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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석의 Mr.밀리터리] 북·미 관계 흔들리면서 다시 내년 3월 위기설 퍼지나

중앙일보 2018.08.31 00:02 종합 26면 지면보기
북한 비핵화 중간 점검
지난 24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편지 한장을 받았다. 북한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이 보내온 것이었다. 편지에는 “미국이 한국전쟁 종전에 서명하지 않으면 (북한) 비핵화 대화가 산산조각 날 것(may fall apart)”이라는 협박성 문구가 적혀있었다. 4차 방북을 앞둔 폼페이오 장관은 트럼프 미 대통령에게 직보했다. 이를 보고받은 트럼프 대통령은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을 즉각 취소했다. 며칠 뒤 매티스 미 국방장관은 일시 중단한 한·미 연합훈련을 “더는 중지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 취소로 개성 남북연락사무소 개설, 시진핑 중국 주석의 9월 9일(북한 정권 수립일) 방북, 2차 북·미 정상회담, 나아가 9월 남북 정상회담까지 줄줄이 영향을 받게 됐다. 만약 북한이 미국의 극약 처방에도 비핵화 조치에 호응하지 않으면 앞으로 북한 비핵화의 종착역은 불투명해진다. 지난해 가을의 대북 군사제재 분위기로 돌아갈 가능성도 있다. 그럴 경우 지난해보다 더 심각한 한반도 안보 위기 사태가 닥칠지도 모른다. 물론 북한이 비핵화를 위한 핵무기 및 핵물질의 보유량과 위치, 중요한 핵시설, 핵무기 프로그램과 그동안의 핵 활동 등 핵 리스트를 공개하면 사정이 달라진다. 북한 비핵화 고삐를 다시 잡을 수 있게 된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지난겨울 평창 겨울올림픽과 4.27 판문점 선언과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을 이어 가면서 순풍을 받던 북한 비핵화 조치가 이 지경이 된 근본 원인은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오판 때문이다. 김 위원장이 김영철 명의 편지로 ‘종전선언 서명’을 강요한 것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불쾌했을 가능성이 크다. ‘산산이 조각날 것’이라는 편지의 문구는 북한이 비핵화 협상을 ‘산산조각낼 것’이라는 의미로 들릴 수 있어서다. 트럼프 대통령은 잔인한 은둔의 지도자로 인식됐던 김 위원장을 국제무대에 화려하게 데뷔시키고, ‘똑똑한(smart)’‘전략적(strategic)’‘강한(strong)’ 용어를 써가며 칭찬했다. 그런데도 김 위원장이 비핵화 약속은 지키지 않고 도리어 트럼프 대통령을 협박해 비위를 상하게 했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북한 비핵화가 없는 김 위원장의 종전선언 요구는 한·미 연합방위체제만 약화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한 상태에서 종전선언으로 한·미 연합체제가 흔들리면 한반도를 방위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게 일반적인 판단이다. 그래서 미국은 북한 비핵화가 먼저 돼야 종전선언이 가능하다는 게 기본입장이었다. 이런 맥락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꺼낸 카드가 한·미 연합체제를 강화하는 더 큰 연합훈련 재개 가능성이다. 북한이 가장 부담스러워 하는 연합훈련으로 김 위원장을 압박한 것이다. 지난해 12월 한·미 공군이 최첨단 스텔스 전투기 F-22와 F-35 등 전투기 260대를 동원한 비질런트 에이스 훈련은 김 위원장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스텔스 전투기는 언제든 쥐도 새도 모르게 북한 상공에 침투해 공격할 수 있다.
 
김 위원장이 호의적이었던 트럼프 대통령을 협박할 수 있었던 자신감은 핵무기의 오만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전문기관 등에 따르면 북한은 지난해 6차 핵실험을 마친 뒤 핵무기 생산에 전념하고 있다. 이미 20∼60개의 핵탄두를 생산했다고 한다. 핵무기 재료인 고농축 우라늄을 생산 중일 뿐만 아니라 영변 우라늄 농축시설도 개량하고 있다. 북한의 2∼3개의 농축시설로 2020년까지 최대 140∼150개의 핵탄두를 만들 수 있다는 계산도 나온다. 그래서 핵무기 생산체제를 갖추지 못했던 지난해와 이미 상당한 양의 핵탄두를 축적한 현재 북한은 전략적 입지가 완전히 달라졌다. 풍계리 핵실험장 파괴도 핵무기 제작 능력을 갖춘 북한으로선 거추장스러운 허물을 벗겨낸 것뿐이다. 따라서 앞으로 보유한 핵무기를 유지하려는 북한과 이를 폐기하려는 미국과 본 게임에 들어갈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제2 라운드 게임은 올 11월 6일 미국 중간선거 이후부터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미국의 경제가 호황이어서 중간선거 전까지는 북핵 문제가 더 불거지지 않도록 관리하는 게 최선인 것으로 보인다. 최근 미국 조야를 살피고 온 세종연구소 우정엽 안보전략연구실장은 “미국 내에서 북핵에 관한 관심이 적다”며 “2차 북·미 정상회담을 해도 미국 언론에는 하루 보도 거리”라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트럼프 대통령은 29일 “지금 한·미 (연합)훈련에 큰돈 쓸 이유가 없다”며 전날 매티스 장관의 연합훈련 재개 발언을 뒤집으면서도 “마음만 먹으면 한·일과 어느 때보다 훨씬 큰 규모의 훈련을 할 수 있다”는 식으로 김 위원장을 어르며 압박하는 심리전을 구사했다. 그는 또 “김 위원장과 환상적이고 훈훈한 관계”라며 북한이 비핵화 고리에서 빠져나가지 않도록 다독거리는 말도 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전략은 중간선거를 기점으로 크게 선회할 가능성이 있다. 그의 입장에서는 중간선거 다음 목표는 2020년 대통령 선거에서 재선되는 것이다. 그때까진 2년이라는 시간이 남아 있고 북한을 더 강하고 충분히 압박해 비핵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는 것이다. 니키 헤일리 유엔 주재 미 대사는 지난 28일 워싱턴 DC의 민주주의수호재단(FDD)에서 “북한과 관련해 (비핵화 협상이) 빠르게 진행되지 않는다”면서도 “우리는 이것이 느리고 험난한 과정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중간선거 이후부터 시간은 미국 편이다. 헤일리 대사는 “우리는 그들(북한)의 무역 거래 90%와 석유 30%를 차단하는 제재를 가하고 있다”며 “우리가 제재를 꽉 움켜쥐고 있기 때문에 북한은 금융 지원을 필요로 하고 그것을 구걸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미국은 중국과의 무역전쟁을 통해 중국의 북한 지원을 차단할 전망이다. 또한 북핵 문제를 해결한 뒤 다시 이란이 핵을 포기토록 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그 사전조치로 이란 핵합의(JCPOA)에서 탈퇴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란 핵과 중국의 부상을 한 세트로 잡아 재선 기반을 닦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북한이 내년에도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성의를 보일 가능성이 매우 낮다. 따라서 김 위원장이 비핵화에 획기적으로 나서지 않는 한 올해 말부터 경색국면이 전개될 조짐이 크다. 그 정점은 북한 지역에 겨울 눈이 녹고 대지에는 초목이 올라오기 전인 내년 3월이 될 가능성이 있다. 군사작전에 가장 유리한 시점이어서 북한을 최대로 압박할 수 있어서다. 그러나 북한도 핵무기를 가진 상태에서 지난해 가을보다 더 강하게 저항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반도에 핵전쟁이 난다는 절체절명의 분위기가 조성될 수도 있다. 정부도 이런 흐름을 신중히 관찰해 미리 대비해야 한다. 섣부른 9월 종전선언이나 남북관계의 가속화도 조절할 필요가 있다.
 
김민석 군사안보연구소장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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