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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포수로 양치하는 노숙의 달인 '청민석환'이 요즘 읽는 책

중앙일보 2018.08.28 01:00
'김모씨 이야기' 취재팀 사무실 근처에는 범상치 않은 분이 한 분 살고 계십니다. 자신을 '유황먹은 오리'와 '독사에 물려도 죽지 않는 돼지'라 소개하는 58년생 개띠 '청민석환'씨입니다. 푸를청에 민첩할 민, '청민'(靑敏)은 그의 호(號)입니다. 석환씨는 6년쨰 서울에서 노숙 생활을 하고 있는 '만랩' 노숙인입니다. '김모씨 이야기'가 소개할 오늘의 '김모씨'입니다. (그는 사실 김씨는 아닙니다만)
 
가로등이 들어오는 공터 한 귀퉁이가 그의 집입니다. 석환씨와 처음 인사를 나눈 건 한 달 전 쯤이었습니다. 당시 그는 공터에서 나오는 미니 인공폭포를 수도 삼아 양치 중이었습니다. 옆에 있는 벤치에는 햇빛을 피하는 용도로 큰 우산이 펼쳐져 있었죠. 벤치 위에 놓인 큰 배낭과 캐리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저기엔 도대체 뭐가 들어있을까' 궁금했습니다. 자양강장제 한 병을 건네며 용기 내 말을 걸어봤습니다.
 
석환씨는 굉장히 밝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흔쾌히 취재팀을 위해 가방을 열었습니다. 가방 안에서는 물·세면도구·필기구·우산·신문지·책·선글라스 등이 화수분처럼 끊임 없이 나왔습니다. 그는 물건을 꺼내며 간단한 설명을 덧붙이기도 했는데요. 이를 테면 '검정색 우산은 모기가 대들지 않아 밤에 펴 놓고, 흰색 우산은 햇빛이 차단돼 낮에 펴 놓는다''플라스틱 파이프로 옷걸이를 만들어 쓰면 옷 열 벌도 한 번에 말릴 수 있다''한창 더울 때는 물에 된장 등을 타 먹어 수분과 염분을 동시에 보충한다' 등이었습니다. 독서가 취미라는 그의 가방에 든 책 제목은 『무엇이 조직을 움직이는가』였습니다. 아마존이 선정한 올해 최고의 경영 도서라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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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석환씨의 일상은 늘 분주합니다. 오전에는 주로 공병을 주으러 다닙니다. 그 공병을 서울역 근처 대형 마트에 팔아 컵라면 등 먹을거리를 삽니다. 종종 공사현장에 나가 노동을 한 뒤 일당을 받기도 합니다. 밤에는 가로등을 형광등 삼아 책을 읽습니다. 그렇게 주경야독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이쯤되니 궁금해졌습니다. 그는 원래 뭘 하던 사람이었을까요. 석환씨 말에 따르면 원래 그는 경기도 안산 반월공단에서 20년 넘게 일했습니다. 그러다가 한자 사범 자격시험을 보기 위해 서울에 왔고 이후 '자발적 노숙인' 생활을 10년 가까이 하고 있답니다. 왜 하필 한자 자격증이냐고요? 석환씨의 노후 꿈이 고향인 강원도에 내려가 약초를 캐며 사는 것인데, 약초를 전문적으로 공부하기 위해선 자격증이 필요하다고 하네요.
 
석환씨와 첫 인사를 나누고 얼마 안 돼 태풍 '솔릭'이 찾아왔습니다. 그가 걱정돼 찾아가 봤습니다. 마침 그는 떠날 채비를 하는 중이었습니다. "공병 주운 거 마트에 갔다주고 구세군 아이스커피가 200원인데 그거 한 컵 받아서 이동하려고요." 6년 간 서울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노숙 생활을 해온 터라 석환씨는 떠나는 것에 큰 미련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는 또 어딘가에서 빛의 속도로 적응할 겁니다. 유쾌한 석환씨의 하루가 더 궁금하시다면 영상을 클릭해주세요.
 
※세상 '어디에나 있는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유튜브로 놀러오세요!
: https://www.youtube.com/channel/UCWnyqTsk86NFkmzranBFkLw
 
'김모씨 이야기' 취재팀 hong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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