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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이냐 잔소리냐…부부 애정 결정하는 이 것

중앙일보 2018.08.31 13:00
[더,오래] 박혜은의 님과 남(30)
요즘 은퇴 후에 새롭게 요리 배우기에 도전하는 남편들의 이야기가 많아지고 있다. [사진 pixabay]

요즘 은퇴 후에 새롭게 요리 배우기에 도전하는 남편들의 이야기가 많아지고 있다. [사진 pixabay]

 
며칠 전 남편이 집에서 스테이크를 해 먹겠다며 집으로 스테이크용 고기를 주문했습니다. 그리고 고기가 도착한 날 본인이 저녁을 준비하겠다 합니다. 전 혹시나 준비하는데 내가 뭘 도와줄 일이 있겠냐고 물었죠. 순간 남편의 입에서 나온 예상치 못한 대답에 한참을 웃었습니다. 남편의 대답은 바로 ‘침묵’ 이었습니다.
 
많은 일이 그렇겠지만, 청소나 부엌일 등에서도 본인만의 스타일이 있게 마련이죠. 밥을 먹자마자 설거지를 마치고 깔끔하게 마무리해야 속이 시원한 사람도 있지만, 밥 먹고 난 후에는 일단 쉬었다 한 번에 몰아서 해도 아무렇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설거지를 다 마친 후에 사방에 튀어 있는 물까지 싹 닦아주어야 마무리했다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물방울 따위 눈에 안 들어오는 사람도 있습니다.
 
대게 남녀 간의 차이로 보일 수 있지만, 그저 사람의 차이일 뿐이죠. 맞고 틀리고가 아닌 그저 서로가 다른 나만의 방식을 가졌을 뿐입니다. 하지만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신혼부부부터 한참이 지난 부부까지 서로 다른 방식이 문제가 되어 결국은 “널 이해할 수가 없어”로 마무리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요즘 은퇴 후에 새롭게 요리 배우기에 도전하는 남편분들의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접하게 됩니다. 처음은 서툴게 마련이죠. 집으로 돌아와 요리한다며 온 부엌을 엉망으로 만든 남편에게 어떤 말을 해주면 힘이 날까요? 혹시 본인의 일이라면 어떤 말을 해주셨나요?
 
이때 정말 필요한 건 ‘침묵’일 겁니다. 어디 네가 잘하나 보자 하는 뉘앙스의 몸짓과 행동은 그대로 둔 채, 말만 아끼는 건 상대에게 더 부담스러울 수 있죠. 새로운 시도를 하는 네가 뭘 해도 난 다 좋다는 의미의 침묵과 동시에 멋진 리액션으로 응답해 준다면 앞으로 남편에게도 아내에게도 어떤 새로움이 펼쳐질지 모를 일입니다.
 
집안일에도 본인만의 스타일이 있다. 집안일을 처음 하다 보면 서툴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상대방에게 새로운 시도를 하는 노력에 대한 응원과 상대가 뭘 하든 좋다는 의미의 침묵이 필요하다. [사진 pixabay]

집안일에도 본인만의 스타일이 있다. 집안일을 처음 하다 보면 서툴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상대방에게 새로운 시도를 하는 노력에 대한 응원과 상대가 뭘 하든 좋다는 의미의 침묵이 필요하다. [사진 pixabay]

 
집에서 손 하나 까딱하지 않는 남편이 서운하다 하시는 분이 많습니다. 물론 애초에 시도조차 안 한 분도 있겠지만, 자꾸 쏟아지는 잔소리에 이러느니 안 하는 게 낫겠다 싶은 마음으로 평생 멈춤을 선택하신 분도 어쩜 계실 겁니다. 물론 아내와 남편의 상황이 반대로 바뀐 가정도 있겠죠. 이렇게 꼭 필요하지 않은 때는 남편이나 아내에게 할 말, 하고 싶은 말이 줄줄 흘러나오는데 가만 들여다보면 정작 해야 할 말은 못한 채 시간이 흘러가는 부부도 많습니다.
 
70이 넘으신 저희 부모님을 보면서 요즘 노력해보는 일이 있습니다. 가족에 대한 사랑의 마음이야 있으시겠지만 다정한 표현은 말로도 행동으로도 해 본 적이 없는 저희 아버지께 어느 날 물었습니다. "아빠 나 사랑하죠?" 아니나 다를까 아버지는 왠 뚱딴지같은 소리냐는 표정이십니다. 그리곤 하시는 말씀이 “왜 뭐 필요한 거 있어?” 하십니다. 예상했던 바이긴 하지만 아버지의 입에서 사랑이란 단어를 듣기가 쉽지 않습니다. "'나도 사랑하지' 하시면 되죠" 라고 해봐도 쑥스러운 웃음으로 저리 가라며 손을 휘휘 저으십니다.
 
사실 경상도 출신인 우리 어머니도 사정은 아주 다르지 않습니다. 아버지보다 스킨십은 편할지 몰라도 말로 하는 표현은 역시나 어색해하십니다. 하루는 “엄마 사랑해요”라고 문자를 보낸 후 답이 없으시기에 “엄마도 말해주세요” 했더니 한 20~30분이 흘러서야 어머니의 문자 답변이 도착합니다. “나도” 그 흔한 사랑한다는 말이 해본 적 없는 두 분에게는 입 밖으로 꺼내기 어색하고 어려운 단어인 셈입니다.
 
그러고 보니 문득 떠오르는 일이 하나 있습니다. 어린 시절 동네 피아노 학원에 다녔을 때의 일입니다. 찰랑찰랑한 긴 머리에 미소가 참 예뻤던 피아노 선생님은 이제 갓 결혼한 신혼부부셨죠. 그런데 어린 저희가 보기에 각자의 집에서 흔하게 듣는 ‘여보’라는 호칭을 두 분은 못 쓰고 계셨습니다.
 
하루는 한 친구가 선생님이 ‘자기’ 혹은 ‘오빠’ 말고 ‘여보'라고 말할 수 있게 도와주자고 나섰죠. 그리곤 이층집의 2층에 있던 피아노 교습소의 일층 가정집 마당을 왔다 갔다 하시던 남편분께 오늘 그 말을 해보기를 종용했습니다. 얼굴이 빨개진 선생님은 콩트에 나오는 에피소드처럼 “여보~~~~~세요”라는 말만을 반복한 채 웃음으로 그 날을 마무리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많은 부부가 흔하게 쓰는 ‘여보’라는 호칭도 한 번도 써보지 않은 부부에겐 어색함으로 다가올 수 있겠죠. 아쉽게도 할수록 좋은 걸 알지만 안 하는 혹은 못하는 말,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자꾸 꺼내게 되는 일들이 부부 사이에는 너무나 흔한 일입니다.
 
결혼한 사람이 건강에 더 신경을 쓰게 되는 이유가 함께 사는 사람의 잔소리 때문이라고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잔소리가 때론 보약일 수 있다. [사진 smartimages]

결혼한 사람이 건강에 더 신경을 쓰게 되는 이유가 함께 사는 사람의 잔소리 때문이라고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잔소리가 때론 보약일 수 있다. [사진 smartimages]

 
무엇보다 어떤 이유든 잔소리는 피하고 싶은 귀찮은 것이긴 하죠? 그런데 독일 연구팀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연구에 따르면 결혼한 남성이 독신 남성보다 의사를 찾는 경우는 6%, 1주일에 한 번 건강을 위해 달리기를 하는 사람은 20%가량 더 많았다고 합니다. 이렇게 결혼한 사람이 건강에 더 신경을 쓰게 되는 이유가 함께 사는 사람의 잔소리 때문이라고 했다는데요. 결혼한 남자는 그 덕에 평균 10년가량 더 오래 살고, 신체 연령은 3년 정도 젊었다고 하네요. 이런 관점에서 보면 잔소리가 때론 보약일 수 있습니다.
 
가수 아이유의 노래 중에 ‘잔소리’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노래의 가사에서 잔소리는 한번 보고 말 거라면 안 할 소리라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굳이 상관없는 사람에게 힘써가며 너 좋아지라는 말은 안 한다는 의미로 들리기도 합니다.
 
자꾸 반복되다 보니 날 귀찮게 하는 듯 들리는 그 소리가 날 살리는 소리다 생각하면 때론 그 소리도 고마울 때가 있진 않을까요? 물론 한 번에 마음이 바뀌긴 쉽지 않겠지만,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는 노력도 필요해 보입니다. 그리고 내 말이 잔소리처럼 들리지 않을까 싶은 때는 직설적인 표현이 아닌 ‘내 생각에는’ ‘이유는’ 같은 생각과 관련 있는 단어를 써보려 노력해 보시는 겁니다.
 
미국 오하이오대 재니스 글레이서 교수팀의 연구 결과를 보면 부부나 연인 간의 말다툼 도중 ‘내 생각에는’ ‘왜냐하면’ ‘이유는’ 같은 생각과 관련 있는 단어를 사용하면 스트레스 반응이 덜 생기면서 갈등이 더 쉽게 풀리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협력적인 대화를 나누며 생각과 관련한 단어를 많이 사용한 커플의 뇌에서는 스트레스가 쌓일 때 늘어나는 염증성 ‘사이토카인’ 수치가 전혀 증가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싸우는 중이라도 생각과 관련 있는, 인지 추론과 관련된 단어를 많이 사용한 커플은 ‘사이토카인’ 수치가 좀 더 느리게 증가했다고 합니다.
 
화브스타인은 “남편이 보통 친구들에게 베푸는 것과 꼭 같은 정도의 예의를 부인에게 베푼다면 결혼생활의 파탄은 훨씬 줄어들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남편도 아내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박혜은 굿커뮤니케이션대표 voivod7011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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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은 박혜은 굿 커뮤니케이션 대표 필진

[박혜은의 님과 남] 은퇴 후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낼 집에서 자주 함께할 상대는 누구인가요? 그 상대와의 관계는 지금 안녕하신가요? 가장 가까운 듯하지만, 어느 순간 가장 멀어졌을지 모를 나의 남편, 나의 아내와 관계 향상을 위해 지금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강의와 코칭 현장에서 만난 수많은 고민을 바탕으로, 닿을 듯 닿지 않는 서로의 심리적 거리의 간격을 좁혀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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