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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민생을 대하는 태도와 인식이 문제다

중앙일보 2018.09.04 00:26 종합 27면 지면보기
이상렬 경제 에디터

이상렬 경제 에디터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50%대로 떨어졌다.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 인사들은 지지율 추락에 속상하고 어리둥절할 것이다. 혹자들은 잇따른 BMW 화재 사태와 정부의 안이한 대응, 대입개편안 마련에서 보여준 정부의 무능, 가뜩이나 비싼 집값을 들쑤셔 내집마련의 꿈마저 접게 만든 부동산 정책을 지지율 급락의 원인으로 꼽을지 모르겠다. 혹은 문 대통령의 규제혁신 1호였던 인터넷은행 은산분리 완화가 여당 내분으로 불발된 것을 비롯해 진보 정권의 혁신 한계를 거론하는 이도 있을 수 있다.
 

여당의 전 정권 탓 고용·분배 쇼크 설명 못해
구조조정 대책 치밀하지 못한 책임 통감해야

하지만 그같은 상황들은 겉으로 드러난 현상일 뿐이다. 정부의 실책이나 당정의 혼선만으로 지지율이 순식간에 꺼지진 않는다. 이 갑작스럽게 확산되는 국민들의 지지 철회는 청와대와 여당 인사들의 민생을 대하는 태도와 인식과 무관치 않다고 봐야 한다.
 
우선 경제 상황 판단이다. 최근 문 대통령은 “우리는 올바른 경제 정책 기조로 가고 있다”고 결론 내렸다. 당정은 이 결론에 맞춰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태세다. 그러나 이 인식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0년 만에 최악으로 치달은 양극화와 고용 상황과 전혀 맞지 않는다. 고용의 경우 올해 들어 매달 10만개 정도 늘어나던 새 일자리가 7월에 5000개밖에 늘지 않았는데, 이는 우리 경제의 일자리 창출 역량에 단단히 탈이 났다는 신호다. 더구나 지난 7월 말 광화문 호프집에서 문 대통령이 직접 청취한 여론과도 사뭇 다르다. 그 자리에서 한 음식점 주인은 “최저임금 근로자만도 못하다.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다”고 했다. 청년 구직자는 “‘알바’를 구하려고 해도 안 구해진다”고 하소연했다. 김동연 부총리 등 장관들도 찾아간 현장마다 이런 절박한 목소리를 들었다. 그런데 대통령이 “올바른 경제 정책 기조”라고 하니, 민초들은 속이 뒤집어지는 것이다.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지금의 경제난을 전 정권의 탓으로 떠넘기는 행태는 역대급이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얼마 전 대표 경선에서 “지난 10년간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성장 잠재력이 매우 낮아져 그 결과가 지금 나타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며칠 전 민주당 의원들은 워크숍에서 이런 논리를 학습하고 강화했다. 민주당 지도부가 의원들에게 나눠준 참고자료엔 “최근의 고용지표 악화는 지난 수년간 누적된 구조적 요인의 결과”라고 설명돼있다. 구체적인 구조적 요인으로는 제조업 구조조정, 자영업 포화상태, 도소매업 유통구조 급변 등 크게 세 가지를 꼽고 있다. 전 정권이 구조조정을 적극 추진하지 않은 결과 지금의 고용 쇼크가 찾아왔다는 논리다. 자료엔 또 2016년 청탁금지법 시행, 2017년 초 사드 영향에 따른 중국 관광객 급감 등이 음식 숙박업의 고용 부진 요인으로 제시돼있다. 과거 정권에서 구조조정의 타이밍을 놓쳐서 문제를 키웠다는 것은 아주 틀린 주장이 아니다. 김영란법이나 사드 보복이 영향을 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문재인 정부 1년을 지난 이 시점에서 신규 일자리 증가 규모가 갑자기 뚝 떨어진 이유를 직접적으로 설명하진 못한다. 현 집권 세력의 ‘전 정권 탓’은 시간이 갈수록 식상해지고, 국민을 짜증 나게 한다.
 
이 자료엔 입맛에 맞는 지표들로 경제 상황을 호도하는 설명도 여럿이다. 그중 하나가 일자리 질이 개선됐다는 주장이다. 7월에 상용근로자가 27만여명이 늘고, 임시·일용직이 23만여명이 감소했다는 것을 대비시키며 양질의 일자리 증가를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자료엔 상용 근로자 증가 폭이 지난해보다 12만여명이 줄어 우리 경제의 양질의 일자리 창출 능력이 위축되고 있다는 내용은 없다. 게다가 사라진 20여만 개의 임시·일용직도 취약 계층 입장에선 소중한 일자리다.
 
불경기에 시달리는 서민들이 아연실색하는 부분은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의 상황 인식일 것이다. 소득주도성장을 지휘하는 장 실장은 기자간담회와 민주당 워크숍에서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의 전환을 하는데 고통이 따르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술을 집도한 의사가 고통을 호소하는 환자를 제대로 살피지도 않은 채 “아픈 것은 당연하다”고 말하는 장면과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이런 의사들은 치료는커녕 되레 병을 키우기도 한다.
 
장 실장은 문재인 정부가 지난해 5월 출범 이후 ‘경제구조를 바꾸는 일’을 시작했다고 설명한다. 그의 말처럼 50여년간 지속된 경제구조를 바꾸는 일이 쉬울 리 없다. 그러나 유능한 의사라면 환자가 수술대에서 버틸 체력을 갖췄는지를 따져보고 수술을 결정하듯이, 사려 깊은 정책당국자라면 구조조정으로 일자리를 잃고 생계를 걱정해야 할 사람들에 대한 대책을 먼저 마련했어야 한다. 그래서 물정 모르고 최저임금을 너무 급하게 올렸다는 비판이 쏟아지는 것이고, 일의 선후가 뒤바뀌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이다.
 
사실, 일반 국민 입장에선 소득주도성장이 이론적으로 옳은지 그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일자리가 늘고 벌이가 어제보다 조금이라도 나아지길 바랄 뿐이다. 그런 소박한 바람이 달성되지 않는다면 정부 정책이 방향을 잘못 잡은 것이다.
 
이상렬 경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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