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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의 디바’에게 가족의 사랑이 있었더라면

중앙선데이 2018.08.25 02:00 598호 30면 지면보기
영화 ‘휘트니’
 
2012년 2월 11일, 휘트니 휴스턴이 세상을 떠났다. 마흔 여덟이었다. 공교롭게도 그래미 시상식 전날 축하파티가 있던 날이었다. 그는 그날 오후 캘리포니아 비벌리힐스에 있는 비벌리 힐튼 호텔의 욕조에서 발견됐다. 사인은 ‘익사 및 죽상경화 관상 동맥성 심장 질환과 코카인 복용의 결과’. 다시 말해, 코카인 흡입으로 인한 익사 사고였다.  
 
갑작스런 참변으로 휘트니 휴스턴의 일생은 ‘디바와 마약’으로 각인됐다. 다시 쓰거나 이어갈 수 없는 마침표를 찍고 만 것이다. 가수로서의 삶을 돌아보자면, 그는 팝 역사상 처음으로 ‘디바’라 불린 여가수였다. 지금도 깨지지 않을 정도로, 그가 세운 기록은 공고하다. 누적 음반 판매량은 1억 7000만 장이 넘고, 팝 역사상 최초로 7곡 연속 빌보드 싱글 차트 1위를 기록했으며, 에미상ㆍ그래미상 등 각종 수상 기록만 415번에 달한다. 이 기록으로 기네스북에 올랐을 정도다. 그가 출연한 영화 ‘보디가드’(1992)의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에 수록된 노래 ‘아이 윌 올웨이즈 러브 유’는 당시 미국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14주간 1위를 차지했다. 역대 최장기간 1위 기록이었다. 옆집에서 이 노래만 계속 튼다 하여 이웃 간 싸움이 일어날 정도였다.  
 
1972년 뮌헨 올림픽에서 납치된 이스라엘 선수들에 관한 영화 ‘원 데이 인 셉템버(1999)’로 아카데미 최우수 다큐멘터리 상을 받았던 케빈 맥도널드 감독은 이 다큐멘터리의 연출 동기를 이렇게 밝혔다. “휘트니 휴스턴의 삶이 왜곡되지 않길 바랐다.”  
 
다큐멘터리는 화려하기만 했던 디바가 왜 마약에 중독될 수 밖에 없었는지 찬찬히 그리고 세심하게 그녀의 무대 위와 너머를 보여준다. 감독은 이를 위해 어머니 씨씨 휴스턴, 배우 케빈 코스트너, 전 남편 바비 브라운, 올케이자 매니저였던 팻 휴스턴 등 30여 명에 달하는 가족ㆍ친구ㆍ동료들의 인터뷰를 녹여냈다.  
 
미공개 홈비디오 영상 속 디바의 모습이 눈길을 끈다. 마침 그가 주목받던 1980년대는 미국에 홈비디오가 막 보급되기 시작한 때였다. 제작진은 휘트니 휴스턴이 항상 많은 가족 및 매니지먼트 직원들과 함께 공연 투어를 다녔다는 점에 주목했다. 1500개가 넘는 다양한 길이의 비디오 테이프와 2000개가 넘는 사진에는 우리가 몰랐던 디바의 모습이 숨어있었다. 감독은 “처음에는 슈퍼스타의 다양한 영상이 아카이브 되어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생각 외로 영상물이 여러 곳에 흩어져 있었다”며 수집의 고충을 토로하기도 했다.  
 
조각나 있던 퍼즐들을 끼워 맞춘 결과, 휘트니 휴스턴의 삶은 공허했고, 주변부는 잔뜩 꼬여 있었다. 천상의 목소리를 가진 디바의 어린 시절은 부모의 이혼으로 깊이 패였고, 모든 가족들은 오로지 그녀만 보고 그녀의 수입에만 의지했다. ‘가족 사업’이라고 불릴 정도였다. 매니저였던 친오빠가 생일 선물로 별생각 없이 건넨 마약에 그는 점점 중독되기 시작했다. 휘트니의 인기를 시기 질투한 남편은 망나니처럼 굴었다. 유년시절 성추행의 기억, 매니지먼트 업무를 총괄했던 아버지의 횡령 등 무대 밖 디바의 진짜 삶은 총체적 난국이었다. 하지만 디바의 일거수 일투족에 모든 이들의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었던 터라, 정작 본인은 아프다고 외치지도 못한 채 점점 외로워졌다.  
 
다큐멘터리치고 제법 긴 120분의 상영 시간은 금세 지나간다. 사건사고로 점철된 디바의 삶이 너무 드라마틱해서다. 그리고 스크린을 보면 볼수록 그가 그리워진다. 휘트니 휴스턴이 91년 마이애미 탐파 스타디움에서 개최된 제25회 수퍼볼 경기에서 미국 국가를 제창한 영상과 94년 남아프리카 공화국 요한네스버그에서 넬슨 만델라 대통령 선출을 기념해 연 콘서트에서 ‘아이 윌 올웨이즈 러브 유’를 부르는 영상은, 보고 또 봐도 전율이 돋는, 팝 역사상 최고의 명장면이다.  
 
글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사진 판씨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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