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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노숙 40년, 김씨의 가방 "가장 필요한 물건은···"

중앙일보 2018.08.26 11:00
야속하리만치 무더웠던 지난 8월 1일 '김모씨 이야기' 취재팀은 서울역으로 향했습니다. 이곳에 있는 노숙인들이 폭염 속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궁금했습니다. 서울이 111년 관측 사상 최고 기온인 39.6도를 기록한 날이었습니다. 평소 땀을 잘 안 흘리는 체질이라고 자부해 온 기자도 이날은 땀을 흠뻑 흘렸습니다.
 

[김모씨 이야기]서울역 노숙인 김모씨 가방을 열어보니

'어떻게 해야 이들의 일상을 더 잘 보여줄 수 있을까' 고민하다 취재팀은 이들이 늘 갖고 다니는 가방을 열어보기로 했습니다. 그동안 몇 명이나 덮고 잤을지 추측도 안 되는 때가 잔뜩 탄 이불부터 약 봉지, 낡은 면도기, 숟가락…. 어렵게 동의를 구해 연 가방 속에는 가방 주인의 삶을 짐작케 할 물건이 하나 둘 담겨 있었습니다.
 
"이제 저축도 하고 살아야죠" 이모(58)씨
◇가방 속 아이템:
속옷, 면도기, 컵, 티셔츠, 보건소 결핵검사증, 약 봉투, 칫솔, 기초수급자 인정 통지서 등
 
이씨의 가방 속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약 봉투였습니다. 서울역에 온 지 1년 반 정도밖에 안 된 이씨는 그 전까지 알콜의존증 치료를 위해 2년 넘게 병원을 전전했다고 합니다. 퇴원한 지금은 매일 잠들기 전 한 번씩 약을 먹습니다.
 
이씨의 고향은 전북 전주입니다.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바로 올라왔습니다. 이후 일용직을 전전했습니다. 그러다 알콜 의존 증세가 심해져 주민센터에서 이씨를 병원으로 보냈다고 합니다. 이씨의 유일한 혈육은 남동생입니다. 하지만 병원에 입원한 뒤 동생하고도 연락이 끊겼다고 했습니다.
 
대화를 나누다 이씨는 가방 속에서 자랑스럽게 종이 봉투를 하나 꺼내 취재팀에게 보여줬습니다. 얼마 전 주민센터로부터 받았다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인정 통지서였습니다. 그는 조만간 노숙 생활을 청산하고 작은 돈이나마 저축을 하며 살아보는 게 소원이라고 했습니다. 다만 '일은 안 할거냐'는 질문에는 "일 하면 수급 못 받아요"라고 짤막하게 답했습니다.
 
"지금까지 수백 명은 덮었을 거야" 김모(72)씨  
◇가방 속 아이템:  
큰 이불, 물, 휴지, 모자, 젓가락 등  
 
김씨의 가방에는 커다란 이불이 들어있었습니다. 요즘같이 더운 날이어도 새벽엔 쌀쌀할 때가 있어 덮고 잔다고 했습니다. 다른 노숙인들이 오면 '형제'처럼 같이 덮고 잔다고 하네요. 지금까지 이 이불을 덮은 사람만 수백 명이 넘을 거라고 그는 말합니다. 올 여름은 서울역 환승센터 쪽에 있는 나무 밑 그늘에서 휴식을 자주 취한답니다.  
 
김씨는 서울역 노상에서 지낸 지 거의 40년째라고 합니다. 제일 필요한 물건은 '기술자격증'이라고 답했습니다. 그는 "공사 현장에 나가 한 푼이라도 벌고 싶지만 '노숙자'에 대한 편견으로 우리를 써주는 곳이 별로 없다"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소원? 난 그런 거 잘 몰라요" 노모(62)씨 
◇가방 속 아이템:
간식봉투, 컵라면, 물, 휴지, 수첩, 숟가락  
 
경기도 수원에 살았다는 노씨는 4년째 서울역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노씨의 가방 안에는 두툼한 간식 봉지가 들어있었습니다. 낮잠을 자고 있는데 구호단체 직원이 깨워 나눠줬다고 합니다. 이렇게 받은 식량들은 3~4번에 걸쳐 나눠 먹습니다. 가방 속에서 꺼낸 물건 중 '가장 필요한 물건'이 무엇인지 물으니 노씨는 숟가락을 들어 보였습니다.
 
노씨에겐 아들 둘과 딸이 있었다고 합니다. 가족 이야기를 묻자 노씨는 머뭇거렸습니다. 두 아들 소식은 모르고 딸 하고는 가끔 연락을 한다고 하는데, 자세한 이야기는 하기를 꺼려 했습니다. 그에게 앞으로 소원 같은 게 있느냐고 물었더니 "난 그런 거 잘 모른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사실 노숙인들의 가방을 들여다본다고 해서 달라질 게 뭐가 있을지, 그게 무슨 의미일지 물으신다면 똑 부러진 답변을 드리긴 어렵습니다. 다만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무심코 지나쳤던 사람들을 한 번쯤 돌아보는 계기가 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사회 부적응자'라며 외면하기엔 그들은 여전히 살아있고, 또 우리 사회의 현실이니까요.
 
'김모씨 이야기' 취재팀 hongsam@joongang.co.kr
 
이제 '김모씨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직장인 김모씨, 대학생 김모씨, 취업준비생 김모씨, 장애인 김모씨, 노숙인 김모씨, 주부 김모씨, 성소수자 김모씨….
우리는 매일 기사를 통해 수많은 김모씨를 봅니다. '김모씨 이야기'는 바로 그 '김모씨'에 주목합니다. 너무 흔해서, 너무 사소해서 무심코 지나쳤던 무수히 많은 김모씨를 돌아보고 미쳐 보지 못했던 차별·혐오·폭력을 짚어보려 합니다. 유튜브에 '김모씨 이야기'를 검색해주세요! (https://www.youtube.com/channel/UCWnyqTsk86NFkmzranBFkL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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