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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 뒤에는 거짓말이 숨어 있다

중앙선데이 2018.09.08 01:00 600호 32면 지면보기
책 속으로 
아마추어

아마추어

아마추어
앤디 메리필드 지음

정치인·전문가의 결탁 경계해야
세상을 움직이는 아마추어의 힘
흥미와 열정이 행복으로 이끌어

박준형 옮김, 한빛비즈
 
#이게 나라냐 #퇴사학교 #덕후ㅇㅈ
 
전혀 관계가 없을 것 같은 키워드지만, 2018년 대한민국에 사는 이들이라면 들어봤을 법한 인기 단어다. 마르크스주의 도시이론가인 앤디 메리필드의 『아마추어-영혼 없는 전문가에 맞서는 사람들』은 이 단어들을 단번에 꿰는 책이다.
 
책이 술술 넘어가진 않는다. 각종 예술·철학의 거장과 아웃사이더들이 등장하고, 저자의 유년기와 현실, 낭만과 분노가 뒤섞여 있다. 하지만 작가는 이런 혼란도 ‘아마추어적으로’ 의도했으리라 짐작된다.
 
#이게 나라냐
 
지난 정부 대통령 탄핵 때도, 현 정부를 비판하는 이들도 입에 달고 사는 말 “이게 나라냐”
 
정치 불신을 넘어, 사회 시스템 전반에 대한 불신이 반영된 유행어다. 국정원이 민간인을 사찰하고, 사법부가 재판을 거래하고, 군이 계엄시나리오를 만들고, 언론이 권력에 영합하는 사례가 드러나는 현실을 볼 때 고개가 끄덕여지는 말이다. “이게 나라냐”라는 말은 사회 ‘주류(Major)’에 대한 불신 게이지가 임계점을 넘었다는 의미다. 저자는 우리의 삶이 시스템을 장악한 전문가들에 의해 파괴되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미국 뉴욕과 영국 리버풀 등에서 전문가들에 의해 이뤄진 무책임한 도시계획이 시민들의 삶을 얼마나 파편화시켰는지, 효율성을 내세운 민영화 정책이 개인의 삶에 어떤 악영향을 미쳤는지를 살핀다. 이를 통해 숫자와 통계에 따라 효율성과 합리성을 추구하는 전문가 주의가 인간성을 말살한다고 지적한다.
 
“숫자는 정책을 결정하며,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정치적인 야심에 가장 잘 들어맞는 숫자를 선호한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맞는’ 숫자를 제공할 전문가를 찾는다.”(85쪽)
 
이런 대목에서는 경제, 산업 통계를 두고 벌어지는 한국 정치인들의 논쟁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숫자는 현실 자체가 아니라 현실의 표현이고 그 뒤에는 전문가들의 거짓말이 숨어 있다”는 저자의 지적은 자신들의 주장을 강화하기 위해 데이터를 취사선택하고 왜곡하는 이들의 민낯을 겨냥한다.
 
지난해 10월 열린 '촛불집회 1주년 대회'. 촛불은 적극적 정치참여의 대표적 예다. [중앙포토]

지난해 10월 열린 '촛불집회 1주년 대회'. 촛불은 적극적 정치참여의 대표적 예다. [중앙포토]

#퇴사학교
 
“좋아하는 일은 취미로 남기고 직업으로 삼지 말라”는 선배들이 충고가 있었다. ‘덕업일치’라는 꿈같은 말에 대한 현실적 조언이다. 아무리 좋아하는 일도 밥벌이의 수단이 되면 힘들어지는 게 사실이다.
 
저자는 “직업은 하고 싶은 일을 혐오로 바꾸어 버린다”고 지적한다. 우리 사회는 번듯한 직장(사회에서 인정받고 고소득을 올리는)을 가지라고 강요한다. 열정이 이끄는 데로 구불구불한 여정을 택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고, 직선으로 원하는 목표를 향해 달리라고 강요한다. 소위 ‘전문가’가 되라는 거다. 하지만 전문가가 되어서는 행복해질 수 없다. 프로그래밍이 된 경로를 따라가는 것은 의지가 아니라 ‘강요’이고 이 속에서 우리는 전문적으로 비인간화 된다.
 
저자에 따르면 사표나 퇴사에 대한 로망이 생기는 건 좀 더 인간적인 삶에 대한 욕망이자,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아마추어 정신을 향한 길이다.
 
#덕후ㅇㅈ
 
비주류의 부상은 자본주의의 모순이 누적된 현실 세계에서도 발견된다. 암호 화폐가 제시한 탈중앙화의 비전이 주목받고, 정치인은 시민단체에 의해 까발려지고, 방송국은 유튜버를 못 당한다.
 
저자는 이윤이나 보상에 따라 움직이지 않고, 억누를 수 없는 흥미와 열정에 따라 움직이려는 열망이 아마추어리즘의 본질이라고 말한다. 전문가들이 만든 최적의 일의 프로세스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인 흥미에 의한 자신의 발견과 혁명을 꿈꾼다. 저자는 똑똑한 비전문가들이 기존 정치의 현실을 폭로하며 정치에 참여할 때 혁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말한다. 현대인의 삶 전반에 침투한 기계적이고 계산적 논리를 넘어 자유분방한 아웃사이더들의 아마추어리즘이 세상의 변화를 이끌 수 있다는 거다. ‘덕후ㅇㅈ’ 이다.
 
물론 저자도 안다. 선한 의도를 가진 아마추어가 되기 위해서는 수많은 저녁과 주말을 희생해야 하며, 헌신과 의지가 필요하다는 것을. 하지만 공자도 말했다. ‘아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을 못 당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못 당한다’고.
 
정원엽 기자 jung.wonyeo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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