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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 가게가 공들인 안경테

중앙선데이 2018.08.25 02:00 598호 20면 지면보기
윤광준의 新생활명품 <86> 하쿠산 안경  
 
길거리를 걷거나 TV를 보다 보면 안경 쓴 이들이 유독 눈에 들어온다. 다 제 관심의 발동인데, 확실히 예전과 다른 변화가 느껴진다. 다양한 스타일의 개성적인 안경을 걸치고 다니는 이들이 늘었다. 가는 철사와 얇은 철판을 도려내 만든 북구 디자인의 파격이 수용된다. 평소 꺼렸음직한 커다랗고 시커먼 플라스틱 안경도 아무렇지 않게 쓴다. 남의 눈을 의식, 아니다. 의식하지 않는 자신감일지 모른다.  
 
유명 연예인들의 과감한 선택이 유행을 만들어가기도 한다. 특정 브랜드의 인기몰이가 화제를 만든다. 새로운 것의 수용과 도전이 낯설지 않은 젊은 세대의 열광을 이해한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인들까지 예전에 못 보던 안경들을 쓰고다닌다. 과거 세대의 전유물 같았던 두터운 검정 테와 금 장식의 선호에서 벗어난 변화다. 위압적 과시 대신 제 마음에 드는 안경으로 부드러움을 풍기는 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안경, 얼굴을 변신시키는 마법의 도구
요즘 뜨고 있는 국산 안경 브랜드 ‘젠틀 몬스터’는 이런 시대의 요구에 부응한다. 매장을 미술관으로 꾸민 신선한 접근은 안경을 문화로 파악한 발 빠른 대처다. 제 얼굴의 자신감에 더해진 예술적 감성의 안경이라면 나쁠 게 없다. 자신을 드러낼 적극적 표현 도구가 되었을 테니까. 이젠 눈이 나빠서 안경을 쓰는 게 아니다. 좋고 멋진 안경에 대한 기대와 수요가 느는 건 당연하다. 이젠 우리도 국민소득 3만불 시대에 들어섰다.  
 
독일 예나의 광학박물관에 진열된 전시품의 반 수 이상이 안경이었던 점에 놀랐다. 시대 변화와 유행에 겉돌지 않았던 다채로운 시도의 흔적들은 치밀하고 방대했다. 안경은 바꿀 수 없는 얼굴을 변신시켜줄 마법의 도구였다. 유럽 사람들은 일찍부터 안경의 효과를 굳게 믿었음이 틀림없다. 안경은 인간의 자기 현시와 관련된 욕망의 도구였던 거다. 안경이 시력 보완의 광학적 기능에 한정되었다면 이토록 다채로운 디자인의 물건이 나왔을 리 없다.  
 
안경 관련 책을 여럿 구해 읽었고, 유럽과 일본의 매력적인 안경점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살아오면서 지치지도 않고 안경을 바꿨다. 나는 안경 애호가이기 때문이다. 좋다는 안경은 두루 써 보거나 알고 있다. 스스로 허락하는 유일한 사치 품목이 안경이다. 앞으로도 선택의 도락은 계속 이어질 공산이 크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세상에서 내 마음대로 휘둘러도 좋은 무기를 안경으로 삼았으니까.  
 
손 끝이 알아차리는 안경테의 정교함
이전부터 알고 있지만 선뜻 손이 가지 않았던 안경이 하나 있다. 바로 일본의 하쿠산(白山)이다. 내 관심의 축이 미국제 ‘레이 밴’이나 ‘올리버 피플스’를 거쳐 북유럽제 ‘아이씨 베를린’ ‘테오’ ‘린드버그’ ‘코펜하겐 아이즈’ ‘유스 아이웍스’로 옮아갔던 이유가 크다. 일본의 안경 디자인이란 이들 브랜드들의 아류쯤으로 파악했던 선입견도 작용했다. 게다가 사진으로 보았던 전후 일본 지식인들은 하쿠산 스타일의 동그란 은제 안경 일색이다. 마치 군국주의자들의 집단행동처럼 비쳐지는 부정적 이미지도 한 몫 했다.  
 
하쿠산은 1883년 안경점으로 출발해 직접 안경까지 만드는 오래된 브랜드다. 전통을 중요시하는 일본이지만 한눈팔지 않고 135년을 이어왔다는 건 놀랍다. 도쿄와 오사카에 다섯 곳의 점포가 운영 중이다. 역사와 전통이 낡게 느껴지지 않는 차분하고 안정된 분위기의 안경점은 인상적이다. 2년 전 서울에 첫 해외 매장을 냈다. 서울의 하쿠산 안경점 또한 분위기가 비슷하다. 누가 봐도 일본의 물건을 취급한다는 느낌이 저절로 든다.  
 
안경잡이들은 손에 쥔 안경의 감촉만으로 짚이는 게 있게 마련이다. 공들여 만든 물건의 매끄러운 질감에서 풍기는 기품이다. 여느 안경테와 다를 게 없는 아세테이트 재질조차 침착함과 깊이가 더 느껴진다. 표면을 백 번 문질러 얻은 광택과 만 번 문지른 게 똑같을 수 없다. 물성을 뛰어넘는 힘 같은 것이 풍기는 출발이다.  
 
안경 다리를 접혀지게 하는 경첩의 단수가 하나 더 많다. 정교하게 결합시켜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게 한 공방의 비밀이다. 손끝이 먼저 안경의 모든 걸 알아차린다. 드러난 형태보다 감촉의 결에서 장인의 솜씨가 느껴지는 하쿠산이다.  
 
오노 요코의 앨범 속 ‘존 레논 안경’으로 명성
하쿠산의 안경을 유명하게 만든 인물이 있다. 바로 비틀스의 멤버였던 존 레논이다. 일본인 아티스트 오노 요코가 아내였으니 하쿠산 안경의 애호 이유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정신 이상자의 총탄에 암살당한 존 레논은 바로 신화가 되었다. 이후 오노 요코의 활동은 계속됐다. 그녀가 낸 앨범 재킷엔 암살 당시 존 레논의 피 묻은 안경 사진이 들어있다. 하쿠산의 메이페어다. 존 레논의 신화와 강렬한 이미지는 엉뚱하게도 하쿠산의 매력을 알리게 된 계기가 된다. 잘 되는 집은 우연조차 기회와 성장의 발판을 삼는 모양이다. 1980년대의 일이다.  
 
미국 빈티지 안경의 모방에 머물던 하쿠산이 규모의 확대와 함께 변신한다. 세계적 관심에 부응하는 독자적 개성의 필요를 절감했을 터다. 모방을 벗어버리고 개성적인 디자인과 색채를 더한 시도가 이어진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일본은 없던 것을 만들어내는 일보다 있는 것을 더 잘 만드는 데 재주가 많다는 속설을 반복한다. 디자인을 위한 디자인이란 하쿠산의 특기가 아님을 증명한 셈이다. 다양한 시도는 빈티지 스타일의 연장선상에 있는 하쿠산의 고정 이미지를 넘지 못한다. 감탄을 연발할 만한 첨단의 독특함과 남들과 다른 개성의 파격은 없다는 말이다. 답습과 변형의 소극적 대응이다.  
대신 하쿠산엔 꼼꼼하게 만든 물건의 아름다움이 넘친다. 모두가 새로움이란 하나의 방향으로 갈 때 홀로 반대쪽에 남아 있어 돋보이는 미덕이다. 모두를 갖지 못한다면 하나라도 확실한 선택의 역량을 갖는 게 낫다.  
 
19세기 아르누보 양식을 21세기에 부활시키다
금속 재질의 하쿠산 안경 브리지에 각인된 문양도 눈여겨 볼만하다. 19세기 윌리엄 모리스로부터 비롯된 유럽 공예운동이 아르누보 양식으로 진화된 흔적이다. 작은 부분에 새겨 넣기 좋은 이슬람 아라베스크식의 기하학적 문양이 아니다. 꽃이나 식물에서 차용된 형태의 간략화에서 얻은 아르누보 스타일의 사실적 패턴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다. 안경에 공예의 아름다움을 담으려고 노력한 거다. 우아한 고전으로 일컬어지는 아르누보식 문양이 하쿠산에 담겨있다. 유럽에서 출발, 미국을 거쳐 일본에 정착된 과거의 흔적이다.  
 
정작 출발지인 유럽제 안경엔 아르누보 문양이 거의 들어가지 않는다. 형태의 답습도 없다. 기능주의 디자인의 간결함을 강조한 세련된 형태와 색채의 화려함이 추세다. 이전에 없던 참신한 디자인은 안경에 더 이상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부수어 버린다. 새로 만드는 이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는다. 앞으로의 성과에만 관심을 둔다. 받아들이는 쪽은 다르다. 원형을 잃어버리면 뿌리가 부정당하게 된다. 간직하려는 몸짓이 커질 수밖에 없다.  
 
준 쪽은 이미 버린 과거의 흔적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하쿠산이다. 재료의 변경도 접근의 방식도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이런 측면에서 하쿠산 안경은 좋은 시절을 뜻하는 ‘벨 에포크’의 화석 같기도 하다.  
 
세상은 재미있다. 첨단을 사는 이들에겐 과거의 모습이 외려 새롭고 좋게 느껴지는 모양이다. 1970년대를 겪었을 리 없는 젊은이들이 하쿠산에 열광하고 있다. 변화의 속도에 지친 이들의 자발적 선택 이유를 흘려버리지 말 일이다.  
 
글 쓰는 사진가. 일상의 소소함에서 재미와 가치를 찾고, 좋은 것을 볼 줄 아는 안목이 즐거운 삶의 바탕이란 지론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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