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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로 짓는 주경기장, 천년 고찰 ‘호류지’에서 힌트 얻었다”

중앙선데이 2018.09.01 02:00 599호 8면 지면보기
2020년 도쿄 올림픽 주경기장 설계한 건축가 구마 겐고
중국 쓰촨 성 청두시에 있는 신진지(新津知) 예술관. 건축가 구마 겐고는 현지에서 구운 토속 기와를 스테인리스 와이어에 매달아 건물 외관을 완성했다. ⓒ고노 다이치(阿野太一). 안그라픽스 제공

중국 쓰촨 성 청두시에 있는 신진지(新津知) 예술관. 건축가 구마 겐고는 현지에서 구운 토속 기와를 스테인리스 와이어에 매달아 건물 외관을 완성했다. ⓒ고노 다이치(阿野太一). 안그라픽스 제공

2020년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있는 일본 건축계의 가장 큰 이슈는 주경기장이다. 도쿄국립경기장을 철거하고 새로 짓는 프로젝트다. 2012년 국제 디자인 공모전을 거쳐 건축가 자하 하디드(1950~2016)의 안이 최종 선정됐다가 번복됐다. 1조 원대로 책정했던 공사비가 2조 원대로 늘어날 수 있다는 예측이 나왔기 때문이다. 논란 끝에 공모전은 없었던 일이 됐다. 재공모를 거쳤고, 일본 건축가 구마 겐고(隈研吾·64)가 당선됐다.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로 유명한 자하 하디드의 주경기장 설계안은 다분히 미래적이었다. 그런데 구마 겐고는 자연을 컨셉트로 삼았다. 일명 ‘나무와 초록의 스타디움’이었다. 주변 녹지와의 조화를 강조하며 경기장 지붕을 나무로 만들겠다고 했다. 6만8000명을 수용하게 될 도쿄 올림픽 주경기장은 ‘친환경’이라는 컨셉트로 세계 건축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 23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2018 세계목조건축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 구마 겐고를 중앙SUNDAY S매거진이 만났다. 그는 ‘하모니(harmonyㆍ조화)’라는 단어를 반복해 썼다. “건축물이 크든 작든 주변과 하모니를 이뤄야 한다”는 것이 ‘작은 건축’으로 대변되는 그의 건축 철학이었다.
일본 고치현에 자리 잡은 유스하라 우든브리지 뮤지엄. 인근 삼나무 숲에서 채취한 삼나무와 철을 결합해 만든 다리 모양으로 디자인했다. 작은 부재들을 일본의 전통 건축 기법으로 쌓아 만들었다. ⓒ오타 다쿠미(太田拓実) . 안그라픽스 제공

일본 고치현에 자리 잡은 유스하라 우든브리지 뮤지엄. 인근 삼나무 숲에서 채취한 삼나무와 철을 결합해 만든 다리 모양으로 디자인했다. 작은 부재들을 일본의 전통 건축 기법으로 쌓아 만들었다. ⓒ오타 다쿠미(太田拓実) . 안그라픽스 제공

 
올림픽 주경기장을 나무로 짓겠다고 했다.  
“공모전 심사를 할 때 가장 많이 받은 질문도 ‘나무’였다. ‘나무인데 괜찮으냐’ ‘어떻게 지속가능할 수 있느냐’와 같은 의문이었다. 심사위원들한테 나라현에 있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 ‘호류지(法隆寺)’를 보여줬다. 7세기에 지어진 사찰인데 지금까지 건재하지 않느냐고 안심시켰다. 1000년 넘은 고찰의 비결 중 하나는 지붕의 처마 구조다. 뻗어나온 처마가 구조체인 나무를 보호한다. 낡은 나무를 새 것으로 교체할 수 있는 목구조 시스템도 또다른 비법이다. 주경기장에 철골도 쓰일 테지만, 나무를 쓸 때는 호류지의 지혜를 되살릴 참이다.”  
 
거대한 경기장에 자연 바람을 불어넣을 거라고 했다.  
“풍향을 조정하게끔 디자인하면 자연적으로 공기 순환이 잘되게 할 수 있다. 경기장 주변의 풍향을 모두 체크, 남풍이 부는 여름에 대비해 남쪽 입면의 나무 루버(격자형 차광판) 간격을 조정해 바람이 객석으로 내려오게 했다. 겨울에는 북풍이 부니 북쪽 면의 루버를 조정해 바람이 객석에 닿지 않고 위로 빠져나가게 했다. 20세기 들어 건물 환기를 위해 기계 장치를 쓰기 시작했지만 자원 낭비가 심하고 비용이 너무 든다. 자연에 깃든 과학적인 원리를 잘 연구해 디자인에 반영하는 것이 중요하다.”
 
“동일본 대지진은 큰 건축의 시대에 내린 벌”
2020년 완공 예정인 도쿄 올림픽 주경기장. 오래된 절 호류지(오른쪽 작은사진)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나무 지붕을 얹을 예정이다.[AP=연합뉴스]

2020년 완공 예정인 도쿄 올림픽 주경기장. 오래된 절 호류지(오른쪽 작은사진)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나무 지붕을 얹을 예정이다.[AP=연합뉴스]

도쿄대에서 건축학을 전공한 구마 겐고는 현재 도쿄ㆍ파리ㆍ베이징에서 총 200여 명의 직원을 둔 구마 겐고 도시건축설계사무소의 대표이면서 도쿄대 교수로도 재직하고 있다. 실무를 겸한 이론가다. 그의 건축세계를 뒷받침하는 저서도 많이 출간했다.『약한 건축』 『자연스런 건축』 『연결하는 건축』 『작은 건축』 『삼저주의』  『나, 건축가 구마겐고』 『의성어 의태어 건축』 등이다.  
 
책의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듯, 그는 대량생산ㆍ대량소비로 갈음되는 20세기에 반기를 든 건축가다. 콘크리트ㆍ강철ㆍ유리로 만든 비슷한 모양새의 고층 건물이 전세계에 우후죽순 들어서는 것에 반대한다. ‘작고 약하고 연결하는’ 건축을 위해 그가 선택한 소재는 나무ㆍ돌ㆍ흙과 같은 자연 소재다. 건물이 들어설 땅에 오래도록 있어왔던 재료다.  
 
일본 고치현에 있는 나그네를 위한 쉼터 유스하라 ⓒ 오타 다쿠미(太田拓?). 안그라픽스 제공

일본 고치현에 있는 나그네를 위한 쉼터 유스하라 ⓒ 오타 다쿠미(太田拓?). 안그라픽스 제공

“1990년대 도쿄에서 일이 없어 전국을 다니며 지방에서 일거리를 찾았습니다. 그때 작고 약한 건축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지역의 장인과 협업해 그 지역에서 나는 재료를 가지고 건축하는 일에 눈 떴죠. 일본에서만이 아니라 전세계의 프로젝트에서 동일한 스타일로 일합니다.”  
 
전환점이 됐던 프로젝트로 도치기현에 있는 ‘히로시게 미술관’을 꼽았다. 2000년 완공된 이 미술관의 주재료는 삼나무. 마을 뒷산에서 가져온 재료였다. 그는 “어디서나 통용되는 게 아니라 그 장소에서만 가능한, 눈에 띄고 특별한 건축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다음 시기에 요구되는 건축가의 행위”라며 “해외 프로젝트에서도 마찬가지로 각 지역의 최고 장인을 찾아서 그 지역에서 나는 재료로 건축하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20세기에 반기 드는 ‘작은 건축’을 화두로 삼은 건축가에게 2011년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은 자신의 철학을 더욱 공고하게 만든 계기였다. 구마 겐고는 저서 『작은 건축』 에서 “‘큰 건축’을 위해, 전력을 충당하기 위해 원자력 발전이 필요해졌고, 그에 따른 무리가 여실히 드러났다”며 “(동일본 대지진은) ‘큰 건축’을 향해 조립된 방식 전체에 자연이 천벌을 내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소회했다. 또 안전하고 단단한 피난처라고 생각했던 콘크리트 건물이 무너져 내려 사람들이 크게 다치는 것을 보면서 작고 약하며 연결하는 건축에 대한 관심을 더욱 다졌다.  
2018년 여름 개장을 목표로 공사 중인 빅토리아&앨버트 미술관 스코틀랜드 분관 앞에서 지난해 10월 포즈를 취하고 있는 구마 겐고.[AP=연합뉴스]

2018년 여름 개장을 목표로 공사 중인 빅토리아&앨버트 미술관 스코틀랜드 분관 앞에서 지난해 10월 포즈를 취하고 있는 구마 겐고.[AP=연합뉴스]

 
인구밀도가 높은 도시에서 어떻게 ‘작은 건축’이 가능한가.    
“인구밀도가 높다하더라도 이웃 간의 ‘하모니(조화)’가 중요하다. 이웃ㆍ풍경ㆍ자연과의 관계를 먼저 살피는 것이 내 디자인의 출발점이다. 큰 도시라도 작은 단위로 쪼개 보면 동네와 이웃이 있다. 결국 그들과 어떻게 조화롭게 어우러질 것인가가 가장 중요하다.”  
 
구마 겐고의 건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모니인가.  
“그렇다. 20세기는 분리가 화두였다. 자연과 사람을 분리하고자 하는 게 디자인의 목표였다. 하지만 나는 20세기 건축물과 전혀 다르게 접근하려 한다. 분리보다 조화다.”
 
이제는 콘크리트 대신 자연 소재로 건축하는 시대  
6㎝ 두께의 나무 막대를 일본 전통 결구 방식으로 짜맞추어 대바구니 같은 구조의 집을 만들었다. 2013년 완공돼 도쿄 아오야마 주택가에서 파인애플 케이크 가게로 쓰고 있다. ⓒ 고노 다이치(阿野太一). 안그라픽스 제공

6㎝ 두께의 나무 막대를 일본 전통 결구 방식으로 짜맞추어 대바구니 같은 구조의 집을 만들었다. 2013년 완공돼 도쿄 아오야마 주택가에서 파인애플 케이크 가게로 쓰고 있다. ⓒ 고노 다이치(阿野太一). 안그라픽스 제공

콘크리트 대신 지역 재료를 건축 재료로 삼으면 표준화가 안 되어 있어 공사하기 힘들 듯하다.  
“그래서 지역 장인과의 협업이 중요하다. 그 장소에서 나는 재료를 제일 잘 아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장인들의 기술이 동일하지 않다보니 같은 재료를 쓰더라도 결과물에서 차이가 크게 나기도 한다. 이를 관리하기 위해 모든 프로젝트마다 실제 크기의 모형을 만든다. 나는 드로잉을 신뢰하지 않는다. 3D 랜더링도 믿지 않는다. 실제 재료를 썼을 때 다른 경우를 너무 많이 봤다. 건물의 주요 입면이라던지, 주요 구조체의 실제 사이즈 모형을 만들어서 품질을 확인한다. 전반적으로 아날로그 방식을 선호하나, 내 건축 디자인의 모양새가 유기적인 경우가 많아서 가장 좋은 모양을 찾기 위해서 컴퓨터 작업을 함께 한다.”  
 
공사비가 비쌀 것 같다.
“일본의 경우 지역에서 활동하는 목수가 많아서 인건비가 그리 비싸지 않다. 작은 프로젝트일 경우 콘크리트보다 목재가 더 싸기도 하다. 프로젝트마다 다르지만 더욱 효율적으로 풀어나가는 방향을 늘 찾고 있다.”  
 
이색 재료를 쓴다 했을 때 건축주들의 반응은 어떤가.  
“후쿠오카 다자이후텐만구의 스타벅스 컨셉 스토어의 경우 6㎝ 두께의 나무막대를 겹겹이 쌓아 나무 동굴처럼 만들었다. 장식용이 아니라 구조체가 되게끔 치밀하게 계산해서 겹쳐놨다. 처음에는 스타벅스 본사에서 엄청나게 불만을 가졌다. 통상 3~4개월이면 끝날 프로젝트가 2년 넘게 걸렸다. 작업이 끝나고서야 모두가 행복했다. SNS를 통해 이 스타벅스 매장이 유명세를 떨치면서 후쿠오카에서 꼭 방문해야 할 명소가 됐기 때문이다. 하하.”
2012년 도쿄에 건립된 아사쿠사 문화관광센터. 에도 문화를 현대에 전하는 시설의 컨셉트에 걸맞게 옛 목조 단층 건물을 층층이 포개 7층까지 쌓는 방식으로 디자인했다. ⓒ야마기시 다케시(山岸剛). 안그라픽스 제공

2012년 도쿄에 건립된 아사쿠사 문화관광센터. 에도 문화를 현대에 전하는 시설의 컨셉트에 걸맞게 옛 목조 단층 건물을 층층이 포개 7층까지 쌓는 방식으로 디자인했다. ⓒ야마기시 다케시(山岸剛). 안그라픽스 제공

 
작업해 오면서 달라진 점이 있다면.  
“10년 전과 비교해 볼 때 사회 전반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건축주도 달라졌다. 요즘에는 건축주가 나무 빌딩을 지어 달라고 요청한다. 세월이 흘러 자연스레 나이 들어가는 건축물이 좋다고도 한다. 목재 건축물의 경우 낡은 부재를 교체하면서 오래 쓸 수 있고, 이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건축주 역시 많아지고 있다. 도시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많다보니 콘크리트 대신, 자연스런 소재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 같다.”  
 
자주 방한한다.  
“현재 부산에서 3개의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서울은 올 때마다 변하는 것 같다. 그래도 서울의 좁은 골목길에 들어선 작은 가게들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서울의 카페도 훌륭하고, 한옥도 멋지다. 한옥 특유의 분위기는 건축적으로 구현해내기가 어려운 것 같다. 내부에 들어가면 나무와 종이의 디테일이 뛰어나고 오랜 친구처럼 편안하다. 그래서 해보고 싶다. 한옥 분위기를 내는 건축을 구마 겐고의 방식으로 만들어 보고 싶다.”  
 
작고 약한 건축의 시대가 언제까지 이어질까.  
“20세기 산업화의 시대가 100년 간 우리를 지배했다. 우리를 자연과 단절시키면서 우리 삶을 많이 파괴했다. 복구하려면 또 다른 100년이 걸리지 않을까. ‘작은 건축’은 그 긴 여정의 출발점에 선 상태다.”  
 
글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사진 김경빈 기자·출판사 안그라픽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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