 맞아 우에노 공원을 찾은 사람들. 이 속에 있는 대부분의 가족들은 같은 성을 쓰고 있을 것이다. 부부가 다른 성을 써도 된다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사진 위키백과]

 
일본의 부부동성제(夫婦同姓制)가 공포·시행된 것은 1898년 메이지 시대였다. 시대가 흘러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부부별성 문제가 논의되기 시작했고, 같은 성으로 통일할지 본래의 성을 쓸지 선택할 수 있게 하자는 '선택적 부부별성 법안'이 국회에 제출되기도 했으나 국회의원들은 통과시키지 않았다.
 
부부별성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부부의 성이 다르면 가족의 일체감이 떨어진다고 걱정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일본은 1875년 성씨 사용을 의무화했고, 1898년 부부동성제를 도입했다. 현재 생존하는 일본 국민은 부부별성 시대를 살아 본 적이 없다. 일본인과 결혼한 후에도 ‘양'이란 본래의 성을 쓰는 나의 경험에서 말하자면 ‘쓸데없는 걱정’이다. 시부모를 포함한 가족들 누구도 나에 대해 위화감을 느끼지 않는다.
 
2002년부터 사실혼 관계를 유지해오고 있는 한 대학교수 부부는 올봄 혼인신고를 하고 남편의 성을 따르기로 했다고 한다. ‘선택적 부부별성제’ 도입을 기다려 혼인신고를 하려 했으나, 2015년 12월 대법원이 ‘부부동성(夫婦同姓)은 합헌’이라는 판결을 내렸기 때문이다. 서로에게 무슨 일이 있을 때 부부로서 법적인 보장을 받기 위해 혼인신고를 결심했다고 한다.
 
부부별성 지지자로 알려진 자민당의 노다 세이코(野田聖子) 의원의 남편은 아내의 성으로 바꾸었다. 부부별성이 인정되면 다시 본래의 성으로 돌릴 예정이라고 한다.
 
부부별성 지지자로 알려진 자민당의 노다 세이코 의원. 노다 세이코 의원의 남편은 아내의 성으로 바꿨다. 부부별성이 인정되면 다시 본래의 성으로 돌릴 예정이라 한다. [중앙포토]

부부별성 지지자로 알려진 자민당의 노다 세이코 의원. 노다 세이코 의원의 남편은 아내의 성으로 바꿨다. 부부별성이 인정되면 다시 본래의 성으로 돌릴 예정이라 한다. [중앙포토]

 
민간에서는 결혼하더라도 결혼 전의 성을 사용할 수 있게 하는 회사가 늘고 있다. 그리고 2017년 9월 1일 일본 정부는, 국가공무원도 결혼 전의 성의 사용을 인정한다고 발표했다. 실제로 2018년 1월, 변호사 출신으로 대법원 판사로 취임한 미야자키 유코(宮崎裕子) 씨는 변호사 시절부터 써 온 결혼 전의 성을 쓰기로 했다고 발표해 뉴스가 되기도 했다.


부부별성제 도입 찬성 42.5%
부부별성제의 도입에 대한 요청은 나날이 커지고 있다. 올  2월 내각부가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선택적 부부별성제를 ‘도입해도 좋다’라고 답한 사람은 42.5%였다. 이것은 과거 최고의 비율이다. ‘성이 다르다는 것이 가족의 일체감에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라고 답한 사람은 62.3%에 달했다.
 
부부는 같은 성을 써야 한다는 법이 시행된 지 120년이 지난 지금. 남녀를 불문하고 부부별성을 선택하게 해 달라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한편, 선택적 부부별성제가 제정되면 본래의 성을 선택하겠냐는 질문에 선뜻 ‘그렇다’라고 말하지 못하는 일본인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습관이라는 것은 무섭다.
 
부부가 다른 성을 쓰는 시대를 살아본 경험이 없는 일본 국민의 선택이 궁금하다.
 
양은심 한일자막번역가·작가 zan32503@nift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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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은심 양은심 한일자막번역가·작가 필진

[양은심의 도쿄에서 맨땅에 헤딩] 일본인과 결혼해 도쿄에 살림을 꾸린지 약 25년. 일본으로의 이주는 성공적이라고 자부한다. 한일자막 번역가이자 작가이며, 한 가정의 엄마이자 아내다. ‘한일 양국의 풀뿌리 외교관’이라는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한국보다도 더 비빌 언덕이 없는 일본에서 그 사회에 젖어 들고, 내 터전으로 만들어가는 이야기를 연재한다.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과 같은 이야기가 독자의 삶에 힌트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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