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제임스 후퍼의 비정상의 눈] 호주의 파머스 마켓 문화

중앙일보 2018.09.12 00:38 종합 31면 지면보기
제임스 후퍼 영국인·JTBC ‘비정상회담’ 전 출연자

제임스 후퍼 영국인·JTBC ‘비정상회담’ 전 출연자

한국이 무더운 여름을 나는 동안 필자가 있는 호주는 이례적으로 건조한 겨울을 보냈다. 호주에서 가장 많은 인구가 거주하고 있는 뉴사우스웨일주 면적의 99%가 가뭄 피해 지역에 들었다. 400년 만의 최악의 가뭄에 일평생 땅을 일구고 가축을 길러온 농부들이 가장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말이 나왔다. 매주 장을 보는 ‘파머스 마켓’에 가니 더욱 피부로 느껴졌다. 한국으로 치자면 지역 5일장이나 민속장 같은 곳이다. 지역 농산물을 생산자가 직접 들고나와서 판다. 고르고 골라 집어 든 당근은 겨우 손가락 크기만큼 자랐고, 자주 구매하던 버터와 치즈의 질도 달라졌다. 초지를 잃은 소들이 제대로 먹지 못하는 탓이다. 5대째 길러오던 오렌지 나무들이 다 죽었다며 실의에 빠진 상인을 보니 덩달아 마음이 안 좋아졌다. 한쪽에서는 농가의 어려움을 함께 하자는 모금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비정상의 눈 9/12

비정상의 눈 9/12

그런데 호주의 파머스 마켓은 단순한 시장이 아니라는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 파머스 마켓은 생산자와 구매자 간의 관계를 구축해주는 시스템이자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호주의 식도락가라면 맛집을 넘어 좋은 생산자들이 모이는 마켓을 꿰고 있다. 그들은 주말이면 파머스 마켓을 찾아 자신의 지역에서 생산된 신선한 재료를 사고 마켓에서 준비한 야외 공연을 보며 피크닉을 즐긴다.
 
마켓을 통해 지역 생산품을 구매하고 지지하는 것의 사회적·환경적 이익들을 인식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마켓의 수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먹거리에 대한 여러 걱정과 관심을 해소해주는 긍정적인 역할도 한다. 마켓이 농촌과 도시를 묶는 고리가 된다는 것도 큰 의미가 있다. 또 소비자가 생산자에게 식재료와 그 생산과정에 대해 직접 물어보면서 자신이 먹는 음식이 어디서 어떻게 왔는지도 이해하게 된다. 이는 소비자의 식품 선택을 도울 뿐 아니라 지속가능한 농산물 생산체계를 구축하는 밑받침이 된다.
 
다행히 호주의 가뭄이 최악의 시기는 지나가고 있는 듯하다. 주말 내내 그토록 기다리던 비가 내려주었다. 호주는 이제 봄이 되어 농부들이 간절한 마음을 담아 씨앗을 심고 있다. 다음 주면 한국은 추석이다. 서로 반대 절기이지만 풍요를 기원하는 마음은 매한가지일 것이다.
 
제임스 후퍼 영국인·JTBC ‘비정상회담’ 전 출연자
공유하기
Innovation Lab
Branded Content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