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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네이버는 제2의 드루킹을 막을 수 있나

중앙일보 2018.09.03 00:21 종합 27면 지면보기
김원배 사회팀장

김원배 사회팀장

“국가기관을 동원한 권력형 댓글 조작과 드루킹 사건을 동일시하는 것은 파리를 새라고 하는 것과 같다. 드루킹은 온라인 선거 브로커에 불과하다.” 지난 4월 드루킹 김동원씨(구속)의 댓글 조작에 대한 경찰 수사가 진행될 당시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한 말이다.
 

자금력 갖춘 자생적 댓글 부대도 민주주의에 큰 위협
댓글 조작 멍석 깔아 준 네이버, 무거운 책임 느껴야

‘드루킹의 인터넷상 불법 댓글 조작 사건과 관련된 진상 규명을 위한 특별검사팀’이 지난달 말 수사 결과를 내놨다. ‘킹크랩’이라는 댓글 조작 프로그램을 통해 8만1623건의 기사에 달린 댓글 141만643건에 9971만1788건의 ‘공감(엄지가 위로 간 손)’ 혹은 ‘비공감(엄지가 아래로 간 손)’ 클릭을 했다는 내용이다.
 
이런 클릭을 많이 하면 해당 댓글이 화면 위로 올라가 많이 노출되고 기사를 읽는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 이런 댓글이 많으면 다른 의견이 있더라도 공개적으로 표출하기 어려워진다. 유명한 ‘침묵의 나선 이론’이다. 과연 드루킹의 댓글 조작이 여론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을까 궁금했지만 특검 수사 결과 발표엔 그런 부분이 없다. 형사처벌을 한다는 차원에선 댓글 조작의 내용이 중요하지 않지만, 진상 규명 측면에선 의미가 있다.
 
그래도 이들의 영향력을 엿볼 수 있는 대목도 있다. 대선 선거 운동이 한창이던 지난해 4~5월 월평균 750만 건 정도였던 드루킹 일당의 조작 건수는 대선 이후에도 월 500만~700만 건을 유지했다. 가장 조작이 많았던 것은 올해 1월의 2260만 건이다. 그 중엔 평창올림픽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구성과 관련한 부정적 댓글에 공감 수를 높인 것도 있다. 드루킹 김씨가 김경수 경남지사(당시 국회의원)에게 오사카 총영사직을 요구했다가 거절당하면서 사이가 벌어지기 시작했던 때다. 당시 고공 행진을 하던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하락했다. 이것이 전부 드루킹의 댓글 조작 결과라고 보긴 어렵지만 부정적 여론에 기름을 부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드루킹이 이끄는 ‘경제적 공진화 모임(경공모)’은 간단한 조직이 아니었다. 드루킹의 강연료와 공동구매 수입 등으로 2015년 이후 총 30억원의 자금을 마련한 것으로 나타났다.  
 
드루킹 댓글 조작은 이명박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의 댓글 조작과 비교된다. 물론 국가 공권력을 동원한 국정원 댓글 조작이 훨씬 심각한 범죄다. 하지만 자금 조달 능력을 갖춘 자생 세력을 ‘파리’로만 치부해선 안 된다. 정보기관의 댓글 조작은 정권 교체로 끝낼 수 있지만 자금과 기술을 갖춘 자생 조직은 적발해 처벌하기가 힘들다. 실제 댓글을 조작한 드루킹 일당에겐 네이버 등 포털사업자의 댓글 순위 산정 업무를 방해했다는 혐의만 적용됐다.
 
전체 댓글 공감 수 조작의 99.9%(9964만 건)가 네이버에서 이뤄졌다는 것도 주목해야 한다. 수사 결과 네이버는 업무를 방해받은 ‘피해자’로 나왔다. 하지만 댓글 조작의 멍석을 깔아주고 이를 제대로 막지 못한 네이버가 과연 ‘선량한 운영자’일까. 네이버는 단순한 민간 기업이 아니라 여론 형성의 핵심 플랫폼이다. 그렇다면 이에 걸맞은 책임을 져야 한다.
 
드루킹 일당 상당수가 구속됐지만 인터넷 여론의 중요성이 드러난 이상, 이를 조작하려는 시도는 계속될 것이다. 특검에 따르면 드루킹 일당은 올해 2월 해외 서버를 이용해 추적을 피하는 ‘킹크랩 2차 버전’을 개발한 것으로 드러났다. 과연 드루킹이 지난해 12월 김경수 지사가 제안했다는 일본 센다이 총영사직을 받아들이고 올해 1월 문재인 정부에 비판적인 댓글 조작을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인공지능이 발달하면서 특정 세력이 보다 정교한 댓글 조작을 할 수 있게 되는 날도 멀지 않았다. 그만큼 여론 형성과 민주주의는 위협받는다. 드루킹은 경기도 파주의 경공모 사무실을 ‘산채’라고 불렀다. 지금 ‘제2의 드루킹’이 또 다른 산채를 키우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게 지금 우리 편이라고 안심하지 말라. 언젠가 나와 주위의 판단 능력을 마비시키고 우리의 자유를 억압할 수 있다.
 
김원배 사회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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