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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구 금메달리스트 백목화의 이유 있는 ‘바리스타 외도’

중앙선데이 2018.09.08 01:00 600호 22면 지면보기
[스포츠 오디세이] 돌아온 서브 퀸
경기도 기흥의 IBK 기업은행 배구단 체육관에서 만난 백목화는 ’패션·요리·여행 등 관심사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다“고 했다. [신인섭 기자]

경기도 기흥의 IBK 기업은행 배구단 체육관에서 만난 백목화는 ’패션·요리·여행 등 관심사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다“고 했다. [신인섭 기자]

국가대표로 아시안게임에 출전해 금메달을 딴 여자배구 선수가 있었다. 1억원 넘는 연봉을 받던 그는 스물일곱 한창 나이에 은퇴를 선언하고 코트를 떠났다. 그는 앞치마를 두르고 커피를 내리는 바리스타가 되었다. 자격증을 딴 뒤 그는 서울 종로구 북촌의 커피하우스에서 일했다. 하루 2교대로 일하고 월급은 200만원 정도였지만 행복했다.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자유로웠다. ‘그래, 빛나는 청춘을 체육관에서 보낼 수만은 없지. 난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한 거야.’
 
손님이 뜸한 오후 5시는 여자 프로배구 경기가 시작하는 시간이었다. 그는 스마트폰으로 TV 중계를 봤다. 아슬아슬한 랠리가 이어지면 저절로 몸이 움찔움찔했다. 그래도 저곳에 다시 갈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몇 개 팀에서 영입 제안이 왔지만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프로배구단 직원들이 커피하우스로 찾아왔다. 그를 간절히 원한다고 했다.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다. ‘그래, 전엔 배구 하나만 보고 달려왔지만 이젠 편하게, 재미있게 할 수 있을 것 같아.’
 
‘서브 퀸’ 백목화(29·IBK기업은행)가 돌아왔다. 2012∼13, 2013∼14 V리그 여자부 서브득점 1위, 2014 인천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의 실력은 녹슬지 않았다. 8월 5일 충남 보령실내체육관에서 열린 KOVO컵 태국 EST와의 경기. 29개월 만에 코트에 나선 백목화는 서브에이스 4개를 포함해 11득점을 올렸다. 배구팬들은 돌아온 ‘화이트 모카’를 기쁘게 맞아주었다.
 
 
커피 내리면서 인생을 배웠죠
 
기업은행 소속으로 코트에 복귀한 백목화. [사진 KOVO]

기업은행 소속으로 코트에 복귀한 백목화. [사진 KOVO]

지난 4일 경기도 기흥에 있는 IBK기업은행 배구단 체육관에서 백목화를 만났다. 왜 한창때 코트를 떠났는지가 가장 궁금했다.
 
“2016년 재계약 당시 소속팀(KGC인삼공사)과 계약 조건이 맞지 않았어요. 슬럼프가 길어진 시기였거든요. 원래 배구를 오래 할 생각이 없었어요. 그 정도면 할 만큼 했다고 생각했죠.”
 
레프트 공격수인 백목화의 키는 1m76cm. 공격수로서 압도적인 키는 아니다. 몸도 호리호리해 폭발적인 강타를 터뜨리는 스타일도 아니다. 그저 성실하고, 수비 좋고, 서브가 뛰어난 선수였다. 공격 패턴이 상대에게 읽히자 스파이크가 번번이 상대 블로킹에 막혔다. 팀 전력도 강하지 않아, 이기는 날보다 지는 날이 더 많았다. 심리적 번아웃(burnout·탈진)이 찾아왔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배구를 시작한 백목화는 당시 대부분 운동선수가 그랬듯이 수업에 거의 들어가지 못하고 운동에만 매달렸다. 호남의 배구 명문인 광주 송원여중-송원여상을 졸업하고 프로배구 현대건설에 입단했다.
 
지난 8월 열린 KOVO 컵에서 스파이크를 터 뜨리는 백목화. [연합뉴스]

지난 8월 열린 KOVO 컵에서 스파이크를 터 뜨리는 백목화. [연합뉴스]

“전 배구도 잘하고 공부도 열심히 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어요. 패션·요리·음악·여행 등 관심 분야는 많았지만 시간이 없었죠. 지금도 공부나 대학 관련 얘기가 나오면 괜히 위축돼요. 잘 모르면서 나섰다가 못 배운 게 들통날까 봐 겁도 나고요.”
 
그는 평소에도 커피 내리는 걸 좋아해 콜롬비아 출신 동료가 커피 머신과 원두를 선물하기도 했다. 2016년 여름, 이탈리아 남부를 여행하던 그는 ‘인생 커피’를 만난다. 그리고 바리스타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북촌 바리스타’ 경험은 어땠을까.
 
“처음 해 보는 일이어서 모르는 게 너무 많았어요. 카드 결제기 사용하는 것도 서툴렀고, 수많은 메뉴와 커피 브랜드에 들어가는 원료 등등 외워야 할 게 너무 많았죠.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외우곤 했습니다. 하다 보니 손도 빨라지고, 운동으로 단련된 집중력과 책임감이 나오더라고요.”
 
인터뷰 전날, 백목화가 일한 커피숍에 들렀다. 함께 일했던 바리스타 정완재(25)씨는 “목화 누나는 일도 잘하고 손님들한테 인기도 많았어요”라고 기억했다.
 
백목화도 “제가 사람 만나는 걸 그렇게 좋아하는 줄 몰랐어요. 매장이 바 형태로 돼 있어서 손님과 얘기를 많이 할 수밖에 없거든요. 단골도 생기고, 옛날 팬들도 많이 찾아왔어요”라고 했다.
 
가장 자신있는 건 ‘오즈의 마술사’라는 핸드드립 커피를 내리는 거다. 백목화는 커피를 내리면서 인생을 배웠고, 자기 또래인 20대가 겪는 아픔에도 공감하게 됐다고 한다. “세상에는 이렇게 다양한 직업이 있구나 하는 걸 알게 됐죠. 요즘 젊은이들이 새로운 일에 도전하기보다는 공무원시험 같이 안정된 직장을 얻는 데 매달린다는 느낌도 받았어요. 그게 안타까우면서도 이해는 되는 게, 결혼도 하고 가정을 유지하려면 안정적인 직장이 필요하니까요.”
 
 
고양이 키우고 뮤지컬·콘서트도 즐겨
 
북촌 커피숍에서 커피를 내리는 모습. [사진 백목화 인스타그램]

북촌 커피숍에서 커피를 내리는 모습. [사진 백목화 인스타그램]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을 보면 백목화가 얼마나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갖고 있는지 엿볼 수 있다. “집에서 고양이를 키워요. 운동 끝나고 오면 기다렸다는 듯이 다가오는 모습에 힐링이 됩니다. 산티아고길 순례는 ‘버킷리스트 1번’이고요. 원래 1번이었던 스카이다이빙은 재작년 은퇴하자마자 체코에서 해 봤죠. 뮤지컬·콘서트도 좋아합니다. 감성적인 게 본능처럼 끌려요.” 백목화의 아버지는 체육교사, 어머니는 음악교사 출신이다. 세 자매의 이름은 목련·목화·수련이다.
 
요즘 여자배구는 프로야구를 능가하는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럼에도 초·중·고 배구팀은 오히려 줄어든다. 전국에 여고 배구팀은 19개뿐이다. 그나마 경기를 할 수 있는 최소 인원(6명+리베로)만 등록한 팀도 있다. 백목화는 그게 참 안타깝다. “여자배구 인기가 높아지는데도 하나뿐인 딸에게 배구를 시키려는 부모는 많지 않아요. 운동도 하고 공부도 하고 다른 것도 할 수 있는 환경이 돼야죠. 일본은 방과후 활동으로 배구를 하는 여학생이 정말 많거든요.”
 
이번 시즌 목표와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그는 “개인이든 팀이든 목표는 우승입니다. 그동안 지는 게임을 많이 했으니 앞으로는 이기는 게임을 해 보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체력이 받쳐준다면 두 시즌 정도 더 뛴 뒤 곧바로 산티아고로 떠날 거라고 했다. 백목화가 뛰는 IBK기업은행의 홈은 경기도 화성이고, 6개 팀이 출전하는 V리그 여자부는 10월 22일 개막한다.
 
쌍둥이 대결, 여자 감독 지략싸움, 김연경 효과 … 관중 몰리는 여자배구
요즘 가장 뜨거운 프로 스포츠는 여자배구다. 지난 8월 보령 KOVO컵 여자부 대회에는 하루 2000여 명의 유료관중(입장료 평균 1만원)이 왔고, 결승전에는 정원(2742석)을 훨씬 넘는 3009명이 체육관을 꽉 채웠다. 결승전 시청률(1.37%)은 이날 프로야구 최고 시청률(1.32%)보다 높았다.
 
한국배구연맹(KOVO)은 올 시즌부터 여자부 평일 경기를 오후 7시에 시작한다. 지난 시즌까지는 여자가 오후 5시, 남자가 7시였다. 여자배구는 남자배구뿐만 아니라 프로야구(오후 6시30분)와도 경쟁하겠다고 선언했다.
 
여자배구의 인기는 ‘김연경 효과’에 힘입은 바 크다. 김연경(30·터키 엑자시바시)은 남녀 합쳐서 세계 최고 대우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연경을 앞세운 대표팀은 국제대회에서도 경쟁력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국내 리그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다.
 
여자배구에는 다채로운 스토리가 있다. 흥국생명과 현대건설은 이재영-다영 쌍둥이 선수, 박미희-이도희 여성 감독의 대결로 유명하다.
 
활발한 트레이드도 코트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황연주(라이트), 박정아(레프트), 이효희(세터), 김수지(센터), 남지연(리베로) 등 국가대표급 중견 선수들은 대부분 한 번 이상 팀을 옮겼다. 이는 팀 간 전력 균형을 맞춰줄 뿐 아니라 묘한 라이벌 구도를 만든다.
 
정영재 스포츠선임기자 jerr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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