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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에 눈뜬 황의조·손흥민 ‘동갑내기 브로맨스’

중앙선데이 2018.09.01 00:02 599호 7면 지면보기
오늘 밤 아시안게임 축구 결승 한·일전
지난달 23일 인도네시아 치카랑에서 열린 이란과의 아시안게임 16강전에서 황의조(오른쪽)가 골을 터뜨리자 손흥민이 함께 달리며 기뻐하고 있다. [치카랑=연합뉴스]

지난달 23일 인도네시아 치카랑에서 열린 이란과의 아시안게임 16강전에서 황의조(오른쪽)가 골을 터뜨리자 손흥민이 함께 달리며 기뻐하고 있다. [치카랑=연합뉴스]

“왜 이런 선수가 러시아 월드컵에 못 나갔는지 모르겠네요. 황의조는 한국 축구의 훌륭한 발견입니다.”

J리그서 섬세한 축구 익힌 황의조
욕심 버린 손흥민 패스로 골 폭풍
금 따고 유럽 가면 박지성 복사판

 
해설가로 변신한 ‘독수리’ 최용수(45·전 FC 서울 감독)가 지난 29일 베트남과의 아시안게임(AG) 남자축구 준결승을 중계하며 한 말이다. 이날도 황의조(26·감바 오사카)는 어김없이 골맛을 보며 3-1 승리에 기여했다. 23세 이하로 구성된 2018 자카르타·팔렘방 AG 대표팀에 황의조는 와일드카드(23세 초과 3명)로 뽑혔다. 그는 두 차례 해트트릭(3골)을 포함해 여섯 경기에서 아홉 골을 터뜨렸다. 말레이시아와의 예선 2차전에서 1-2로 지는 바람에 가시밭길을 걸어야 했던 한국은 황의조의 ‘멱살 캐리’(멱살 잡고 끌고 간다, 혼자 힘으로 팀을 이끈다는 온라인 신조어) 덕분에 결승까지 올라왔다. AG 2연속 우승을 노리는 한국의 상대는 전원 21세 이하로 구성된 일본이다. 결승전은 9월 1일 오후 8시30분(한국시간) 열린다.
 
‘황선홍과 안정환을 합쳐 놓은 골잡이’ ‘한국 축구에 없었던 스타일의 스트라이커’로 불리는 황의조는 어떤 선수일까.
 
용인초등학교를 졸업한 황의조는 프로축구 성남 FC가 지원하는 풍생중·고를 나왔다. 고교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낸 그를 연세대 신재흠 감독이 점찍었다. 신 감독은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스타일이었다. 키(1m84cm)가 큰 데다 활동 반경이 매우 넓어 수비수를 끌고 다니는 공격수였지만 골 결정력은 좀 떨어졌다”고 회고했다. 2011년 연세대에 입학한 황의조는 꾸준히 경기에 출장했지만 눈에 띄지는 않았다. 그러다 겨울방학을 마치고 2학년이 되면서 골을 펑펑 터뜨리기 시작했다. 춘계대학연맹전에서는 득점왕을 차지하며 팀에 우승컵을 안겼다. 문제는 기복이 심하다는 점이었다. 특히 휴가를 마치고 복귀하면 컨디션이 형편없이 떨어졌다고 한다.
 
황의조는 2학년을 마치고 2013년 성남에 입단했다. 그는 한마디로 ‘계륵’이었다. 사각(死角)에서 기막힌 골을 넣기도 했지만 결정적인 찬스를 날려먹는 경우도 많았다. 2015년에는 K리그에서 15골을 터뜨리고, 슈틸리케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에도 들락날락했지만 골잡이로서 믿음을 주지는 못했다. 성남은 2016 시즌 2부로 떨어졌다. 황의조는 ‘2부 강등의 죄인’으로 찍혀 엄청나게 욕을 먹었다. 결국 지난해 7월 일본 J리그 감바 오사카로 이적했다.
 
오사카에서 황의조는 환골탈태했다. 투박하고 자기중심적인 축구를 했던 황의조는 섬세한 팀 플레이를 하는 J리그에 적응해야만 했다. 혼자 다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벗어나자 시야가 넓어지고 동료를 활용할 줄 알게 됐다. 감바는 8월 말 현재 J리그 18개 팀 중 17위로 강등권이다. 그러나 황의조는 아홉 골을 넣어 득점 8위를 달리고 있다.
 
펀드매니저 출신 축구이론·심리 분석가 손외태씨는 “황의조가 수비 뒷공간을 침투하는 움직임에 눈을 떴다. 골키퍼와 최종수비수 사이 공간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다. 황의조는 이곳을 공략한다. 상체를 이용할 줄 알게 되면서 자세가 부드러워지고 필요한 만큼만 힘을 쓰는 밸런스를 갖추게 됐다. 슈팅이나 패스의 완급·강약·방향을 자유자재로 조절한다. 유효슈팅이 많아지니 골 확률이 높아졌다”고 분석했다.
 
성남 FC 사장 시절(2014~2015년) 황의조와 함께했던 신문선 명지대 교수는 “황의조는 황선홍의 활동폭과 위치 선정, 안정환의 부드러운 몸놀림과 볼터치를 갖고 있다. 여기에 그들이 못 갖춘 저돌성과 몸싸움을 장착했다. 우즈베키스탄전 페널티킥을 얻어낼 때의 움직임을 보라. 골대를 등지고 볼을 받아 발끝으로 툭 차올린 뒤 ‘비비고 들어가는’ 움직임으로 반칙을 유도했다. 이런 플레이는 기존 스트라이커에게서 찾기 힘들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황의조의 놀라운 변신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선수가 손흥민(26·토트넘 홋스퍼)이라고 말했다. 신 교수는 “황의조는 이번 대회의 황희찬처럼 머리를 처박고 돌진하는 스타일이었다. 그러다 J리그에서 팀 플레이에 눈을 떴다. 손흥민은 이번 대회 주장을 맡으면서 ‘깨달음’을 얻은 것 같다. 실수하는 동료를 향해 얼굴 벌게져 소리치고, 프리킥이든 페널티킥이든 혼자 차겠다고 하던 손흥민이 아니다”며 “황의조는 네임밸류가 월등한 손흥민이 자신을 내려놓고 찬스 만들어 주고, 헌신하는 모습이 고마운 거다. 손흥민 입장에서도 패스하는 족족 골을 만들어주는 황의조에게 믿음이 생겼다”고 설명했다. 손흥민이 찔러준 패스를 황의조가 골로 연결시킨 장면이 세 차례나 된다.
 
1992년생 동갑내기인 두 선수는 국가대표팀에서 잠재적인 경쟁자였다. 지금은 같은 목표를 향해 가는 운명공동체다. 베트남전에서 골을 넣은 황의조가 패스를 넣어준 손흥민과 장난기 어린 세리머니를 할 때는 ‘브로맨스(bromance·남자 간의 진한 우정)’ 느낌도 났다. 이런 장면이 일본과의 결승전에서 또 나온다면 둘은 금메달을 따고 병역을 해결하게 된다.
 
황의조가 유럽에 진출한다면 ‘박지성 루트’를 완벽하게 재현한다. 대학 중퇴(박-명지대, 황-연세대)→J리그 하위팀 입단(박-교토 퍼플상가, 황-감바 오사카)→병역 해결(박-2002 월드컵 4강, 황-2018 AG 금메달)→유럽 클럽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정영재 스포츠선임기자 jerr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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