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 하늘도 참 무심하시구만. 우리한테서 뺏어갈 게 뭐가 있다고 이런댜. 냉장고·장롱·세탁기 다 버려야 혀. 쓸 수 있는 게 하나도 없구먼. 모든 게 죄다 물에 젖어서 먹통이 됐어. 내 살림살이 아까워서 워쩐댜.”

30일 서울 은평구 응암3동 주택가는 폭우로 침수된 살림살이를 집 앞에 내놓은 곳이 많았다. 전민희 기자
은평구 응암동 400세대 넘게 피해 신고
반지하·다세대 많아 피해 큰 것으로 파악
서울 은평초 학부모회에서 나온 자원봉사자 2명이 빗자루와 쓰레받기로 바닥에 고인 물을 퍼내고 있었다. “이게 뭔일이랴.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것 아녀.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겨.” 이씨가 눈시울을 붉히며 중얼거렸다.

서울 은평구 응암3동 반지하 빌라에 물이 차 있는 모습. 전민희 기자
윤미경 서울 은평구청 홍보담당관은 “현재 400가구가 넘게 침수피해를 입은 것으로 보인다. 이 지역에 오래된 다세대빌라와 주택이 대부분이라 침수피해가 컸던 것 같다. 구청과 주민센터 직원, 자원봉사자 등 300명이 복구를 돕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은평구 응암3동 주택가 모습. 물에 젖은 냉장고와 가구 등이 집밖에 놓여 있다. 전민희 기자
주민들은 대부분 허탈감에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정모(63‧여)씨는 “이 동네에 36년째 살고 있는데, 이런 물난리는 처음 겪는다”며 “집 앞에 있는 빗물받이 배수구에서부터 물이 넘치기 시작하더니 금세 마당이 물바다가 됐다”고 회상했다. 응암3동에 7년째 거주하고 있는 송태수(62‧남)씨는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옷이고 뭐고 죄다 갖다 버리는 것 말고는 별다른 방법이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한모(50‧여)씨는 “약속 때문에 밖에 있다가 연락받고 집에 왔더니 허리 높이까지 물이 차 있더라. 비누‧바가지‧그릇 등이 물에 둥둥 떠 있더라”고 떠올렸다.

30일 현재 폭우는 잦아들었지만, 은평구 빌라에는 아직도 물이 차 있다. 자원봉사자가 보일러실에 고여있는 물을 빗자루로 쓸고 있다. 전민희 기자
정부가 이상기후에 대해 제대로 된 대책을 내놓지 못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직장인 박모(38‧서울 봉천동)씨는 “미세먼지 때는 정부에서 ‘마스크를 반드시 착용하라’는 것 외에 별다른 게 없었고, 폭염‧폭우 때도 ‘외출을 자제하라’는 게 정부 대책의 전부였던 것 같다. 정부에서 근본적인 원인을 파악해 해결책을 마련하려는 의지가 별로 없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정부도 내년부터 기후변화로 인한 신체 변화에 대해 본격적으로 조사할 예정이다. 30일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정부는 2019년부터 5년 동안 ‘미세먼지 기인 질병 대응연구’를 시작한다. 또 폭염 취약계층의 인구‧사회학적 특징을 파악하는 연구도 추진할 계획이다.
전민희 기자 jeon.minhe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