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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왜 분노해야 하는가

중앙일보 2018.08.31 00:07 종합 31면 지면보기
고대훈 수석논설위원

고대훈 수석논설위원

실업의 그늘은 내 곁에 있었다. 그는 멋쩍은 표정으로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구직활동내역서’라고 씌어 있었다. 다니던 중소기업의 사정 탓에 ‘권고사직’을 당했다. 내 명함 한 장을 달라고 부탁했다. 하루 6만원씩 월 150만원의 실업급여를 타려면 구직활동을 했다는 증명서를 고용노동부 고용센터에 내야 한다고 했다. 친구인 그는 그렇게 실업자의 생활에 적응하고 있었다. 소득주도 성장을 놓고 고상하게 갑론을박하는 이 순간, 우리 주변분들은 졸지에 밥벌이를 잃고 거리로 내몰리고 있다.
 

‘장하성의 실험’ 처참한 성적표
이상은 아름다워도 현실은 달라
문 대통령은 ‘직을 걸라’ 했지만
수십 조원 혈세 까먹고 실패해도
책임 안 지고 물러나면 그만일까
분노·저항하는 게 민주주의 정신

그 이유를 숫자는 말한다. 지난 7월 한 달 동안 100만 명의 실업자가 쏟아졌고, 44만 명의 실업자가 5800억원의 실업급여를 타갔다. 고용·소비·투자에서 종전의 나쁜 기록을 싹 갈아치우는 중이다. 실업급여조차 탈 자격이 없는 ‘식당이모’ ‘경비아저씨’ ‘알바학생’은 소리 없이 사라졌다. 소득주도 성장은 사회적 약자를 먼저 공격했다. 내년 예산에 실업급여는 올해보다 1조원 늘어 7조4000억원이 책정됐다. 일자리가 더 악화된다는 얘기다. 너나없이 고용 참사라는 ‘끓는 냄비 속 익어 가는 개구리(boiling frog)’가 될지 모를 일이다.
 
소득주도 성장이라는 게 대체 뭐길래 실직 공포에 떨게 하고 사회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나. 그 단서를 찾으려고 ‘사령탑’인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2015년 낸 『왜 분노해야 하는가』를 뒤늦게 뒤적였다. 책에는 ‘한국의 불평등’이라는 담론 아래 그의 철학·신념·열정이 400쪽에 걸쳐 담겼다. 불평등의 원인을 노동 소득, 즉 임금 분배의 실패로 압축했다. “불평등 구조는 혁명적 혁신 없이는 바로잡기 힘들고, 정의롭지 못한 현실에 분노해야 한다”는 결론 부분과 함께 책장을 덮자 묘한 불안감이 덮쳐 왔다.
 
책 내용의 현실화가 첫 번째 불안감이다. 그는 책에서 “대기업과 부자가 더 잘살게 되면 중소기업도, 보통 국민들도 잘살게 된다는 낙수(落水)효과는 허구로 판명났다”고 단언한다. 대기업-중소기업, 정규직-비정규직의 임금 격차에서 비롯된 정의롭지 못한 분배가 한국을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한 나라의 나락에 빠뜨렸다’고 진단한다. “소득이 없다면 소비도, 수요도, 투자도, 성장도 있을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저임금 노동자의 소득을 인위적으로 끌어올려 경제를 성장시키자는 논리다. 소득주도 성장의 이론적 토대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은 그 신호탄이다.
 
고대훈칼럼

고대훈칼럼

과격화 조짐이 두 번째 불안감이다. 대기업의 ‘원천적 분배’를 불평등의 해법으로 제시한다. 대기업이 경제성장의 과실을 독점하면서 축적한 사내유보금을 풀어 2, 3차 하청기업의 임금에 보태 격차를 줄이자는 것이다. 비정규직에 ‘동일 노동, 동일 임금의 원칙’을 적용하고, 정규직 채용을 규정화함으로써 정규직과의 임금 격차를 완화하자는 주장도 한다. 대기업의 자발적인 분배에 대해선 ‘기적’과 ‘몽상’이라고 일축하며 강제성을 주장한다. “최저임금 인상은 성장 정책 수단 중 하나일 뿐”이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말은 ‘규제’를 염두에 둔 것일 수 있다. 낯익은 기업 비틀기가 어른거린다.
 
세 번째 불안감은 한국의 운명이 장하성의 뜻에 좌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빈곤으로 고통받는 다수가 자신들에게 고통을 안겨주는 경제체제를 거부하는 것은 정당한 권리”라며 ‘결과의 정의’를 강조한다. 문 대통령이 천명한 ‘기회 평등, 과정 공정, 결과 정의’란 국정철학과 일치한다. 그의 책이 출간된 때가 2015년 말, 청와대에 들어가기 훨씬 전이다. 장하성의 생각이 문 대통령에게 전이됐다면 그를 감싸는 대통령이 있는 한 ‘장하성의 실험’에 후퇴는 없다. 문 대통령이 장하성을 내치면 자기부정이 된다.
 
‘장하성의 실험’ 성적표는 처참하다. 사회주의적 이상은 아름다울지 몰라도 현실의 통계와 지표는 “아니다”라고 반박한다. 그래도 문 대통령은 “직(職)을 걸라”고 다독였다. ‘직을 건다’는 건 그만두는 걸로 아무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빈말에 불과하다. 지금까지 쓴 42조원에다 내년 23조5000억원을 합쳐 65조원이 넘는 천문학적 혈세를 까먹고 실패하더라도 “의도하지 않은 결과”라며 직에서 물러나면 그만일까. 그 피해와 손실은 누가 떠안나.
 
당신 철학과 가치를 위해 내 삶을 멋대로 실험하지 말라고 외쳐야 한다. 내 쌈짓돈 거둬 살포하는 일자리 만들기라면 옳고 그름을 따질 권리가 있다. 수십조원짜리 도박이 무모하다면 후퇴하라고 말할 자격이 있다. 통계를 입맛에 맞추겠다는 놀라운 발상에 “아니되옵니다”라고 절규해야 맞다. 그게 우리 사회가 일궈낸 민주주의 정신이다. ‘왜 분노해야 하는가’는 당신에게 묻는 질문이 됐다.
 
고대훈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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