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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리지 않아도 할 수 있다…이덕희가 목에 건 동메달

중앙일보 2018.08.25 13:32
들리지 않아도 할 수 있다. 듣지 못하는 테니스 선수 이덕희(20·현대자동차 후원·세계 230위)가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테니스 남자단식에서 동메달을 획득하며 인간 승리를 보여줬다. 
 
24일 인도네시아 팔렘방 자카바링 스포츠 시티 테니스코트에서 열린 아시안게임 테니스 남자 단식 4강전에서 한국의 이덕희가 중국 우이빙에게 득점한 뒤 환호하고 있다. [연합뉴스]

24일 인도네시아 팔렘방 자카바링 스포츠 시티 테니스코트에서 열린 아시안게임 테니스 남자 단식 4강전에서 한국의 이덕희가 중국 우이빙에게 득점한 뒤 환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덕희는 24일 인도네시아 팔렘방 자카바링 스포츠시티 테니스센터에서 열린 대회 남자단식 준결승에서 우이빙(19·중국·317위)에게 1-2(3-6 6-3 5-7)로 졌다. 이덕희는 비록 결승전에 진출하지는 못했지만,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2006년 도하 대회에서 이형택이 은메달을 딴 이후 12년 만에 아시안게임 테니스 남자단식 메달을 획득했다.  
 
우이빙은 지난해 US오픈 주니어 남자단식 우승자로 중국의 떠오르는 테니스 샛별로 상승세가 가파르다. 거기다 청각장애 3급인 이덕희는 들리지 못하는 핸디캡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덕희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경기를 3세트까지 끌고 갔다. 이덕희는 "동메달을 따서 기분이 좋지만, 결과는 상당히 아쉽다"며 "도쿄 올림픽에 나가기 위해 돌아가자마자 다시 바로 운동을 시작하겠다"고 다짐했다. 
 
이덕희는 청각장애 3급 테니스 선수다. 지하철이 옆에서 지나가는 소리도 듣지 못한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침묵의 세계에서 살고 있지만 답답해 하지 않는다. 말투가 어눌해도 주눅들지 않고 자신의 의사를 당당하게 표현하는 청년이다. 인터뷰 때도 다양한 표정과 손짓으로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래도 코치가 질문과 답변을 해석해줘야 소통할 수 있다.
 
한국의 이덕희가 끝까지 공을 주시해서 중국 우이빙의 공격을 받아내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의 이덕희가 끝까지 공을 주시해서 중국 우이빙의 공격을 받아내고 있다. [연합뉴스]

 
이덕희는 일곱 살 때 처음으로 테니스 라켓을 잡았다. 책 읽을 땐 10분도 앉아있지 못했지만 테니스를 하면 무서운 집중력을 발휘했다. 공 튀는 소리를 듣진 못했지만 눈에 불을 켰다. 주위 소음이 들리지 않아 경기에만 몰두할 수 있는 건 이덕희 만의 장점이었다. 하지만 장애인이 엘리트 스포츠에서 뛰는 것 자체가 엄청난 도전이다. 심판판정에 제대로 항의하지 못해 답답한 적도 많았다.
 
이덕희는 귀가 안 들리는 대신 눈이 발달했다. 시력은 1.2인데 동체시력(움직이는 물체를 보는 능력)이 뛰어난 편이다. 상대 스윙을 보고 공의 구질과 방향·스피드를 예측해 빠르게 반응하는 능력으로 프로까지 진출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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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프랑스오픈 대회 중 라파엘 나달(오른쪽)과 훈련한 이덕희. [사진 S&B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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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희의 인간승리 스토리는 세계 무대에도 알려졌다. 지난 2013년 이덕희가 남자프로테니스(ATP) 선수들 가운데 최연소(14세10개월)로 랭킹포인트 1점을 땄을 때 세계 1위 라파엘 나달(32·스페인)은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이덕희의 소식을 전했다. 나달은 당시 “그는 항상 도전해야 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다”는 글을 올렸다. 나달의 팬 460만 명이 그 글을 읽었다. 이후 이덕희와 나달은 친구가 됐다. 
2015년 윔블던 대회 중 노박 조코비치와 훈련한 이덕희. [사진 S&B컴퍼니]

2015년 윔블던 대회 중 노박 조코비치와 훈련한 이덕희. [사진 S&B컴퍼니]

 
세계적인 관심 속에서 이덕희는 실력도 쑥쑥 자랐다. 지난 2016년 7월 만 18세 2개월의 나이로 세계랭킹 200위권 안으로 진입하면서 정현이 갖고 있던 국내 최연소 200위권 진입 기록(18세 4개월)을 갈아 치웠다. 그리고 지난해 4월 세계 130위까지 올랐다. 
 
하지만 그 이후부터 성적이 좋지 않아 랭킹이 200위 밖으로 밀려났다. 본격적으로 프로 무대를 뛰면서 신체적 한계를 드러냈다는 평가가 나왔지만, 이덕희는 꿋꿋이 자신만의 테니스를 하고 있다. 그리고 아시안게임에서 동메달을 따면서 재기를 노리고 있다.    
 
박소영 기자 psy091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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