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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유의 시시각각] 동굴 속 포용국가

중앙일보 2018.09.11 00:21 종합 30면 지면보기
양영유 논설위원

양영유 논설위원

문재인 대통령의 말은 강렬했다. “국민 단 한 명도 차별받지 않고 함께 잘 살아야 한다” “국민의 삶을 전 생애 주기에 걸쳐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 그런 유토피아가 가능할까. 청와대 ‘포용국가 전략회의’(6일)가 던진 의문이다.
 

공단 식당 밥장사도 반 토막 나는데
모두 다 잘사는 유토피아 가능한가

문 대통령의 생각은 오래된 것이다. 대선 때도 고민했다. 포용국가위원회까지 꾸렸다. 성경륭 한림대 교수가 위원장을 맡아 토대를 제공했다고 한다. 노무현 정부의 정책실장을 지낸 그는 “포용성·혁신성·유연성을 바탕으로 고용·경제·복지·교육을 씨줄과 날줄처럼 엮어 모두가 함께 성장하는 것이 포용국가(Inclusive State) 모델”이라고 했다. 포용지치(包容之治)와 포용지참(包容之參)을 양대 전략으로 제시했다. 포용으로 다스리는 포용적 리더십과 국민을 정책에 참여시키는 과정이 필수라는 것이다(『새로운 대한민국의 구상 포용국가』중에서).
 
포용국가는 검증된 이론은 아니다. 정치적·정서적 개념에 가깝다.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최근이다. 미국 MIT대 대런 애스모 글루 교수와 하버드대 제임스 로빈슨 교수가 5년 전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서 포용을 신국부론의 핵심 키워드로 역설한 게 계기였다. “포용적 정치·경제 제도를 가진 나라는 부흥하고, 반대인 나라는 몰락한다”는 논거였다.
 
그런 포용국가가 대한민국의 어젠다가 됐다. 일자리 확충과 노동시장 격차 해소, 기초연금 인상, 고교 무상교육, 지역균형발전을 씨줄과 날줄로 엮겠다는 구상이다. 현장 반응은 어떨까. 인천 남동공단의 식당 아줌마와 근로자는 서민의 애달픔을 모르는 말장난이라고 했다. 공장 임대 현수막이 나붙은 공단을 둘러보던 중 만난 이들이다.
 
“밥장사가 반 토막 났어요. 깜짝 놀란 건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아니라 저희입니다. 지난해까지는 하루 400그릇 나갔는데 지금은 200그릇밖에 못 파니….”
 
장 실장이 놀랐다는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여파가 밥집을 덮친 것이다. 잔업이 줄어들고, 문을 닫거나 감원하는 공장이 많아지니 밥이 안 팔린다는 얘기였다. 양극화도 심각했다. 자동차 부품업체는 그럭저럭 버티지만 영세한 가구·주물 공장은 무너지고 있었다. 50대 근로자는 “직원 10명 중 4명이 그만뒀다. 언제 잘릴지 모르겠다”고 했다. 소득주도 성장의 모순이다.
 
정부는 복지 과속 페달을 밟는다. 문제는 재원이다. 베네수엘라와 아르헨티나가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남미 부국이던 베네수엘라는 최저임금과 무상복지, 공무원 증원에 세금을 퍼붓다 곳간을 거덜냈다. 아르헨티나 역시 연금 수급자를 800만 명으로 배 이상 늘리는 등 퍼주기를 하다 나락으로 떨어졌다. 복지 포퓰리즘의 부메랑이다.
 
우리도 경계해야 한다. ‘울트라 수퍼’로 불리는 내년 예산 471조원 중 복지 비중이 34.5%로 역대 최대다. 현 정부 들어 54조원을 퍼붓고도 성적이 초라한 일자리 창출에 24조원을 더 투입한다. 그러다 보니 2020년부터 3년간 통합재정수지가 31조원 적자에 빠진다. 이게 소득성장과 포용국가의 미래인가.
 
청와대와 여당은 동굴에 갇혀 있다. 끼리끼리 동굴 밖 세상을 좁은 통로로만 본다. 그게 세상의 전부인 양 확증한다. 넓게 멀리 봐야 한다. 공장 근로자와 식당 아줌마, 자영업자를 최저임금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에 눕히고 있는 건 아닌지부터 말이다.
 
국민은 어리둥절해한다. 소득주도 성장도 헷갈리는데 포용국가는 더 낯선 까닭이다. 2020년 총선과 20년 집권용 당의정(糖衣錠) 아니냐는 의혹이 넘실댄다. 불신을 씻으려면 정치적 경쟁자를 끌어안는 협치, 진영을 초월한 인재 등용, 현장의 외침을 듣는 유연성이 필요하다. 동굴을 뛰쳐나와야 한다. 그게 포용의 시작이다.  
 
양영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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