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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받이' 황희찬-의조, 그들도 김영권처럼 인생을 걸었다

중앙일보 2018.09.02 09:49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축구 한국-일본의 결승전이 1일 인도네시아 보고르 치비농 파칸사리 스타디움에서 열렸다. 황희찬이 연장 전반에 추가골을 넣은 후 황의조와 포옹하고 있다. 치비농=김성룡 기자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축구 한국-일본의 결승전이 1일 인도네시아 보고르 치비농 파칸사리 스타디움에서 열렸다. 황희찬이 연장 전반에 추가골을 넣은 후 황의조와 포옹하고 있다. 치비농=김성룡 기자

 
2018 러시아 월드컵을 앞두고 중앙수비 김영권(28·광저우 헝다)은 축구팬들에게 가장 많은 욕을 먹는 선수였다. 상대 공격수에 뻥뻥 뚫린다며 ‘자동문’이란 비아냥을 들었고, 지난해 8월 이란전에서 0-0으로 비긴 뒤 “관중의 소리가 커서 소통하기 힘들었다”고 말했다가 팬들의 집중포화를 맞았다.  

'국민 역적' 취급 황희찬, 결승전 결승골
호날두 헤딩골+박지성 산책 세리머니
'인맥 축구' 논란 황의조는 9골 득점왕
월드컵 김영권처럼 축구로 비난 잠재워

 
김영권은 러시아 월드컵에서 세계 1위 독일의 공격을 육탄방어로 막아냈고, 후반 추가시간엔 결승골까지 뽑아냈다. 김영권은 대회 후 “뼈가 부러져도 상관없다는 각오로 뛰었다”고 고백했다. 팬들은 그를 이제 ‘킹영권’ ‘빛영권’이라고 부른다.  
김영권이 독일월드컵 뒤 서울 한 커피숍에서 독일전 결승골 세리머니를 재현하고 있다. 김영권은 독일과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골을 터트린 뒤 팔뚝에 입을 맞추는 세리머니를 펼쳤다. 그의 팔뚝에는 힘든 시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힘이 되어준 아내와 딸의 이름이 새겨져있다. 김경록 기자, 카잔=임현동 기자

김영권이 독일월드컵 뒤 서울 한 커피숍에서 독일전 결승골 세리머니를 재현하고 있다. 김영권은 독일과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골을 터트린 뒤 팔뚝에 입을 맞추는 세리머니를 펼쳤다. 그의 팔뚝에는 힘든 시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힘이 되어준 아내와 딸의 이름이 새겨져있다. 김경록 기자, 카잔=임현동 기자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공격수 황희찬(22·함부르크)과 황의조(26·감바 오사카)도 김영권처럼 인생을 걸었다. 이번 대회에서 많은 비판을 받았지만, 축구장에서 축구로 답했다.
 
황희찬은 이번 대회에서 거의 ‘국민 역적’ 취급을 받았다. 약체 말레이시아전에서 득점 찬스를 놓쳐 ‘반둥 참사’의 장본인이라고 질타를 받았다. 키르기스스탄과 3차전에서는 공을 띄워 상대를 돌파하는 사포(레인보우 플릭)를 시도했다가 욕을 먹었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축구 대한민국과 우즈베키스탄의 8강전이 27일 보고르 패트리어트 스타디움에서 열렸다. 4-3 역전골을 터뜨린 황희찬이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축구 대한민국과 우즈베키스탄의 8강전이 27일 보고르 패트리어트 스타디움에서 열렸다. 4-3 역전골을 터뜨린 황희찬이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우즈베키스탄과 8강전에서는 3-3으로 팽팽히 맞선 연장 후반 12분 페널티킥 결승골을 터트렸지만, 상의를 벗어 유니폼을 펼친 세리머니가 도마 위에 올랐다. 페널티킥을 직접 얻어낸 것도 아니고, 세리머니가 과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절치부심한 황희찬은 1일 일본과 결승전에서 역대 한일전 역사에 남을 ‘원더골’을 터트렸다. 1-0으로 앞선 연장 전반 11분 손흥민(토트넘)이 왼쪽에서 프리킥을 올리자, 황희찬이 돌고래처럼 솟구쳐 올랐다.
1일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결승전 한국과 일본의 경기. 한국 황희찬이 헤딩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1일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결승전 한국과 일본의 경기. 한국 황희찬이 헤딩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체력적으로 한계에 부딪히는 연장전인데도, 황희찬은 수퍼스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유벤투스)를 연상케하는 엄청난 점프를 선보였다. 그리곤 정확한 헤딩슛으로 골망을 흔들었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축구 한국=일본의 결승전이 1일 인도네시아 보고르 치비농 파칸사리 스타디움에서열렸다. 황희찬이 연장 전반에 추가골을 넣은 후 달려가고 있다. 치비농=김성룡 기자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축구 한국=일본의 결승전이 1일 인도네시아 보고르 치비농 파칸사리 스타디움에서열렸다. 황희찬이 연장 전반에 추가골을 넣은 후 달려가고 있다. 치비농=김성룡 기자

 
황희찬은 천천히 달리며 침묵에 빠진 일본 응원단을 바라봤다. 한국축구 레전드 박지성이 2010년 5월 일본 사이타마에서 열린 일본과의 평가전에서 골을 넣은 뒤 펼쳤던 ‘산책 세리머니’를 재현했다. 일본이 한골을 만회했지만 한국이 2-1로 승리하면서, 황희찬의 득점이 결승골이 됐다.
 
황희찬은 일본전에서 골찬스를 놓친 뒤 땅을 쳤다. 승부욕이 넘치는 손흥민(토트넘)이 황희찬 나이 때에 자주 보인 모습이다. 황희찬에게 실망했던 팬들도 이런 모습에 마음이 누그러졌다. 
 
1일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축구 한국-일본 결승전에서 황의조의 패스를 받지 못한 황희찬이 아쉬운 마음에 땅을 치고 있다. 치비농=김성룡 기자

1일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축구 한국-일본 결승전에서 황의조의 패스를 받지 못한 황희찬이 아쉬운 마음에 땅을 치고 있다. 치비농=김성룡 기자

저돌적인 플레이를 펼쳐 별명이 ‘황소’인 황희찬은 러시아 월드컵을 기점으로 기량이 정체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최근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를 떠나 독일 함부르크로 임대이적하면서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안정환 MBC 해설위원은 “오늘 경기가 황희찬 축구인생 터닝포인트가 됐으면 좋겠다. 헤딩슛처럼 더 높이 날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난달 27일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8강전 한국과 우즈베키스탄의 경기. 황의조가 골을 넣은 뒤 김학범 감독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27일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8강전 한국과 우즈베키스탄의 경기. 황의조가 골을 넣은 뒤 김학범 감독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황의조 역시 이번 대회를 앞두고 ‘인맥축구’ 논란에 휩싸였다. 일부 축구팬들은 김학범 감독이 2014년부터 3년간 성남 시절 제자였던 황의조에게 병역혜택 기회를 주기 위해 뽑았다고 주장했다.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 게시판에 ‘황의조를 아시안게임 대표팀에서 퇴출하라’는 글도 올라왔다.  
 
하지만 황의조는 골로 논란을 잠재웠다. 요즘 말로하면 ‘동료들 멱살 잡고 하드캐리’했다. 바레인전과 우즈베키스탄전 해트트릭을 포함해 이번 대회에서만 9골을 몰아쳐 득점왕에 올랐다. 
  
1일 인도네시아 보고르 파칸사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결승전 대한민국과 일본의 경기를 마치고 황의조가 태극기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뉴스1]

1일 인도네시아 보고르 파칸사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결승전 대한민국과 일본의 경기를 마치고 황의조가 태극기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뉴스1]

 
황의조는 스스로 비난을 찬사로 돌려놓았다. ‘김학범 감독 인맥으로 황의조를 모셔왔다’, ‘착한 인맥축구의 모범사례’, ‘이회택-차범근-최순호-황선홍-이동국 이후 끊겼던 한국 정통스트라이커 계보를 이을 선수가 등장했다’는 호평이 이어졌다. 국내 축구팬들은 이젠 황의조를 ‘킹의조’, ‘갓의조’라 부른다.
1일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결승전 한국과 일본의 경기. 한국 황희찬이 연장 전반 두번째 골을 성공시킨 뒤 황의조와 포옹하고 있다.[연합뉴스]

1일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결승전 한국과 일본의 경기. 한국 황희찬이 연장 전반 두번째 골을 성공시킨 뒤 황의조와 포옹하고 있다.[연합뉴스]

 
‘H-H 공격 콤비’ 황희찬과 황의조는 ‘축구선수는 축구장에서 보여줘야 한다’는 진리를 입증했다. 
 
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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