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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경 칼럼]'미친 집값'…무능도 무책임도 큰 죄다

중앙일보 2018.08.27 00:01 종합 31면 지면보기
이하경 주필

이하경 주필

요즘 회원수 50만 명이 넘는 부동산 카페에 오른 '베스트 글'이 화제다. 부동산 폭등은 “정부의 핵폭탄급 헛발질 정책” 때문이라며 “나 보고 짜라고 해도 이렇게까지 못 올릴 정도”라고 어이없어 했다.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2년 실거주 시 비과세, 대출규제라는 3종 세트가 손잡으면서 “서울 집값이 하늘을 뚫고 달나라까지 날아올라 팬티 벗고 춤추고 난리났다”고 조롱했다. “개인적으로 문재인 업적에 추가되어야 합니다. 집값 폭등”이라는 댓글도 눈에 띄었다.

고용쇼크·소득하락 이어 또 참사
현실 무시하는 정책감수성 때문
핵심 지지층까지 등돌릴 수 있어
더 늦기 전에 현실적 처방 내려야

 
 
 정부의 고강도 대책으로 잠잠했던 서울 집값이 다시 치솟고 있다. 급기야 평당 1억원에 거래된 아파트까지 출현하자 다들 “미쳤다”고 한다. 급히 올린 최저임금의 여파로 저소득층의 일자리와 소득이 줄어드는 판에 '미친 집값'이 계층 간 불균형을 악화시키고 있다. 이제는 핵심 지지층마저 고개를 돌릴 판이다.
 
 
 '미친 집값'은 MB식 토건사업을 경계한다던 박원순 시장이 ‘여의도·용산 통개발’ 이라는 핵폭탄을 투하한 게 결정적인 한 방이 됐다. 정부와 사전 조율도 전혀 없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진화에 나섰지만 통하지 않았다. 공급을 억제하는 규제 일변도의 정부 정책이라는 기름창고와 만난 핵폭탄은 '미친 집값'이라는 괴물을 만들어냈다. '베스트 글'은 “이번 정권이 다 알면서 세금 왕창 뜯으려고 일부러 이런 건지...아님 마음만 따뜻하고 머리는 비었는지... 잘 모르겠다...”고  추궁하고 있다. 박 시장은 어제 '통개발'을 "보류하겠다"며 꼬리를 내렸다. 예민한 정책을 가지고 이렇게 장난쳐도 되는 것일까. 무능도 무책임도 큰 죄다.
 
 
 지금 이 정부의 핵심 정책들은 한결같이 벽에 부딪쳐 있다. 그런데 해결의 실마리는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다. 바로 문 대통령 본인의 따뜻한 성정과 감수성이다. 이걸 정책에도 잘 살리면 된다. 문 후보는 지난해 4월 대선을 앞두고 유기견 입양 행사에 갔다. 여권 관계자는 “대화하는 도중 목덜미를 능숙하게 어루만지자 강아지가 웃었다. 얼마 뒤 비슷한 장소에 간 다른 후보와는 달랐다”고 했다. 이 장면은 반려동물을 키우는 1000만 가구의 표심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이렇게 말이 안통하는 동물을 웃게 할 정도의 섬세한 교감능력과 감수성은 인간을 상대로 한 정책 수행 과정에서도 당연히 발휘돼야 할 것이다.   
 
 
 정부는 더 늦기 전에 과격한 최저임금 인상의 역풍에 비틀거리는 경제정책을 재정비해야 한다. 아직 검증된 적이 없고, 부작용을 드러내고 있는 소득주도성장보다는 소홀했던 혁신성장을 제대로 추진해야 한다. 규제혁신을 통한 신산업투자 확대가 핵심이다.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전 산자부 장관)은 "박정희가 육성한 중화학공업, 김대중이 씨를 뿌린 부품소재 산업이 아직도 우리 경제의 주력"이라고 말했다. 문재인은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가. 청와대가 은산분리 등 20개가량의 핵심규제혁신 과제를 발표하고 공론화하려 하자 시민단체들이 반발했다. 이럴 때는 시민단체 출신 참모들이 합세해서 설득에 나서는 것이 제대로 된 정부가 아닐까.  
 
 
 정부는 최저임금 쇼크 이후 자영업자·소상공인 지원책에 12조원을 쏟아붓겠다고 했다. 하지만 업종별·지역별로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하자는 핵심 요구는 거들떠보지도 않았고, 민심은 성나 있다. 자영업자 비중이 한국의 절반 이하인 일본, 4분의1인 미국도 형편에 맞게 차등 적용하고 있다. 한국의 자영업자들은 야반도주까지 하는 실정이다. 이 위기에서 벗어나려면 지옥 같은 현장의 절규를 결사적으로 경청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기업은 변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근로자도 수년마다 직종을 바꿔야 생존할 수 있다. 그래서 노동시장 유연화가 필수적인데 강성인 민주노총이 이걸 가로막고 있다. 문 대통령은 정면 돌파해야 한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취임 초 노조 수장들을 엘리제궁으로 불러 각개 격파하고 노동개혁을 해냈다. 그는 지금 30%대의 낮은 지지율에도 기죽지 않고 공무원 기득권 혁파를 포함한 연금개혁에 승부를 걸고 있다.  
 
 
 민주노총이 노사정 대표자회의에 복귀하기로 했지만 여전히 개혁에 반대 입장이다. 문 대통령은 사회적 책무를 다하지 않은 강성 노조와 결연하게 맞서야 한다. 독일의 슈뢰더 총리는 지지기반인 좌파로부터 "배신자" 소리를 들어 가면서 노동정책을 수술했고, 메르켈 시대 독일 경제 부활의 결정적인 기반이 됐다. 지지율을 높이기 위해 인기에 영합할지,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개혁가가 될지를 분명하게 결정해야 한다.
 
 
 지금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정점을 찍고 내려가고 있다. 실망할 일이 아니다. 높은 지지율에 취해 안 보이던 현실에 눈을 뜨게 될 수 있다. 청와대에서는 “직언이 가능해졌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문 대통령이 버림받은 강아지를 웃게 했듯이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현실적인 처방을 내리는 경청의 리더십을 발휘하기를 기대한다. 
 
이하경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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