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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특사의 조건

중앙일보 2018.09.03 00:12 종합 31면 지면보기
김수정 논설위원

김수정 논설위원

지난 2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특사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의 방한 때 이례적 장면이 있었다. 청와대 기념촬영에 문재인 대통령의 스태프인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문 대통령 바로 옆에 선 것. 그리고 마지막 날 만찬을 통일부 장관이 아닌 임 실장이 주재한 점이다. 이후 임 실장이 남북관계를 총괄하고 있고, 대북 특사로 파견될 것이란 관측이 한때 떠돌았다.
 
그즈음 당 간부 출신 탈북자를 만난 차에 물었다. “1989년 방북한 임수경씨는 북한 사람들이 잘 알겠지만 임종석 실장은 어떤가.” 그의 답. “임수경은 인민 전체가 열광했다. 숙소 앞에서 선물을 들고 줄을 섰다. 나도 유학 중 얼굴 한번 보려고 들어갔다. 임 실장은 중상층 이상 사람들은 다 알고 좋게 본다.” 그러면서 임 실장과 관련된 몇 가지 에피소드를 들려주기도 했다.
 
국가 미래를 바꿀 그림을 그리거나 상황 돌파를 위한 비상 카드로 특사를 보낼 때 통치자들은 자신의 의중을 꿰뚫고 이를 상대에게 전할 지근거리의 사람을 택한다. 상대가 신뢰하는 사람이면 더할 나위 없다. 청와대가 사흘 전 대북 특사 파견 계획을 발표하고 2일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을 특사 대표로 발표할 때까지 ‘임종석 특사설’이 가라앉지 않은 이유일 게다. 문 대통령은 ‘임종석 카드’의 효용 이전에 전대협 의장으로 임수경을 북한에 보낸 ‘전력’이 가져올 국내적 파장을 고민했을 법하다.
 
지난 3월 6일 정의용 실장이 청와대 춘추관에 섰다. 특사로 방북하고 돌아온 날이다. “북측은 한반도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 했다. 군사 위협 해소와 체제 안전이 보장되면 핵을 보유할 이유가 없다고 명백히 했다. 핵무기는 물론 재래식무기를 남측을 향해 사용하지 않을 것도 확약했다.” 사흘 뒤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난 그는 웨스트윙 앞에 섰다. “나는 김정은 위원장이 비핵화 의지를 갖고 있다고 말한 것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했다. 김 위원장은 한·미 군사훈련이 지속돼야 한다는 점을 이해하고 있다.”
 
이후 북·미 정상회담까지 열렸지만 비핵화는 꼬여 있다. “‘1년 내 북한 비핵화’는 문 대통령이 제안해 김정은이 동의한 것이고, 문 대통령이 이를 우리에게 전했다.” 최근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말은 한국의 ‘전언’을 믿고 여기까지 왔다는 뉘앙스다. 북한의 핵 포기 의지에 대한 회의론이 커지고 있다. 방북 특사가 북한의 말을 좋게 해석해 세상에 전하는 건 곤란하다. 더 꼬인다. ‘쿨(cool)’한 김정은 위원장이 그의 입으로 비핵화 의지, 한·미 훈련 이해 등을 얘기하고 실행하도록 해야 문제가 풀린다.
 
김수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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