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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고 온 아이에게 엄마가 꼭 해줘야 할 한마디

중앙일보 2018.09.06 13:01
[더,오래] 서영지의 엄마라서, 아이라서(4)
사람의 마음은 바다처럼 넓고 깊기도 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온전히 헤아리기는 어렵다. 그래도 최대한 노력해 아이의 반응에서 현상만 보지 않고 본질을 파악할 수 있는 엄마가 되고 싶다. 지난달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여행 갔을 때 노빅컨트리클럽에서 찍은 사진. [사진 서영지]

사람의 마음은 바다처럼 넓고 깊기도 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온전히 헤아리기는 어렵다. 그래도 최대한 노력해 아이의 반응에서 현상만 보지 않고 본질을 파악할 수 있는 엄마가 되고 싶다. 지난달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여행 갔을 때 노빅컨트리클럽에서 찍은 사진. [사진 서영지]

 
나는 내가 아이 마음을 잘 보고 있는 줄 알았다. 아이가 말을 걸 때마다 반응을 잘 해줬고, 눈높이에 맞춰서 대화하려고 노력했으니까. 주변에서도 화내지 않고 일관되게 잘 설명한다고 칭찬해주기도 했다.
 
몇 개월 전 아이가 “엄마, 오늘 어린이집에서 ○○이가 공룡으로 나 공격했어”라고 하길래 “어머! 아프다고 얘기했어? 공격하지 말라고 말했어?”라고 되물었다. 그런데 아이가 “아니… 말 안 했어”라고 했다. 나는 맞고도 가만히 있었던 게 속상해서 “아프다고, 하지 말라고 해야 친구가 다음에 또 안 하지. 가만히 있으면 ‘얘는 공격해도 되는구나’ 하고 또 할 수도 있잖아”라고 타일렀다.
 
그다음에도 여러 차례 같은 일이 반복됐는데, 처음에는 가만히 있었다던 아이가 나중에는 “공격하지 마!”라고 얘기했다고 하길래 내가 잘 가르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우연히 육아 코치를 받을 기회가 있었다. 부모양육태도검사 등도 함께 받았는데 나는 감정보다 사고가 앞서는 사람이라 아이 감정에 머무르기보다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가장 좋은 양육 태도는 방법을 제시하기에 앞서 “어머, 속상했겠다. 아프지 않았어?” 등 아이 감정에 잠시 머무르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처음 듣는 얘기는 아니었다. 육아 관련 책이나 카드 뉴스, 어린이집에서 보내주는 가정통신문 부모교육 칸에서도 “아이 마음에 공감해주세요”라며 “속상했겠구나”라는 말을 해주며 공감하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여기저기에 정답처럼 적혀 있었다.
 
자주 봐왔던 문구였지만 가슴에 담아본 적은 없었다. 우리 세대가 대부분 그렇듯, 나도 자라면서 아빠 엄마한테 무슨 얘기를 꺼냈을 때 “아이고, 우리 딸 속상했겠다”는 반응을 받아본 적이 없었으니까. 머리로는 알아도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는 건 내놓기가 어렵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아이와 소통을 잘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육아 코치 선생님이 “아이가 말을 했을 때 엄마가 내 마음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다. 공감해주지 않고 방법만 알려주면 나중에는 아이가 말을 안 할 수도 있다”고 할 때 작지 않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어린이집에서 보내온 가정통신문에 감정표현을 잘하는 아이로 키우려면 공감을 잘 해줘야 한다고 적혀 있다. 행동보다 감정을 먼저 읽어주라는 대목을 볼 때마다 잘하지 못해 반성하게 된다. [사진 서영지]

어린이집에서 보내온 가정통신문에 감정표현을 잘하는 아이로 키우려면 공감을 잘 해줘야 한다고 적혀 있다. 행동보다 감정을 먼저 읽어주라는 대목을 볼 때마다 잘하지 못해 반성하게 된다. [사진 서영지]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꽤 잘하는 엄마라고 생각했는데 나는 아이 마음을 전혀 못 보고 있던 것이다. 그제야 ‘감정에 머물러주기’가 얼마나 중요한 건지 깨달았다. 가족들이 내 하소연에 공감해주지 않을 때 나도 늘 서운했는데, 왜 서운한지도 모른 채 그 중요한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여태 살아왔구나 싶어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선생님은 마음에 머물러주는 것이 아이가 ‘내가 수용되고 있구나’ 느끼는 데 굉장히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 연습하면 못 하던 사람도 자연스럽게 할 수 있게 된다고 했다. 아이가 더 크기 전에 알게 돼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날부터 나는 아이가 밖에서 있었던 속상했던 얘기를 꺼내면 “그래서 어떻게 했어?”라는 질문이 입에서 튀어나오려는 것을 막고, 대신 꼭 안아주면서 “정말 속상했겠다. 엄마는 생각만 해도 속상한데 얼마나 속상했을까” 하고 연습해놨던 문장을 뱉었다.
 
그 뒤로 어디 다쳐왔을 때 왜 다쳤냐는 물음 등에 “몰라”라며 피하거나 딴짓하던 아이가 점점 입을 열기 시작했다. 최근엔 “엄마가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해서 속상해. 나 오늘 기분 안 좋아” 하고 감정을 먼저 말하는 경우가 잦아졌다.
 
나도 처음엔 연습해야 나왔던 말이 어느 정도 익숙해지니 자연스럽게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기 시작했다. 지금은 아이 감정에 머물러준다는 명분으로 안아주고 얘기를 나누는 행동이 오히려 내 마음을 치유하는 느낌을 받는다. 그렇게 대화를 나누고 나면 아이와 나 사이의 연결고리가 조금 더 단단해진 느낌이 든다.
 
물론 어떤 사람에겐 내가 받은 코치가 너무 당연하고 쉬운 것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마음만큼은 그 어떤 사람보다도 크지만, 이 방법을 몰라 아이의 마음에 다가가지 못하는 부모도 분명 있을 것이다. 성격마다 유념해야 할 부분이 다르겠지만, 나와 비슷한 성향의 부모라면 이 글을 보고 조금이라도 힌트를 얻어 아이 마음에 머무를 수 있으면 좋겠다.
 
전문가에게 물었습니다
도움말: 홍순아 허그맘 동탄센터 부원장(상담심리학 박사)
 
아이들의 감정을 알아차리고 반응하는 것이 왜 이리 어려울까? [사진 smartimages]

아이들의 감정을 알아차리고 반응하는 것이 왜 이리 어려울까? [사진 smartimages]

아이들의 감정을 알아차리고 반응하는 것이 왜 어려울까요?
갓 태어난 아기들은 자신의 욕구를 울음으로 표현합니다. 정신적인 병리가 있지 않은 상태에서 모든 어머니에게는 본능처럼 ‘모성 몰두’의 순간이 허락됩니다. 모성 몰두의 시기 동안 엄마는 마치 한 몸처럼 온전하게 아이에게 몰입하게 되지요.

그것은 아기의 울음소리만 듣고도 배가 고픈지 기저귀가 축축한지를 알아내는 엄마의 ‘우선적인 반응’으로 나타납니다. 현상으로 나타나는 아기의 울음보다는 아기가 무엇을 원하는지 본질을 알아채는 반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살다 보면 우리는 본질보다는 현상에 초점을 맞추며 살아갑니다. 이는 마치 수면 위로 드러난 얼음이 전부인 것처럼 빙산의 일각만을 맴돌며 배를 띄우는 것과도 같습니다. 정작 아이의 욕구는 수면 밑의 감정 속에 숨어 있는데 방법론적인 제시와 함께 문제를 수면 위에서만 해결하려고 애씁니다.

아이에게 나타나는 모든 문제 행동 속에는 아이의 욕구와 감정이 담겨 있습니다. 그것은 내 마음을 몰라주는 어른들에게 보내는 SOS 신호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안 그랬던 아이가 갑자기 공격성을 드러내거나, 거짓말을 한다거나, 산만해진다면 이러한 문제행동 안에 “엄마! 저는 관심이 필요해요” “저를 도와주세요”라는 메시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부모는 곧바로 알아채야 합니다. 아이는 자신의 문제 행동을 통해서라도 부모와 소통하길 원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아이는 감정을 가진 인격체입니다. 아이가 부모와 대화를 시도할 때는 무의식적으로 깊이 수용 받고 싶고, 격려 받고 싶은 기대와 소망을 가집니다. 무엇보다 부모가 아이의 감정에 접촉해 아이가 먼저 수용적 경험을 받는다면 부모·자녀 간 소통은 훨씬 깊어질 것입니다.

위 사연에서 ‘감정에 머물러주기’라는 말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아이와 함께 성장해 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이의 감정에 머무르기 위해 먼저 내 마음에 귀 기울이고 내 감정에 머무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때론 내 아이를 위로 해주듯, 내 가슴속 한 쪽에 채 자라나지 못한 어린아이 같은 나 자신을 위로할 줄 알아야 합니다. 엄마라는 이름과 함께 잃어버린 ‘내 이름’에 풍요로움이 깃들 때, 그 넉넉함이 아이에게 긍정적으로 흘러갈 것입니다.  
 
※ 사연을 받습니다
 
엄마로, 아내로, 딸로, 며느리로 아이를 키우면서 닥쳤던 어려움을 슬기롭게 이겨냈거나 아이의 마음을 잘 다독여준 이야기를 기다립니다.
 
아이와 관련한 일이라면 어떤 주제라도 좋습니다. 그 이후로 더 힘차게 살아갈 수 있었던 이유, 그 사건을 겪으며 느낀 생각과 깨달음, 그로 인한 삶의 변화 등을 공유해주세요. 같은 상황을 겪는 누군가에게는 선배 엄마의 팁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서영지 기자의 이메일(vivian@joongang.co.kr)로 사연을 보내주시면 됩니다. 보내실 때는 이름연락처를 꼭 알려주세요. 사진사진 설명을 함께 보내주시면 더욱 좋습니다.
 
서영지 기자 vivi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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