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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의 ‘아이러니’, 할리우드 스타일로 풀었죠”

중앙선데이 2018.08.25 02:00 598호 22면 지면보기
국립오페라단 ‘코지 판 투테’ 연출하는 니콜라 베를로파
모차르트의 희극 오페라 ‘코지 판 투테’는 위험한 작품이다. ‘여자는 다 그래’라는 뜻의 제목부터 요즘 시대에 받아들이기 힘든 ‘여혐’의 냄새가 풍긴다. 두 남자가 늙은 철학자와 내기를 걸어 각자의 약혼자의 정절을 시험하고, 두 자매는 속아서 서로의 약혼자와 결혼서약까지 한다는 플롯은 18세기에도 이미 “부도덕하다”고 비난 받았다. 하지만 모차르트의 너무도 아름다운 음악 덕택에 살아남아 다양한 재해석 버전으로 공연되고 있다.  
 
국립오페라단의 올시즌 하반기 첫 무대도 ‘코지 판 투테’(9월 6~9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다. 신선한 감각으로 세계 오페라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이탈리아 출신 젊은 연출가 니콜라 베를로파(nicola berloffa·37)가 200년간 쌓인 ‘코지 판 투테’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걷어내겠다고 나섰다. 여성에 대한 묘사가 어느 때보다 까다로워진 지금, 그의 해법은 무엇일까. 18세기 나폴리 배경의 이야기를 1950년대 할리우드를 연상시키는 화려한 도시의 럭셔리 부티크에서 단 하루동안 벌어지는 해프닝으로 바꿔버린 그의 대답은 뜻밖에도 “원작자의 의도로 돌아간다”였다.
 
‘코지 판 투테’는 저속한 이야기라는 편견이 있다.  
“내 작업은 모차르트 레퍼토리에 200년간 쌓이고 쌓인 녹을 제거해내는 일이다. 극작가인 로렌초 다 폰테와 모차르트는 둘다 삶을 사랑했고, 작품 배후에는 인간의 자연스런 감정에 대한 찬양이 깃들어 있다. 그들의 의도는 인간성을 그대로 표출하는 것이었는데, 그 방식이 독창적이었다. 감정을 직접적이고 심플하게, 어린애처럼 순수한 표현방식으로 보여 준 거다. 그래서 이 작품은 인물들의 단순함, 순진함, 천진난만한 성격에서 출발해야 된다고 본다. 우리 가수들이 젊다보니 그런 표현이 수월하다.”  
 
여성의 정절에 내기를 걸고 속임수를 쓰는 플롯 자체가 지금의 도덕적 기준에서 용납하기 어렵다.  
“그것을 어떻게 무대에서 다룰 것인가에 따라 달라진다. 심각하게 다루지 않고 놀이처럼, 게임으로 다루면 된다. 경쾌함과 가벼움, 아이러니 요소를 섞어 재미있게 보여주면 된다. 이건 교훈을 주는 오페라가 아니고 코믹 오페라다. 누구한테 뭘 가르치려는 건 아니다. 경쾌한 로맨틱코미디 그 자체대로 즐겨달라.”

그는 이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즐기려면 “대본과 음악에 깔린 아이러니를 이해해야 한다”고 했다. 콧수염 하나 달고 나타났다고 약혼자를 못 알아보는 말도 안되는 상황을 ‘멍청하다’고 비난할 게 아니라 ‘아이러니’로 즐기라는 것이다. “중요한 건 소재 자체가 굉장히 심플하다는 점이다. 이야기에 담겨지지 않은 의미, 심리나 폭력성 같은 걸 억지로 찾을 필요는 없다. 단순히 젊은이들의 사랑 이야기인데, 젊기 때문에 천진하고 즉각적이고 그래서 더 깨지기 쉽다는 얘기다. 관객도 그 청년들의 나이로 돌아간 마음으로 보면 재밌을 거다.”
베를로파의 '코지 판 투테'는 1950년대 할리우드풍의 럭셔리 부티크가 무대다.

베를로파의 '코지 판 투테'는 1950년대 할리우드풍의 럭셔리 부티크가 무대다.

 
배경을 1950년대 할리우드를 연상시키는 시공간으로 옮겨왔다.  
“이 작품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가 말도 안 되는 것에 모두가 속아 넘어가는 아이러니다. 하녀 데스피나가 의사로 변장해 갑자기 라틴어를 쓰는데 아무도 못 알아듣고 속아 넘어가는 식이다. 50년대 할리우드 영화에도 ‘코지’에서 추구하는 그런 가벼움이 있었다. 영화 ‘백만장자와 결혼하는 법’에서도 마릴린 먼로가 안경만 쓰면 아무도 못 알아보지 않나. 그런 유머코드로 풀어보려고 한다.”  
 
단 하루 동안에 일어나는 일로 속도감을 높인 이유는.  
“그리스비극의 시간 개념을 희극에 적용해 보고 싶었고, 셰익스피어의 ‘한여름밤의 꿈’과 같은 세계관을 보여주고 싶기도 했다. 밤을 잘 이용하고 싶었다. 멜로 드라마의 세계에서 밤은 신비이자 유혹이고 에로스다. 보통이 아닌 모든 이상한 것들은 밤시간에 이뤄지지 않나. 밤에는 변장하기도 쉽고 누구를 속이기도 쉬운 시간이다. 밤 동안에 유혹과 사랑이 이뤄지지만 새벽에 동트면서 깨어나면 간밤에 일어난 모든 것들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깨닫게 되는 이야기로 풀고 싶었다.”  
베를로파 버전 '코지 판 투테'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이미지

베를로파 버전 '코지 판 투테'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이미지

 
오페라는 가사를 못바꾸니 배경이 현대화되어도 등장인물의 사고방식은 그대로라 현대적 재해석에 한계가 있는 것 같다.  
“무대에서 일어나지 않는 일들에 대한 레치타티보는 다 잘랐다. 대부분 무대세트나 의상 등 미술을 통해 재해석하지만, 단순한 미학적 선택은 아니다. 의상만으로 등장인물의 나이와 신분, 심리에도 변화를 줄수 있다. ‘코지’의 두 여주인공도 각자의 특징을 의상만으로 엿볼 수 있게 했다. 최근에 연출한 ‘카르멘’과 ‘나비부인’의 경우 드라마투르기 일부를 재건해 스토리 자체를 바꿨다. ‘나비부인’은 1945년을 배경삼아 서양이 핵으로 동양문화를 파괴한 부분을 다뤘고, 유혹의 화신인 카르멘은 평범한 연약한 여자의 악몽처럼 해석해 관객에게 모던하게 다가갈 수 있었다.”
 
오페라 관객은 노령화 추세다. 다양한 형태의 새로운 공연예술이 자꾸 생겨나니 젊은 세대는 오페라에 매력을 못 느낄 수도 있는데, 젊은 연출가로서 오페라만이 가진 미덕을 꼽는다면.  
“오페라를 보러 가는 건 예배나 미사에 가는 것과 마찬가지다. 일단 극장에 가려면 옷부터 잘 갖춰입어야 하고, 외투를 맡기고 객석에 앉아 불이 꺼진 다음 지휘자가 올라오고 서곡이 시작되는 일련의 세리모니 자체가 이미 극의 일부고, 그런 게 관객을 끄는 요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도 그런 의식적인 성격 때문에 오페라에 빠져들었다.”  
 
글 유주현 객원기자 yjjoo@joongang.co.kr  사진 국립오페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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