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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뇌 호르몬의 결과가 아니다

중앙선데이 2018.09.01 01:00 599호 31면 지면보기
책 속으로 
나는 뇌가 아니다

나는 뇌가 아니다

나는 뇌가 아니다
마르쿠스 가브리엘 지음

인간은 신경학만으로 설명 못해
타인과 만나며 문화적 형질 구성
독일 철학자가 본 ‘나는 누구인가’

전대호 옮김, 열린책들
 
‘비도 오고 출출하네. 점심에 얼큰한 짬뽕을 한 그릇 먹어야지.’
 
중국집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회사 근처 가까운 식당에 자리를 잡고 주문한다. 이 점심식사에서 짬뽕을 먹겠다는 결정을 내린 주체는 누구일까. 내 자유의지일까, 아니면 나의 뇌일까.
 
뇌에 대한 연구가 다양해지고 가시적 성과를 내면서 이른바 ‘뇌 만능주의’가 대중에게도 적잖이 파고들었다. 인간의 뇌는 결국 컴퓨터와 같은 기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은 물론이고, 컴퓨터의 작동원리를 파악하듯 뇌를 해석할 수 있다면 인간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기기도 했다. 일부 뇌 과학자들은 나라는 존재, 나의 정신, 자아, 의지, 자유 등도 뇌 연구를 통해 알아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뇌 과학이 발전할수록 인간은 초라해진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주인이라는 생각이 총체적으로 흔들리는 것 같아 무기력해지기도 한다. 인간이 그저 뇌의 지배를 받는 존재일 뿐이라면, 뇌를 조절함으로써 감정과 의식, 행동까지 쥐락펴락할 수 있다는 것처럼 기운 빠지는 일이 있을까.
 
독일의 철학자 마르쿠스 가브리엘은 이에 대해 정면으로 반박한다. 그는 자신의 철학서 『나는 뇌가 아니다』에서 자유의지에 힘을 실었다. 책 제목을 『우리는 우리 뇌다』(뇌를 이해하면 인간을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을 담은 네덜란드 뇌 과학자 디크 스왑의 저서)에 맞서 ‘나는 뇌가 아니다’라고 정한 것도 그 때문이다. 그는 이 책에서 “자기 자신의 사유를 신경화학에 위임하면 우리는 부담을 벗게 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일종의 자기기만”이라고 지적한다.
 
SF 영화 ‘엑스 마키나’의 한 장면. 인공지능 로봇에게 자유의지가 있는지를 둘러싼 혼란을 그린 작품이다. [사진 UPI 코리아]

SF 영화 ‘엑스 마키나’의 한 장면. 인공지능 로봇에게 자유의지가 있는지를 둘러싼 혼란을 그린 작품이다. [사진 UPI 코리아]

그는 ‘나=뇌’ 공식을 갖고 인간을 곧 뇌(혹은 중추신경계)로 동일시하는 흐름을 신경 중심주의라고 명명하고 비판한다. 신경 중심주의는 뇌를 정확히 알면 우리 자신을 알 수 있다는 ‘신경강박’과, 하나의 종이 생존투쟁 와중에 만들어낸 장점을 재구성하면 인류의 전형을 이해할 수 있다는 ‘다윈염(炎)’이 혼합된 개념이다.
 
가브리엘은 신경 중심주의가 인류 정신적 자유의 산물을 자연적, 생물학적 사건들로 오해한다고 본다. 예를 들면 ‘우리는 왜 사랑에 빠질까?’라는 질문에 신경 강박자는 인간의 뇌에서 특정한 호르몬이 분비되기 때문이라고 답할 것이고, 다윈염에 걸린 사람은 오래전부터 진화해 온 짝짓기 행동의 일종이라고 설명할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인간을 단순히 뇌의 지배를 받는 존재로 국한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뇌 뿐 아니라 몸이라는 생물학적 토대 위에서야 비로소 존재할 수 있고, 이 몸은 신경들뿐 아니라 다른 유형의 세포들로 함께 이뤄져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우리는 타인들과 사회적 상호작용을 하면서 문화적 형질을 구성한다. 가브리엘은 이를 뇌과학의 언어로 다 해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그는 “인간 정신은 자화상을 제작하고 그럼으로써 다수의 정신적 실재들을 산출한다. 이 과정은 역사적으로 열린 구조를 가지며, 그 구조를 신경생물학의 언어로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이는 인간의 ‘의식’이나 정신을 단순히 뇌의 화학작용으로 환원할 수 없다는 주장이기도 하다. 우리가 포도주를 인지한다는 것은, 포도주의 특성을 아는 것(지향적 의식)과 동시에 직접 만지고 보고 마시는 주관적 체험(현상적 의식)이 더해진 것이다. 가브리엘은 “로봇이 포도주의 당도와 산도를 아무리 정확하게 파악하더라도(지향적 의식), 맛에 대한 고유한 체험, 비합리적 감정을 가질 수는 없다”고 말한다. 인간이 갖는 감각, 욕망, 환상 추구 등은 의식의 총체고 이는 신경과학의 언어만으로 해석하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물론 독자로서 신경 중심주의에 대한 저자의 반박이 완전히 공감되지 않는 부분도 있다. 그만큼 뇌과학에 대한 믿음이 크다는 얘기일 수도 있고, 자연과학의 연구를 인문과학 논리로 반박하는 데 대한 한계일 수도 있을 것이다.
 
자연과학에 관심이 더 큰 독자라면 이 책이 ‘연구주제를 빼앗기지 않겠다는 철학자의 불안감’으로 읽힐 수도 있겠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존재 인식, 자기인식에 대한 질문은 수천년간 철학과 역사의 영역이었다. 심리학에 일부 지분을 내주긴 했지만, 여전히 정신 철학의 연구주제로 여겨져 왔다. ‘나는 뇌가 아니다’라는 마르쿠스 가브리엘의 열정적 항변은 철학적 논제가 자연과학인 신경과학에 자리를 내주고 있다는 불안감에서 온 것이기도 하다.
 
채윤경 기자 pchae@joo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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