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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호의 시선] 내재적 관점으로 본 소득주도 성장

중앙일보 2018.09.07 00:53 종합 32면 지면보기
서경호 논설위원

서경호 논설위원

한때 북한 연구자들 사이에 ‘내재적(內在的) 접근법’이 유행한 적이 있다. 관점을 바꿔 북한 입장에서 ‘역지사지’로 바라보는 시도다. 재독 사회학자 송두율 전 뮌스터대 교수가 대표적이다. 결국 친북 아니냐는 비판도 있지만 송 교수는 무지와 갈등을 줄이는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정책의 1%에 불과하다며 최저임금에 왜 그리 목매나
정책 조급증 벗어나고 증세 필요성 솔직하게 밝혀야

소득주도 성장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학계에선 소득주도 성장이 가능하지 않거나 효과가 크지 않다는 평가가 대세다. 그렇지만 청와대는 오불관언(吾不關焉)이다. 이쯤에서 소득주도 성장을 내재적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 불필요한 감정 소모와 갈등을 줄이기 위해서다. 문재인 대통령도 필요하면 보완할 수 있고 생산적 토론을 원한다고 했다.
 
소득주도 성장은 대선 슬로건으로 등장했다. 진보는 성장 담론이 부족하다는 보수의 끈질긴 공세에 대응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설명하는 소득주도 성장은 ①최저임금 인상 등 가계소득 증대 ②의료·주거·보육비 등 생계비를 줄여 가계의 가처분 소득 증대 ③사회안전망과 복지 확충이 세 개의 축이다. 크게 보면 사회 양극화와 저출산·고령화라는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마땅히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노무현 정부가 만든 ‘비전 2030’과 상당 부분 겹치고, 이후 보수 정권도 무시할 수 없었던 정책 과제들이다.
 
이제까지 소득주도 성장에 대한 비판은 장 실장조차 “깜짝 놀랐다”고 표현한 최저임금의 과속 인상에 집중됐다. 처음에는 최저임금 인상의 부작용을 인정하지 않던 청와대가 나중에는 최저임금은 정책의 전부가 아니라는 주장으로 후퇴했다. 장 실장은 지난달 “최저임금 인상은 소득주도 성장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고 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최정표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최저임금이 소득 주도 성장에서 차지하는 지분은 1% 정도나 될까 싶다”고 표현했다.
 
한데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소득주도 성장의 첫 번째 축인 ①가계소득 증대에는 일자리 안정자금, 근로장려금 확대, 자영업자의 카드수수료·임대료 인하 등이 포함돼 있다. 최저임금 과속 페달을 밟지 않았다면 애초에 불필요했거나 우선순위가 떨어졌을 사업에 재정이 낭비되고 있다.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소득주도 성장이든, 그 할아버지든, 문제가 있으면 고치고 보완해야 한다. 첫째, 최저임금 속도조절이다. 내후년 이후엔 최저임금의 숨 고르기가 필요하다. 그래야 경쟁력 있는 자영업자나 중소기업도 버틸 수 있다. 최저임금 충격을 막기 위해 급조된 일자리 안정자금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사용자의 부담능력이 생길 때까지 말이다. 흠씬 두들겨 패고 맷값 쥐여주듯이 해선 안 된다. 장하성 실장은 2020년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은 지키지 못했지만 내후년 이후 매년 6~7% 오르면 2021~2022년엔 달성할 수 있다고 최근 JTBC 인터뷰에서 밝혔다. 문제 있는 발언이다. 소득주도 성장의 1% 불과하다는 최저임금에 너무 목매달지 말고 나머지 99%에 집중했으면 한다.
 
둘째, 정책 조급증에서 벗어나야 한다. 장 실장은 소득분배 개선효과가 내년에 나타날 것이라고 했다. 아마 그럴 것이다. 이번 달부터 기초연금·장애인연금이 인상되고 아동수당이 새로 지급되기 때문이다. 기저효과 덕분에 일자리지표도 올해보다는 나아질 것이다. 하지만 소득주도 성장이 청와대 설명처럼 우리 경제의 체질을 바꾸는 대공사라면 “곧 좋아진다”고만 해선 안 된다. 차라리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국회 연설처럼 한동안 견뎌내야 할 고통스러운 전환기를 지나야 한다고 말하는 게 낫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자동차 뒤에 사람이 매달려 있는데 속도를 높여서야 되겠나”고 말했다. 낙오자 없는 따뜻한 사회를 강조한 것이다. 소득주도 성장도 결국 자동차를 세워 매달린 사람을 태우고 가는 거다. 소득주도 성장이든, 사람 중심 투자든, ‘성장’은 오더라도 아주 천천히 올 것이다.
 
셋째, 솔직해야 한다. 소득주도 성장엔 건강·교육·주거 등 국민의 기본 생활을 보장하는 정책이 다수 들어있다. 사람 중심의 복지 투자를 늘리는 건 필요하다. 하지만 중장기적인 재정 소요를 국민과 같이 고민해야 책임 있는 정부다. 노무현 정부의 비전2030은 당시 정치 지형 탓에 재원 조달방안까지 밝히진 못했지만 복지에 필요한 재정 소요는 공개했다. ‘포용국가’를 위해선 결국 세금을 올려야 한다. 사회안전망 확충과 복지 투자가 곧 포퓰리즘은 아니다. 선거 때문에 증세 얘기조차 못 꺼내는 게 진짜 포퓰리즘이다.
 
넷째, 임금 격차 해소나 대기업·중소기업 상생 등 양극화 해소는 중요하다. 하지만 시장 질서를 왜곡하지 않도록 시장 친화적인 범위 내에서 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조세·이전지출 이전의 계층 간 소득 격차가 선진국보다 크지 않다. 시장에서의 경쟁이 그만큼 치열하지 않다는 의미일 수 있다.
 
이런 내용을 두루 포괄하는 정책의 네이밍이 왜 굳이 소득주도 성장이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남북 정상회담이 빈번하게 열리는 세상에 정부 정책을 이해하기 위해 내재적 접근법까지 동원해야 하는 지금 상황은 참 안타깝다. 
 
서경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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