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충락 부산대 통계학과 교수 한국통계학회장
인류 시행착오로 얻은 통계 지혜
정권 반하는 결과라도 왜곡 금물
통계청장에 코드 인사는 안 돼
통계의 중립성과 독립성은 생명
통계학을 조금 아는 사람들이 가장 쉽게 유혹을 받는 과정이 자료 수집 과정이다. 자료의 일부만 조작하면 일확천금을 벌거나 노벨상 수상 후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피 한 방울로 수백 가지의 질병을 진단할 수 있는 의료용 진단 키트를 발명했다고 주장했던 미국 테라노스의 최고경영자(CEO)도, 일본의 만능 세포 논문조작의 주인공도 이런 자료 조작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했다. 즉, 통계 자료의 생명은 바로 정직함에 있다.
“자료 그 자체에 충실하라(Let the data speak for themselves)”는 말이 있다. 과학적 성과의 입증이나 정부의 정책을 뒷받침하는 과정에서 자료나 통계가 조금이라도 왜곡되거나 조작되면 안 된다. 이를 흔히 우리는 통계의 중립성과 독립성이라 부른다. 그중에서도 정치적으로 독립돼야 함은 기본이라 하겠다. 통계 자료를 국가의 중차대한 정책에 활용하는 과정에 단기적으로 현재의 정책과 반하는 결과가 나오더라도 이를 숨기거나 왜곡하지 말아야 함은 물론이다. 나아가 그 결과를 겸허히 인정하고 받아들여서 그 자료가 내포하는 진정한 의미를 탐색하고, 필요하다면 그 정책을 수정해야 마땅하다.

시론 9/4
통계청은 경제 관련 통계만 다루는 곳이 아니다. 경제 이외에도 인구·환경·의료·복지 등 여러 분야의 자료를 제대로 수집하고 분석하고 예측해야 한다. 요즘 회자하는 빅 데이터, 인공지능, 기계학습, 데이터 사이언스의 중심에 통계학이 있다. 『사피엔스』와 『호모 데우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통계학이 가장 중요한 학문이 될 것이라 예언했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문제를 다루는 국가기관인 통계청을 지휘·감독하는 체제는 여전히 30년 전 모습이다. 이는 아직도 한국이 정치적 후진국임을 자인하는 것이다. 최근 통계청장을 갑자기 경질한 인사는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현 정부의 통계에 대한 중립성과 독립성에 대한 의지를 의심케 한다. 정부의 여러 부처 수장 자리에 뜻을 같이하는 인사를 임명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통계청장만은 고도의 전문성과 정치적 독립성을 갖춘 사람이어야 하며 그의 임기를 철저히 보장해야 한다. 코드 인사 논란이 조금이라도 있어서는 절대 안 되는 자리다.
자료는 정직함을 생명으로 여긴다. 정직한 자료를 근거로 제대로 분석하고 예측해야 한다. 대학입시를 비롯한 교육정책 등에서 포퓰리즘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통계를 이용해 온 사례가 계속 나온다. 어떤 경우에도 통계가 진실을 왜곡하는 도구가 되거나 권력의 시녀로 전락하지 않도록 하길 바란다.
김충락 부산대 통계학과 교수·한국통계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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