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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후 어디서 살지 답해주는 건축 안내서

중앙일보 2018.08.25 08:00
[더,오래] 한순의 인생후반 필독서(11)
60을 전후로 퇴직하는 사람들의 상당수가 전원에 집을 짓고 살고 싶은 꿈을 가지고 있다. 세상에서의 생활과 내 속으로의 생활이 다시 한번 균형을 찾는 시기이기도 하다.
 
일생에서 집을 지어보는 경험을 만난다는 것은 나 개인적으로는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집 짓는 과정을 죽을 운을 만났다는 표현을 하기도 하고, 몇 년째 집을 짓고 있다는 이들도 있다. 그만큼 그 과정은 만만치 않다.
 
사진작가 로라 J. 파젯(Laura J. Padgett)이 찍은 『건축을 생각하다』 저자 페터 춤토르(Peter Zumthor)의 아뜰리에 사진. [사진 한순]

사진작가 로라 J. 파젯(Laura J. Padgett)이 찍은 『건축을 생각하다』 저자 페터 춤토르(Peter Zumthor)의 아뜰리에 사진. [사진 한순]



경기도 양평 숲속에 출판사 차리기로
출판사에서 13년 동안 직장생활을 하고, 나무생각 출판사를 차려 15년 차가 넘어갈 무렵 출판의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을 어느 정도 경험한 남편과 나는 결심이 섰다. ‘숲속에 출판사를 차려 나는 책을 만들고 당신을 책을 파시오. 이게 우리가 가장 잘하는 일이고, 우리는 책을 떠나 살 수 없소’라는 결론을 내렸다.
 
남편과 나는 두 사람의 노후자금으로 적립하던 생명보험을 해약했다. 그리고 그 돈으로 경기도 양평 숲에 부지를 마련했다. 얼마나 좋았던지 일요일이면 차를 몰고가 싸간 커피를 마시고 돌아오기도 했다.
 
그러나 막상 건축이 시작되자 보통 일이 아님을 매일 실감하게 됐다. 숲속에 길을 내는 일이 일주일 밀리는가 싶더니, 한두 달이 넘도록 시작도 못 했다. 날씨는 추워지는데 하루하루가 한숨이었다.
 
건축을 하다 보면 커다랗게 두 축이 문제를 만들고 돌아가며 다양한 현실로 다가온다. 돈이라든지, 건축 설계, 현장의 상황이라는 문제가 그 한 축이다. 다른 한 축은 나에게 계속 다가오는 질문 ‘건축이란 무엇인가’ 혹은 ‘무엇을 지을 것인가’ 하는 문제다.
 
설계를 시작하면서 건축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컴퓨터를 붙들고 건축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럴듯한 건물 외관이나 사진에 눈이 끌려 이리저리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공부하다가 어떤 건축가의 글을 보게 됐다. 그가 페터 춤토르(Peter Zumthor)다. 그의 책 『건축을 생각하다』에는 이런 글이 있다.
 
사진작가 로라 J. 파젯(Laura J. Padgett)이 찍은 『건축을 생각하다』 저자 페터 춤토르(Peter Zumthor)의 아뜰리에 사진. [사진 한순]

사진작가 로라 J. 파젯(Laura J. Padgett)이 찍은 『건축을 생각하다』 저자 페터 춤토르(Peter Zumthor)의 아뜰리에 사진. [사진 한순]

 
“이모 집 정원에 숟가락을 닮은 손잡이가 있었다. 그 손잡이는 마치 분위기가 전혀 다르고 색다른 향기가 가득한 세계로 들어가는 특별한 출입구의 상징과 같았다. 발아래로 들리는 자갈 소리, 왁스 칠을 한 오크재 계단의 은은한 광택, 집으로 들어가면 무거운 문이 닫히는 소리, 어두운 복도, 집 안에서 유일하게 불이 켜져 있던 부엌, 이 모두가 지금도 내 기억 속에 존재한다.”


‘무엇을 지을까’에 답해주는『건축을 생각하다』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받은 페터 춤토르는 ‘무엇을 지을 것인가’라는 질문과 함께 우리 속에 보고로 남아 있는 기억 속으로 들어가는 통로를 열어준다. 어떤 이유로 내 기억 속에 소리로 빛깔로 냄새로 남아 있는 장소, 공간에 대한 성찰과 재료에서 느껴지는 감각에 천착한다.
 
“나는 건물을 설계할 때 이제는 시간이 흘러 어렴풋해진 기억 속에 잠길 때가 종종 있다. 기억 속의 건축적 상황이 실제로 어떠했는지, 당시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 회상하며 각기 독특한 장소와 형태를 가진 여러 사물이 만들어내는 그 활기찬 분위기를 어떻게 하면 현실로 부활시킬지를 고심한다.”
 
『건축을 생각하다』, 페터 춤토르, 나무생각, 2013. [출처 나무생각]

『건축을 생각하다』, 페터 춤토르, 나무생각, 2013. [출처 나무생각]

 
그의 글에서 내뿜는 시적 메타포와 분위기에 매료돼 곧바로 에이전시를 통해 페터 춤토르의 책을 출판했다. 『건축을 생각하다』와 『분위기』라는 두 책이다. 나는 이 책을 50을 넘어 만나게 된 것을 기뻐했다. 함축된 문장 속에 깃든 삶의 깊이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의 책을 만들면서 건축이 스케일이 큰 책임 있는 놀이라는 명랑한 잠언을 얻기도 했고, ‘대상 이면의 수고’ 챕터에서는 음악의 구조를 지배하는 규칙을 풀어 건축의 행위를 설명하는 장면을 만나기도 했다. 이 책은 쉽게 넘어가지 않는다. 그러나 시간을 담보 잡는 대신 울림이 크고 명징하다.
 
나의 경우에 비추어보면 건축을 통해 숲속 집으로 도망가 숨으려다가, 오히려 세상과 아주 적극적으로 부딪히는 상황이 됐다. 내면에 차곡차곡 접어두었던 옛 기억을 떠올리고 회상하면서 어떤 느낌이었는지, 벽지는 무슨 색이었는지 해부하듯 유년을 살피는 경험이 됐다.
 
이런 경험은 나와 세상에 대한 총체적 점검과 회상이 되었으며, 나는 누구인가, 어디에 살 것인가, 무엇을 지을 것인가에 대해 구체적으로 대답하는 계기가 됐다. 고문 같기도 하고 즐거운 쥐어짜기 같기도 한 건축의 경험이 다가온다면 그대로 즐겨 보시길 권한다. 그러나 친절하고 깊이 있는 안내서 한두 권 정도는 정독하고 다가가길 바란다.
 
한순 도서출판 나무생각 대표 tree333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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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순 한순 시인, 도서출판 나무생각 대표 필진

[한순의 인생후반 필독서] 노후에 들어선 사람은 새로운 추억을 쌓아가는 게 필요하다. 그 방법 중 하나는 예전에 밑줄 치며 읽었던 책을 다시 꺼내 읽어보는 것이다. 그때의 감동이 되살아 인생 후반부에 제2의 사춘기를 겪게 될지 모른다. 흔들리는 대로 나를 맡겨보자. 또 퇴직하게 되면 만나는 사람의 범위가 좁아지고,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진다. 외로움과 고독이 밀려온다. 이럴 때 책 읽기는 세상에 둘도 없는 절친이 돼 줄 수 있다. 출판사 대표가 인생 후반부의 필독서는 어떤 게 있고 책 읽기는 어떻게 하면 되는지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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