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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곳보다 급한 곳' 바둑판도 사활이 0순위

중앙일보 2018.09.02 12:00
[더,오래] 정수현의 세상사 바둑 한판(10)
삶을 살아가면서 고려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건강관리이다. 건강 없이는 다른 것도 없다. [사진 한국건강관리협회]

삶을 살아가면서 고려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건강관리이다. 건강 없이는 다른 것도 없다. [사진 한국건강관리협회]

 
삶을 살아가면서 고려해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는 무엇일까. 경제문제나 삶을 즐기는 문제, 인간관계 등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중요한 것은 건강관리일 것이다. 건강 없이는 다른 것을 추구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바둑에서도 돌의 건강관리, 즉 생명관리가 매우 중요하다. 바둑은 집을 많이 차지하려는 경제적인 싸움이지만, 바둑돌의 삶과 죽음이 더 큰 관심을 끈다. 돌이 목숨을 다하면 집이고 뭐고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바둑에서는 사활(死活)에 관한 분야가 특별하게 발달되어 있다. 옛날부터 『현현기경』, 『기경중묘』 같은 사활묘수집이 많이 편찬되었다. 국내 최고 실력자인 박정환 9단은 사활에 관한 책을 가지고 다닌 것으로 유명하다. 왕년의 바둑 스타 유창혁 9단도 사활책을 가지고 다녔다. 바둑에서 건강관리에 관한 중요한 노하우를 하나 배워보자.


큰 곳보다 급한 곳
바둑에는 건강관리가 중요함을 보여주는 내용이 많다. 한 예로 바둑 수를 고를 때 적용하는 격언 중에 “큰 곳보다 급한 곳을 두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경제적으로 가치 있는 곳보다 생사와 관련된 곳을 먼저 두라는 뜻이다. 
 
경제전인 바둑에서 수익을 많이 올릴 수 있는 곳을 선점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바둑돌의 삶과 관련돼 있을 때는 사활에 관한 문제부터 다뤄야 한다는 것이다. 생명의 문제가 오가는데 단순히 경제적 이익만을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바둑 수를 고를 때 적용되는 격언 중에 '큰 곳보다 급한 곳을 두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경제적으로 가치 있는 곳보다 생사와 관련된 곳을 먼저 두라는 뜻이다. [중앙포토]

바둑 수를 고를 때 적용되는 격언 중에 '큰 곳보다 급한 곳을 두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경제적으로 가치 있는 곳보다 생사와 관련된 곳을 먼저 두라는 뜻이다. [중앙포토]

 
인간생활도 비슷하다. 사람들은 대부분 경제적 이익을 좇아 일한다. 그러나 건강이 악화하거나 하면 열 일 제쳐놓고 병원으로 달려간다. 돈벌이나 다른 일이 중요하다고 해도 건강문제가 무엇보다도 급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건강문제가 심각해진 다음에 조치를 취하는 것은 현명한 방법은 아니다. 미리 대비해 예방하는 것이 상책이다. 바둑고수는 본능적으로 돌의 생명이 문제시되기 전에 손을 쓰는 방식을 쓴다.


돌을 무겁게 만들지 마라
바둑판에서 쓰는 건강관리의 중요한 비결은 자신의 돌을 둔중한 모습으로 만들지 말라는 것이다. 무겁고 둔한 모습이 되면 상대방에게 공격당해 잡힐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덩치가 큰 바둑돌의 무리를 ‘대마(大馬)’라고 하는데, 육중한 모습의 대마는 바둑 두는 사람에게 많은 부담을 준다.
 
그래서 바둑에서는 누구나 무거운 돌을 좋아하지 않는다. 가능하면 자신의 돌을 가벼운 모습으로 만들려고 한다. 이것을 잘 보여준 기사는 바둑황제 조훈현 9단이다. 왕년에 세계를 제패했던 조훈현 9단은 경쾌하고 빠르게 움직이는 행마로 유명했다. 그래서 조 9단에게는 ‘제비’라는 별명이 붙여졌다. 제비처럼 경쾌한 바둑을 구사한다는 의미다. 조훈현 9단은 등산을 할 때도 제비처럼 날렵하게 움직였다고 한다.


탄력성을 갖춰라
한국 바둑의 살아 있는 전설 조훈현(왼쪽) 9단과 조치훈 9단의 대국이 한국기원에서 열렸다. 대국이 끝난 뒤 두 기사가 복기를 하는 도중 웃음을 터뜨리고 있다. [중앙포토]

한국 바둑의 살아 있는 전설 조훈현(왼쪽) 9단과 조치훈 9단의 대국이 한국기원에서 열렸다. 대국이 끝난 뒤 두 기사가 복기를 하는 도중 웃음을 터뜨리고 있다. [중앙포토]

 
바둑돌의 안녕과 관련해 무거운 돌과 대비되는 특별한 개념이 있다. 바로 ‘탄력성’이라는 말이다. 바둑 격언에서는 바둑돌을 가능하면 탄력성이 풍부한 돌로 만들라고 한다. 탄력성이라는 것은 위험한 상황에서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말한다.
 
탄력성이 있는 바둑돌은 쉽사리 잡히지 않는다. 상대방이 공격해도 탁구공처럼 탄력 있게 튀어 교묘하게 위험을 벗어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둑고수들은 자기 돌을 탄력성 있는 돌로 만들어둔다.
 
의미는 좀 다르지만 삶에서 ‘회복탄력성’이라는 말이 종종 쓰인다. 회복탄력성은 역경이나 시련을 오히려 도약의 발판으로 삼아 더 높이 튀어 오르는 마음의 근력을 의미한다. 회복탄력성이 뛰어난 사람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탄력성 있게 회복을 한다. 바둑에서도 탄력 있는 돌은 어려운 상황에서 무너지지 않고 역경을 탄력 있게 대처해 낸다.
 
바둑에서 탄력성 있는 돌이 위기를 극복하며 생명력을 잃지 않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아보았다. 사람도 탄력성을 갖는다면 나쁠 이유가 없을 것 같다. 갑자기 병마가 다가와도 탄력 있게 막아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우울한 기분이나 무력감 같은 심리적 위기에도 탄력성을 발휘하며 효과적으로 대응해 낼 것이다.
 
정수현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 shjeong@mj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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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현 정수현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 필진

[정수현의 세상사 바둑 한판] 바둑에 올바른 길이 있듯이 인생에도 길이 있다. 중년과 노년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나? 정수가 아닌 꼼수와 속임수에 유혹을 느끼기 쉽다. 인생의 축소판으로 통하는 바둑에서 삶의 길을 물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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