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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달' 그 달동네 마을버스를 타다

중앙일보 2018.09.06 15:00
[더,오래] 홍미옥의 폰으로 그린 세상(8)
“이번 정류장은 방앗간 삼거리입니다.”
 
마을버스 풍경, by 갤럭시 노트5 S노트. [그림 홍미옥]

마을버스 풍경, by 갤럭시 노트5 S노트. [그림 홍미옥]

 
어느 동네에나 있다는 1번 마을버스는 가파른 오르막길을 힘겹게 오르더니 이내 정차했다. 하늘이 뚫어져라 높게 솟은 신축아파트단지를 지나 도착한 곳은 방앗간 삼거리. 앞 좌석의 아주머니는 검붉은 말린 고추가 고개를 삐죽 내민 노란 시장 가방을 들고 내렸다. 아! 정말 방앗간이 있는 곳인가 보다.


마을버스는 저마다 사연을 싣고
흘끗 바라보니 맥줏집과 철물점 사이에 방앗간이 보였다. 오르막이 끝나는 길에 이상하게 터를 잡은 그곳은 가을 태양 고추를 빻으려는 사람으로 북적였다. 올겨울 맛깔난 김장을 위해 부지런히 돌고 있는 방앗간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이번엔 창가의 임산부가 일어날 모양이다. 태어날 아기를 위해 준비했을 분홍 기저귀 가방이 소박하다. 정류장은 오뚝이 슈퍼. 바로 옆에 럭키 슈퍼가 있다.
 
양귀자의 소설 『원미동사람들』처럼 정류장 이름으로 두 슈퍼가 한바탕 신경전을 벌였을 것 같은 상상을 하게 한다. 너그러운 기사는 솟아오른 배를 안고 내리는 임산부를 위해 한참을 멈춰 섰다. 쌀쌀맞게 생긴 임신부는 고마움을 환한 미소로 대신한다.
 
내 앞에 서 있는 키가 훌쩍 큰 아가씨는 비어있는 자리엔 도통 관심이 없다. 고갯길을 오르내리는 와중에도 굳건하게 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한손으론 손잡이를 잡고 한손엔 역시나 휴대폰으로 긴 통화를 하는 중이다.
 
의도치 않게 작은 마을버스의 승객들은 그 통화내용을 듣게 되는데, 아가씨는 아마도 동네 헬스장에 근무하는 운동 코치인 듯하다. 사람을 대하는 일은 언제나 만만치 않듯이 고객에 대한 서운함과 자신의 서러움을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토해냈다.


드라마 ‘서울의 달’ 속의 마을버스는? 
1994년 MBC 주말 드라마 '서울의 달'의 출연진. 서울의 달동네를 배경으로 각자의 삶을 위해 애쓰는 소시민의 모습을 그려 평균 40%대의 시청률로 큰 인기를 얻었다. [중앙포토]

1994년 MBC 주말 드라마 '서울의 달'의 출연진. 서울의 달동네를 배경으로 각자의 삶을 위해 애쓰는 소시민의 모습을 그려 평균 40%대의 시청률로 큰 인기를 얻었다. [중앙포토]

 
그날 난 여유롭게 맨 뒤에 앉아 종점까지 가는 길이었다. 문득 떠오른 드라마 ‘서울의 달’. 1994년 신혼이던 무렵 주말이면 저녁 8시를 기다리게 했던 드라마다. 달동네를 배경으로 녹록지 않은 서민의 삶을 진한 웃음으로 녹여냈다는 평과 함께 아직도 회자되는 드라마다.
 
드라마 속에서 주인공 영숙(채시라 분)은 달동네 초입에 들어오는 마을버스가 영 못마땅하다. “난 이런 마을버스 말고 근사한 통근 버스 타는 게 소원이야.” 영숙에게 마을버스는 편리한 친구가 아니라 자신의 꿈에 눈치 없이 끼어드는 훼방꾼 정도로 인식되었을까? 설사 앉을 자리가 생겨도 절대 앉지 않던 도도하고 싶었던 영숙. 하지만 근사한 통근 버스 대신 트럭을 타고 야채를 팔게 된다지?
 
드라마 속 마을버스엔 새벽밥을 먹고 영하의 일터로 가는 일용직 노동자 상국 아빠(박경순 분)가 있다. 언제나 싱글벙글 감사한 마음으로 버스를 기다리곤 하던 그는 마을버스를 탈 필요가 없는 지하철역 앞 새 아파트에 둥지를 튼다.
 
그런가 하면 여고생 명선(이주희 분)은 달동네 행 버스가 부끄러워 일부러 부잣집 동네를 거쳐 걸어서 집에 오기도 한다. 돈은 없지만 하얀 양복과 백구두로 멋을 내던 춤 선생(김용건 분)은 마을버스를 타진 않는다. 대신 누군가의 차를 끊임없이 얻어 타는 기술(?)을 보여주기도 했다. 결국은 마을버스 정류장 앞 구멍가게 주인이 되고야 만다. 
 
참! 끊임없이 '보이즈 비 엠비셔스'를 부르짖던 우리의 홍식이(한석규 분)는 어찌 되었던가? 그의 엠비셔스엔 마을버스가 들어갈 자리는 없다. 한탕 멋지게(?) 해치워서 금빛 태양이 이글거리는 라스팔마스로 가고 싶다던 홍식. 결국 마을버스가 지나는 길목의 전봇대 아래에서 초라한 죽음을 맞이했다. 그가 애써 외면했던 그곳에서 말이다.
 
작은 버스에도 펼쳐지는 인생극장
드라마 '서울의 달'에서 등장한 옛날 마을버스. [사진 MBC 영상 캡쳐]

드라마 '서울의 달'에서 등장한 옛날 마을버스. [사진 MBC 영상 캡쳐]

 
에어컨 바람이 시원했던 마을버스에서 20년도 훌쩍 넘은 드라마 장면이 펼쳐지던 순간이었다. 그러고 보니 버스 속 공간도 온갖 사람이 등장하는 주말 드라마의 무대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저마다 한가득 사연을 싣고 달리는 인생 버스! 그곳엔 드라마 속 영숙이도  홍식이도 춤 선생도 그리고 지금의 우리도 함께 탔다.
 
맨 앞자리의 브로콜리 파마 어머니가 안절부절못한다. “아이고 내가 정류장을 지나쳐 버렸네잉. 어찌한디야~” 누군가와 끝없이 전화통화를 하더니 내릴 곳을 놓친 모양이다. 아쉬워도 할 수 없다. 돌아가긴 늦었으니 다음 정거장에서 내리는 수밖에. 살아가는 데 빠른 포기는 간혹 현명한 선택으로 돌아온다.
 
고갯길을 아슬아슬하게 오르던 마을버스는 이제 대로변으로 들어섰다. 제법 속도도 붙기 시작한다. 꽉 붙들었던 손잡이를 슬그머니 놓아도 문제없을 듯하다. 버스나 인생이나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고, 힘에 겨울라치면 거짓말같이 이내 탄탄대로가 펼쳐지기도 한다. 유난히 더웠던 올여름, 신통치 않은 에어컨을 가동해가며 이 골목 저 골목을 데려다주던 마을버스. 새삼 고마웠다. 앗! 다시 내리막길 시작이다. 손잡이를 꽉 잡으라는 안내방송이 다정하게 들려온다.
 
오늘의 드로잉 팁
드로잉팁.1 팬업 앱에서 그리기 선택. [사진 penup 캡처]

드로잉팁.1 팬업 앱에서 그리기 선택. [사진 penup 캡처]

 
‘Penup’이라는 앱은 디지털 아트에 기반한 소셜 네트워크다. 페이스북이나 구글 트위터 계정 등으로 가입한 뒤 무료로 이용할 수 있고 작품을 게시할 수 있다. 지난번엔 아트레이지 앱으로 반 고흐의 해바라기 같은 질감을 표현해봤다. 오늘은 펜업을 이용해 남프랑스의 따뜻한 색감에 도전해본다. 마티스의 그림처럼!
 
드로잉팁2. 유화브러시를 선택(좌) 후 마티스의 그림을 따라 그린다(우). [사진 penup 캡쳐, 홍미옥]

드로잉팁2. 유화브러시를 선택(좌) 후 마티스의 그림을 따라 그린다(우). [사진 penup 캡쳐, 홍미옥]

 
유화 붓을 선택, 첫 화면에 나와 있는 샘플 컬러를 이용해 마티스의 그림을 따라 그려 본다. 섬세한 표현은 다음에 하도록 하고 마티스의 화려한 색감을 그린다는 마음으로 시원하게! 유화 브러시라 색이 겹치는 부분이 탁해질 수 있으니 신경 써서 덧칠해준다.

 
드로잉팁3. 붓펜을 선택한 후 선을 정리한다. [사진 penup 캡처]

드로잉팁3. 붓펜을 선택한 후 선을 정리한다. [사진 penup 캡처]

 
마무리는 붓펜 브러시를 선택해 마티스처럼 굵은 윤곽선을 표현해준다. 복잡한 기능을 이용해 사진처럼 그리는 법도 있지만 좋아하는 화가의 그림을 단순하게 따라 하면서 여러 앱의 브러시나 색을 익혀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오늘만큼은 작은 폰 화면 위의 야수파가 되어보는 건 어떨까?
 
홍미옥 스마트폰 그림작가 keepan200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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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미옥 홍미옥 스마트폰 그림작가 필진

[홍미옥의 폰으로 그린 세상] 둘도 없는 친구인 스마트폰과 함께 세상 이야기를 그리는 중년 주부.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기에 중년도 아직 늦지 않았음을 그림을 통해 알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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