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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불허전 … 아시아 최고 악단의 내공

중앙선데이 2018.09.08 02:00 600호 22면 지면보기
일본 최고의 음악제 ‘세이지 오자와 마츠모토 페스티벌’을 가다
2018 세이지 오자와 마츠모토 페스티벌에서 오자와를 대신해 14년 만에 사이토 키넨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77세의 노장 아키야마 가즈요시(가운데)

2018 세이지 오자와 마츠모토 페스티벌에서 오자와를 대신해 14년 만에 사이토 키넨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77세의 노장 아키야마 가즈요시(가운데)

영국을 대표하는 음악잡지 그라모폰이 2008년 세계 오케스트라 톱20을 매겼다. 유럽과 러시아, 미국 악단들이 독식한 리스트에서 유일하게 19위에 랭크된 아시아 오케스트라가 있었다. 1984년 9월 18일 도쿄 분카 카이칸에서 창단연주회를 가진 사이토 키넨 오케스트라다.  
 
명지휘자 오자와 세이지(小澤征爾·83)와 아키야마 가즈요시(秋山和慶·77)에게 1950~60년대 도호가쿠엔 음악대학에서 지휘법을 가르친 인물이 ‘지휘계의 대부’로 불리는 사이토 히데오(齋藤秀雄·1902~1974)인데, 그를 추앙하는 일본 음악인들이 84년 오자와와 아키야마의 주도 아래 유니크한 오케스트라를 발족시켰다. 사이토를 기념하는 ‘사이토 키넨 오케스트라’다(사이토는 39년 6월 10일부터 16일까지 NHK 교향악단의 전신인 신교향악단을 이끌고 서울 부민관에서 내한공연도 했다).  
 
오자와와 아키야마가 나눠 지휘한 이들의 창단 연주회 실황음반(Fontec)을 들어보면, 이들의 앙상블이 이미 완벽했음을 알 수 있다. 이후 필립스와 독점계약해 내놓은 40여 장의 음반 하나하나가 명반의 반열에 올라 있다.  
 
1992년 나가노현의 중소도시 마츠모토에서 ‘사이토 키넨 페스티벌’이 시작되면서 이들은 비로소 둥지를 틀게 된다. 2010년부터 식도암 투병에 들어간 오자와는 매년 여름 힘겹게 이 페스티벌의 포디엄에 올라 스승을 추모했는데, 2015년 오자와의 팔순을 기념하며 음악제의 간판이 사이토 키넨 페스티벌에서 ‘세이지 오자와 마츠모토 페스티벌’로 바뀌었다.  
 
사이토 키넨 오케스트라, 군더더기 없이 에센스만  
마츠모토 공연예술센터의 로비

마츠모토 공연예술센터의 로비

이들의 실체를 확인하고자 지난달 31일 마츠모토역에 내렸다. 기차역의 에스컬레이터를 내려오던 순간부터 눈 앞에는 오자와 세이지의 지휘 모습이 담긴 거대한 행사 현수막이 시야를 뒤덮었다. 그러나 오자와는 지난 3월 초 식도암 악화로 병원에 후송되면서 올해의 모든 일정을 취소했다. 그를 대신해 팔순을 앞둔 아키야마 가즈요시가 14년 만에 음악제의 포디엄에 올랐다.  
 
도착날 저녁 키세이 분카홀에서 순 프랑스 레퍼토리로 사이토 키넨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노장의 비팅은 간결하면서도 매우 구체적이었다. 1940년 일본 건국 2600주년을 기리고자 일본 정부가 이베르에게 위촉해서 작곡된 ‘축제 서곡’은 현악기의 일사불란한 날씬함이 발군이었다. 오케스트라가 곡예비행을 하는 듯했다.  
 
이어진 드뷔시의 ‘목신의 오후 전주곡’과 라벨의 ‘볼레로’에서는 오자와가 29년간 음악감독으로 봉직한 보스턴 심포니와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에서 플루트 수석을 역임한 자크 존의 플루트 솔로가 빛을 발했다. 후반부의 생상스 교향곡 3번 ‘오르간’은 웅숭깊게 끌고 간 1악장의 깊이와 2악장의 개시와 더불어 켜켜이 겹쳐진 스트링의 밀집된 음의 집합이 허공을 갈랐다. 군더더기 하나 없이 에센스만을 길어올린 오케스트라의 정수를 보여준 명무대였다.  
 
당초 베토벤 교향곡 5번을 지휘하기로 했던 오자와의 공백으로 생상스 ‘오르간’ 교향곡을 지휘한 아키야마의 존재감은 강렬했다. 오자와의 공백을 앞으로도 그가 계속 메워가리라 예상한 것은 끊임없는 커튼콜로 노장을 불러낸 일본 관객들도 마찬가지 아니었을까. 분명히 깨달은 사실은 아시아 악단 중 사이토 키넨 오케스트라를 능가하는 수준의 오케스트라는 현재까지 없다는 것이다.  
 
청소년 오케스트라도 최고 수준
실내악 연주회 4 푸치니 오페라 ‘잔니 스키키’의 한 장면

실내악 연주회 4 푸치니 오페라 ‘잔니 스키키’의 한 장면

다음날 오후 시내에 있는 마츠모토 공연예술센터 메인홀에서 푸치니의 단막 오페라 ‘잔니 스키키’를 감상했다. 1918년 이 작품을 초연한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의 무대감독 데이비드 뉴스가 연출한 정경 하나하나가 1299년 피렌체를 구현하고 있었다. 특히 무대 후경의 배경막은 두오모 성당을 중심으로 하는 피렌체의 시가지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 했다.  
 
62세의 캐나다 국적 일본 지휘자 데릭 이노우에가 지휘한 세이지 오자와 뮤직 아카데미 오케스트라의 앙상블은 청소년 오케스트라임에도 성인 오케스트라를 능가하는 노련함이 돋보였다. 라우레타의 소프라노 안나 크리스티가 부른 ‘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는 명불허전이었다. 그녀와 호흡을 맞춘 잔니 스키키의 바리톤 로베르토 데 칸디아와 리누치오의 테너 프란체스코 데무로, 시모네의 베이스 도나토 디 스테파노를 빼면 모두가 일본인 성악가들이었다. 그럼에도 이들은 일사불란한 앙상블 연기와 가창으로 무대를 압도했다.  
 
아시아 음악제 중 오페라를 매년 무대에 올리는 페스티벌은 이곳이 유일하다. 2013년 같은 무대에 오자와의 지휘로 오른 라벨의 ‘어린이와 마법’ 음반(Decca)은 2016년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오페라부문 최고음반상을 수상했다. 그에 앞서 2011년 페스티벌에서는 한국에서는 초연조차 되지 않은 바르토크의 ‘푸른 수염 영주의 성’을 무대 및 음반화(Philips)하기도 했다.  
 
‘잔니 스키키’가 끝나고 이동한 시 외곽의 더 하모니홀에서 감상한 실내악 연주회는 사이토 키넨 오케스트라 주자들의 비르투오시티를 확인할 수 있는 귀한 무대였다. 실내악 전용홀임에도 무대 정면 상부에 웅장하게 박혀 있는 파이프오르간의 위용이 객석을 압도했다. 전반부의 모차르트와 드뷔시, 레스피기 중 특히 레스피기의 ‘도리아 선법의 현악 4중주’가 절묘한 일사불란함으로 객석의 탄성을 자아냈다. 자크 존이 바이올린 대신 플루트 버전으로 편곡한 후반부의 브람스의 피아노 3중주 Op.8은 자크 존과 그의 부인인 첼리스트 이즈 쉬아의 현란한 연주가 지배한 무대였다. 상대적으로 코다마 모모의 피아노가 윤곽이 뚜렷하지 못해 아쉬운 감이 있었지만, 자크 존은 플루트를 흡사 호른 불듯 매 악상을 긴 호흡으로 유장하게 물들여 갔다. 
 
인구 25만에 불과한 중소도시지만 매년 8월 중순에서 9월 초순까지 3주 동안 마츠모토에는 사이토 키넨 오케스트라와 오페라, 실내악, 마츠모토 시민이 함께하는 야외공연 등 다양한 클래식 연주회가 이어진다. 더구나 오페라극장에 다름없는 5층 발코니 높이의 마츠모토 공연예술센터 메인홀의 위용은 부러운 것이었다. 한국도 어렵다고만 하지 말고 오페라까지 아우르는 수준 높은 이런 음악제를 정례화하기를 갈구해 마지 않는다. 그것이야말로 문화예술대국으로 진일보하는 진정한 문화융성의 길이다.  
 
마츠모토(일본) 
음악칼럼니스트 김승열    
사진 세이지 오자와 마츠모토 페스티벌 · ⓒMichiharu Oku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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