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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의 왕국’에 예술을 허하라

중앙선데이 2018.08.25 02:00 598호 29면 지면보기
폭염에 유명 놀이동산에서 동물인형 탈을 쓰고 공연하던 알바생의 탈진 사고가 있었다. 놀이동산측의 대처 방식도 논란이 됐지만, 애당초 한여름에 털옷·털장갑·털신발에 인형탈이 웬말인가 싶다. 아동 취향의 퍼레이드쇼를 위한 것이라지만, 사실 아이들의 상상력 수준이 훨씬 높은 것 아닌가. 공연물이 동물을 표현하는 방식에 대해 새삼 다시 생각하게 만든 사고였다.  
 
Joan Marcus ⓒDisney

Joan Marcus ⓒDisney

하반기 내한공연을 앞두고 있는 뮤지컬 ‘라이온 킹’은 동물을 예술적으로 표현한 대표 사례다. 여성 최초로 토니상 연출상을 받은 줄리 테이머가 구현한 ‘휴매니멀’ ‘더블 이벤트’라는 매커니즘의 핵심은 얼굴을 드러낸 배우가 동물 형상을 직접 조종하는 방식이다. 수레바퀴를 회전시키며 가젤이 전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배우의 사지에 죽마를 연결한 뒤 머리에 긴 모자를 써 기린 특유의 움직임을 구현하는 식이다.  
 
줄리 테이머는 일본에서 오페라 ‘오이디푸스 렉스’(1992) 공연을 연출하면서 처음 이런 방식을 시험했다. 세계적인 소프라노의 얼굴과 성량을 가리지 않기 위해 가면을 로마군 투구처럼 얹어 호평받았고, 이후 ‘라이온 킹’에서 아프리카 마스크와 인도네시아 그림자극, 일본 인형극 분라쿠 등을 차용해 더욱 발전시켰다. 1만 7000시간을 들여 만든 200여 개의 퍼펫과 마스크는 항공기용 탄소 섬유를 사용해 무게를 최소화했다. 심바·스카·무파사·날라 등 각각 개성적인 사자 가면과 배우 얼굴의 동시 노출은 동물의 드라마틱한 감정 변화를 관객의 머리속에서 완성시키는 새로운 예술적 경지를 개척해 “동물 표현에 신의 손길이 느껴진다”(뉴욕타임스)는 극찬까지 받았다.  
 
그런데 1997년 초연 이래 20개국 100여개 도시에서 장기공연되며 9500만명 이상의 관객을 모은 이 ‘세계 흥행 1위 엔터테인먼트’가 유독 한국에서만 굴욕을 맛봤다. 아시아 판권을 가진 일본 뮤지컬극단 시키가 2006년 야심차게 1년 장기공연을 감행했지만, 36억원의 적자를 보고 물러났다. 미성숙했던 당시 한국 뮤지컬시장에서 스타캐스팅 없는 ‘가족 뮤지컬’ 마케팅이 ‘아동용’으로 오해받아 당시 뮤지컬팬층의 절대 주류였던 젊은 여성층에게 어필하지 못한 것이다.  
 
이번에는 디즈니가 직접 나섰다. 초연 20주년을 맞아 전세계 프로덕션에서 드림팀을 꾸린 오리지널 투어다. 펠리페 감바 인터내셔널 프로덕션 총괄이사는 “모든 브로드웨이 쇼는 가족을 타깃으로 만들지 않는다. ‘라이온 킹’이 전연령을 아우르지만 세련된 관객에게 높은 수준의 철학적 메시지를 전하는 쇼로 제작했다”면서 “디즈니 스토리텔링의 강점은 우리 모두의 동심에 호소한다는 것”이라 강조했다.  
 
이제 우리 뮤지컬시장도 스타를 넘어 예술성을 요구하는 성숙단계로 접어들었다. ‘라이온 킹’이 구현한 인간과 자연의 혼연일체 매커니즘에는 ‘우리는 하나’라는 메시지와 ‘생명의 순환’이란 동양 철학도 담겨있다. 다국적 창작진과 전세계 프로덕션 배우들이 어우러져 완성한 글로벌 콘텐트라는 점도 다문화사회로 변모한 우리 사회에 울림을 준다. 이런 예술성은 어른만의 것도, 어린이만의 것도 아니기에 결과적으로 ‘가족 뮤지컬’이 됐다. 동물소재 콘텐트가 꼭 ‘아동취향’일 필요 있을까. 어른에게도 동심이 있고, 때론 어린이가 더 예술적이란 걸 기억하면 좋겠다.  
 
글 유주현 객원기자 yj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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