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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리포트]패자의 땅에 '메이지유신 150년'은 없었다

중앙일보 2018.09.02 06:00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시골 도시는 천혜의 요새처럼 보였다. 150년 전의 역사를 더듬는 이들로 그 곳은 시끌벅적했다.  
  

메이지 유신 150년 보는 시각은 여러가지
메이지 세력에 절멸적 패배 당한 아이즈엔
'메이지 유신'대신 '보신전쟁 150년' 깃발만
"잡히느니 자결"소년 무사 무덤엔 참배객들
아베 정부,10월 정부 차원의 기념 행사 계획
"근대화 초석"vs "군국주의 잉태" 논쟁 격렬

1868년 8월 23일 15~17세의 소년 무사들 20명이 한꺼번에 자결했던 이모리(飯盛)산 중턱의 자결터와 묘지엔 150번째 돌아오는 기념일을 엿새 앞두고 관광객들이 몰려들었다.   

 
아이즈번의 쓰루가성이 함락된 줄 착각하고, 이모리산 중턱에서 자결한 백호대 소속 소년 무사 20명. 그 곳을 보기위해 관광객들이 몰려들었다. 서승욱 특파원

아이즈번의 쓰루가성이 함락된 줄 착각하고, 이모리산 중턱에서 자결한 백호대 소속 소년 무사 20명. 그 곳을 보기위해 관광객들이 몰려들었다. 서승욱 특파원

산에서 2.5km쯤 떨어진 쓰루가성(鶴ヶ城·아이즈성)의 천수각에선 150년 전의 전쟁을 기념하는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다. 평일인데도 천수각 내부는 1층부터 5층 전망대까지 빈틈이 없을 정도였다. 
 
지난 8월 17일 찾아간 아이즈와카마쓰 쓰루가성의 천수각 모습. 1868년 아이즈번은 이 성을 근거지로 메이지 유신 세력을 상대로 5개월간 전투를 했다. 서승욱 특파원

지난 8월 17일 찾아간 아이즈와카마쓰 쓰루가성의 천수각 모습. 1868년 아이즈번은 이 성을 근거지로 메이지 유신 세력을 상대로 5개월간 전투를 했다. 서승욱 특파원

지난달 17일 도쿄에서 동북쪽으로 3시간 30분을 달려 도착한 후쿠시마(福島)현 아이즈와카마쓰(會津若松·옛지명은 아이즈번)의 모습이다. 
 
아이즈(會津)번은 도쿠가와(德川)막부와 한 집안인 다이묘 아이즈 마쓰다이라(松平)가의 영지였다. 
도쿠가와 막부를 무너뜨린 메이지 유신의 중심세력, '삿초(薩長·사쓰마번+조슈번)동맹'에 대항하는 반(反)삿초, 반(反)유신의 중심이었다. 사쓰마는 지금의 가고시마(鹿兒島)현, 조슈는 야마구치(山口)현이다. 아이즈는 이 삿초에 맞설만큼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한 무사들의 땅이었다. 
지난 8월 17일 찾아간 아이즈와카마쓰 쓰루가성에선 보신전쟁 150년을 맞아 각종 기념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1868년 아이즈번은 이 성을 근거지로 메이지 유신 세력을 상대로 5개월간 전투를 했다. 서승욱 특파원

지난 8월 17일 찾아간 아이즈와카마쓰 쓰루가성에선 보신전쟁 150년을 맞아 각종 기념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1868년 아이즈번은 이 성을 근거지로 메이지 유신 세력을 상대로 5개월간 전투를 했다. 서승욱 특파원

 
천하의 대세가 삿초동맹으로 넘어간 이후에도 나머지 세력을 규합해 보신전쟁(戊辰戰爭·1868년 1월~1869년 6월)을 치르며 최후까지 거세게 저항했다. 1868년 5월부터 아이즈성(쓰루가성)을 배경으로 치러진 5개월간의 치열한 전투는 그 하이라이트였다.
 
특히 유명한 건 뱟코타이(白虎隊·백호대)의 비극이다. 적의 추격에 쫒겨 이모리산 중턱으로 숨어들었던 백호대 소속 어린 무사들은 성 주변에서 피어 오르는 연기를 보고 성이 함락된 걸로 오해했다.
 
그러곤 "살아서 치욕을 당하느니 장렬한 최후가 낫다"며 자결을 택했다. 기적적으로 살아 남은 한 명이 이 비극을 전하면서 백호대 소년대원들은 아이즈의 전설이 됐다.  
 
연기가 피어오르는 성 주변을 바라보는 소년상, 그리고 나란히 서 있는 19개의 묘지석은 비극적인 운명을 웅변한다.   
아이즈번의 쓰루가성이 함락된 줄 착각하고, 이모리산 중턱에서 자결한 백호대 소속 소년 무사들의 묘지를 관광객들이 참배하고 있다. 서승욱 특파원

아이즈번의 쓰루가성이 함락된 줄 착각하고, 이모리산 중턱에서 자결한 백호대 소속 소년 무사들의 묘지를 관광객들이 참배하고 있다. 서승욱 특파원

소년들의 죽음 한달 뒤 아이즈번은 실제로 함락됐다. 능욕을 당하느니 자살을 택한 여성들까지 합쳐 수천명의 시신이 성안에 나뒹굴었다. 시신은 매장 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반란군'의 오명을 뒤집어쓴 아이즈의 무사 등 1만7000명은 일본 혼슈(本州)의 땅끝인 지금의 아오모리(靑森)현 시모기타(下北)반도의 황무지로 쫒겨났다. 
 
아이즈와카마쓰 이모리산 중턱에 있는 백호대 기념관.서승욱 특파원

아이즈와카마쓰 이모리산 중턱에 있는 백호대 기념관.서승욱 특파원

아이즈 역사 연구가들 사이에선 "일본 근대사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원한과 분노가 잉태됐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1930년대까지의 일본 역사 교과서는 "아이즈번주는 성안에 틀어박혀 관군에 저항했다"며 그들을 ‘반란군’으로 묘사했다. 
 
아이즈와카마쓰 이모리산 중턱에 있는 백호대 기념관 내부의 모습. 보신전쟁과 백호대 관련 자료가 전시돼 있다. 서승욱 특파원

아이즈와카마쓰 이모리산 중턱에 있는 백호대 기념관 내부의 모습. 보신전쟁과 백호대 관련 자료가 전시돼 있다. 서승욱 특파원

"태평양 전쟁 전까지 아이즈엔 대학도 세워지지 않았다","철도 등 인프라 측면에선 물론 관료나 군 인사 등에서도 엄청난 차별을 받았다"는 피해의식은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지난달 17일 찾은 아이즈와카마츠에선 ‘메이지 유신 150년’이란 문구를 찾기가 불가능했다. 가는 곳마다  ‘보신전쟁 150년’이란 깃발만 펄럭였다. 
 
150년 전 아이즈번에 ‘황무지 추방’이란 가혹한 운명을 안긴 이가 조슈번 출신의 기도 다카요시(木戶孝允)다. 삿쵸동맹을 성사시킨 유신 3걸 중 한 사람이다. 
 
기도의 후손인 아베 신조 총리는 지난달 26일 자민당 총재 경선 출마 선언을 일부러 가고시마에서 했다. 그리곤 "사쓰마와 (자신의 출신지역인)조슈가 다시 한번 힘을 합쳐 새로운 시대를 열고 싶다"고 말했다. 지지통신은 그날 "아이즈처럼 반대쪽에서 싸웠던 지역의 반발이 일어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아베 총리에게 메이지 유신 150년은 찬란하게 빛나는 승자의 역사다. "150년 전 국난을 맞아 새로운 국가 만들기에 나섰던 조상들처럼 한번 더 새로운 국가 만들기에 매진하자"고 입버릇처럼 강조한다.  
 
승자의 땅 가고시마와 야마구치에선 "우리가 역사의 주역"이라고 강조하는 기념행사가 1년 내내 이어지고 있다. 10월엔 정부 차원의 기념식까지 열린다. 
 
물론 메이지 유신이 일본 근대화의 초석이 된 건 부인하기 어렵다. 
아이즈와카마쓰에선 일본 정부가 강조하는 '메이지 유신 150주년'이란 표현을 찾기 힘들다. 대신 그들에게 치욕적인 패배를 남겼던 보신전쟁 150년을 기념한다. 서승욱 특파원

아이즈와카마쓰에선 일본 정부가 강조하는 '메이지 유신 150주년'이란 표현을 찾기 힘들다. 대신 그들에게 치욕적인 패배를 남겼던 보신전쟁 150년을 기념한다. 서승욱 특파원

 
메이지사 권위자인 미타니 히로시(三谷博)도쿄대 명예교수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메이지 유신은 일본의 근대화가 시작된 제1혁명이다. 태평양전쟁 이후의 개혁, 즉 제2혁명으로 이어져 현재 일본의 모습을 만들었다" 고 말했다. 
 
하지만 메이지 유신의 역사 전체가 모두 아름답기만 한 건 아니다.  
 
'아이즈의 비극'이란 대립과 차별의 역사가 있었고,1890년대 이후 일본 전체를 전쟁 체제로 몰아간 역사의 과오가 잉태되기도 했다.    
 
아이즈번의 쓰루가성이 함락된 줄 착각하고, 이모리산 중턱에서 자결한 백호대 소속 소년 무사들,그들이 자결한 터를 가리키는 관광 안내판. 서승욱 특파원

아이즈번의 쓰루가성이 함락된 줄 착각하고, 이모리산 중턱에서 자결한 백호대 소속 소년 무사들,그들이 자결한 터를 가리키는 관광 안내판. 서승욱 특파원

그런 이유로 50년 전인 1968년 당시에도 '메이지 100년 논쟁'이 치열했다. 
야마구치현 출신인 당시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총리도 "서양을 추격하고 능가한 100년의 역사를 기려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전쟁을 반복해온 100년의 역사가 과연 축복할 역사냐"는 반론이 몰아쳤다. 
 
50년 뒤 사토 총리의 외손자 아베 총리의 시대에도 논란은 또 반복된다. 
"메이지 유신엔 군국주의 일본의 토양이 된 마이너스적인 측면도 있다. 통째로 찬양하는 건 지나치다"(니혼게이자이 신문 칼럼) ,"메이지 시대 초기 고양됐던 자유ㆍ인민ㆍ평등의 정신이 (전쟁이 나면 천황을 위해 싸우라는 취지의)1890년 교육칙어 발표이후 사라져 버렸다"(아사히 신문)는 비판들이 또 나온다. 또 "인구 증가를 전제로 한 경제성장을 추구하고 중앙집권에만 몰입하는 등 각종 폐해가 나타나기 시작한 건 메이지 이후"라며 오히려 ‘메이지 레짐의 극복’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있다.
 
올해 일본 서점가의 대세도 메이지 유신 예찬이 아니다. 『유신의 그늘』,『메이지 유신이라는 과오』처럼 메이지 유신에 대한 과대포장을 경계하는 책들도 수두룩하다.   
 
메이지 유신의 얼굴은 하나가 아니다.  
 
아이즈와카마쓰=서승욱 특파원 sswook@joongang.co.kr
메이지 이후 日을 석권한 야마구치현…총리만 8명 배출
아베 신조 총리에게 야마구치현은 자부심의 근원이자 원점이다.  
 
20일 자민당 총재 3연임 도전을 앞둔 그는 "조슈(長州ㆍ야마구치현의 옛이름)의 정치인으로서…","사쓰마와 조슈가 힘을 합쳐…"라는 말을 자주한다.  
 

 이토 히로부미 일본 초대 총리 [중앙포토]

이토 히로부미 일본 초대 총리 [중앙포토]

조슈는 사쓰마(薩摩·지금의 가고시마)번과 '삿초(薩長·사쓰마+조슈)'동맹을 맺어 도쿠가와(徳川)막부를 무너뜨렸다. 그리고 메이지 시대 이후 사쓰마와 총리직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사실상 일본 정치를 석권해왔다.  
 

야마구치현 출신의 총리는 현재의 아베 총리를 포함해 모두 8명이다.  
전국의 47개 도도부현(都道府県·광역자치단체)중 가장 많다.  

 

태평양전쟁 패전 이전엔 초대 총리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초대 조선통감)와 '조슈 군벌의 대부'로 불리는 야마가타 아리토모(山縣有朋), 가쓰라 다로(桂太郎)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초대 조선총독),다나카 기이치(田中義一) 등 5명이다.  
 야마구치현 출신 사토 에이사쿠 전 총리. [중앙포토]

야마구치현 출신 사토 에이사쿠 전 총리. [중앙포토]

 

전후엔 아베 총리의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岸信介)와 그의 동생인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 그리고 아베 총리 등 3명이다.
 

야마구치현이 배출한 총리들은 단순히 숫자가 많을 뿐만 아니라 재임 기간도 압도적으로 길다.  
1966년 9월 1일 김종필 공화당 의장(오른쪽)이 제2회 아시아국회의원연맹(APU) 총회 참석차 방한한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전 일본 총리와 환담하고 있다. [중앙포토]

1966년 9월 1일 김종필 공화당 의장(오른쪽)이 제2회 아시아국회의원연맹(APU) 총회 참석차 방한한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전 일본 총리와 환담하고 있다. [중앙포토]

 
일본의 역대 총리 57명의 재임기간을 보면 가쓰라 다로가 2886일로 1위, 사토 에이사쿠가 2위(2798일), 이토 히로부미가 3위(2720일)다. 그리고 2445일(9월2일 현재)로 5위를 달리는 아베 총리까지 야마구치 출신들이 상위권을 휩쓸고 있다.
 

도쿄=서승욱 특파원 ss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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