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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탐사] 난민 신청 1000명에 심사관 6명, 제주 출입국청 북새통

중앙선데이 2018.08.25 01:20 598호 4면 지면보기
11일 제주시의 한 호텔에서 쫓겨난 예멘 난민신청자들이 불교 단체와 제주 출입국·외국인청 직원들의 도움으로 새 숙소로 이사했다. [이유정 기자]

11일 제주시의 한 호텔에서 쫓겨난 예멘 난민신청자들이 불교 단체와 제주 출입국·외국인청 직원들의 도움으로 새 숙소로 이사했다. [이유정 기자]

지난 17일 제주시 장전리 사무소에는 제주시 유수암리·장전리·소길리 주민 80여 명이 몰려들었다. 일주일 전 기독교 단체인 ‘사마리안 행동’의 박준범 목사가 페이스북에 “장전리 펜션에 예멘인 8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사마리안 하우스’를 만들겠다”고 밝힌 게 화근이었다. 몰려든 주민 대다수는 ‘제주맘 카페’에서 이 사실을 접한 펜션 인근 장전초등학교 학부모들이었다. “등교 거부도 고려하겠다”는 말까지 나왔다. 이들 앞에 선 제주 외국인·출입국청(이하 제주 출입국청) 강영우 관리과장 일행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인도 100명, 중국 300명, 예멘 549명
숙소 알려지면 주민들 집단 항의
360명에 승마장 등 일자리 주선
교육, 구호품 전달도 출입국 몫

 
주민과 갈등 빚을라 쉬쉬, 36곳 분산 배치
 
학부모들은 “법무부가 상시 관리하는 시설에 집단 수용하는 게 맞다”는 입장이지만 제주도의 협조를 얻지 못한 제주 출입국청은 미취업자 260여 명을 종교·인권 단체가 마련한 36개 숙소에 나눠 배치했다. 강 과장은 “인적이 드물면서도 쾌적한 숙소를 마련하는 게 출입국청의 큰 업무가 됐다. 숙소의 소재가 알려질 때마다 곳곳에서 주민들과의 마찰이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11일에도 강 과장팀은 제주시 소재 한 관광호텔에 묶던 예멘인 10명을 급히 한 종교단체가 지원한 거처로 옮겼다. 취사 시설 사용 문제로 한국인 손님들과의 갈등이 빚어지자 호텔 사장이 수용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예멘인들은 지난해 12월~올 5월까지 몰려들었지만 지난 5월 초까지 제주엔 난민심사관이 단 1명뿐이었다. 아랍어를 할 수 있는 법무부 직원이 없어 급한 대로 2012년부터 제주에 체류해 온 시리아인을 통역으로 활용했다. 심사관 6명, 통역 4명 체제가 된 것은 8월 들어서다. 다른 지역에 있는 심사관들을 제주로 돌리고 통역관을 긴급 특채했다. 그 사이 제주 출입국청엔 인도인 100여 명과 중국인 300여 명의 난민 신청서가 추가로 접수됐다. 인력이 충분치 않다 보니 통역관들도 심사 지원 외에 난민 신청자 체류 관리 업무 전반에 투입되고 있다. 강 과장은 “지금은 전시(戰時)”라며 “심사만큼이나 주민 불안을 관리하는 것 역시 중요한 일이라 일이 터지는 현장에는 모두 쫓아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갑자기 기도하러 간다고 말 없이 사라지면 안 되고 ‘몇 시에 물고기 밥을 줘야 한다’고 들었다면 약속을 꼭 지켜야 합니다.”
 
지난 18일 제주 출입국청에서 열린 취업자 대상 교육에 나선 강 과장의 강의 주제는 ‘사장님이 좋아하는 근로자’였다. 예멘인 40명이 강 과장의 말을 옮기는 통역관의 한마디 한마디에 귀를 기울였다. 제주 출입국청은 지난 6월부터 예멘인들에게 어선·양식장·승마장 등 일부 업종에 대한 취업을 허가하고 업주를 연결해줬다. 난민신청자에게 일자리를 제공할 법적 책임은 없지만 대다수가 일자리를 찾아 예멘 현지의 가족들을 부양하려는 열망이 강한 20, 30대 남성이라는 점을 고려한 조치다.
 
제주 체류 예멘인들의 경제적 동기는 뚜렷하다. 서귀포시의 양어장에서 만난 아미르(27·가명)는 “사나에서 호텔을 운영했는데 내전 이후 장사가 안 돼 가족들이 곤란에 처했다”며 “예멘인은 수단이나 이집트 등에는 갈 수 있지만 일자리가 없고 선진국 중에는 한국이 유일하게 입국할 수 있는 나라였다”고 말했다. 한국의 무사증 제도와 고용 환경에 대한 정보는 유튜브를 통해 접했다고 했다.
 
실제로 페이스북이나 유튜브에는 지난 5월 전후로 “말레이시아 등에서 월급이 500달러 미만인 모든 예멘인에게 한국행을 권한다” “초기엔 400달러 정도의 지원금을 받을 수 있지만 6개월 지나면 취업 허가를 받을 수 있다” 등의 글을 올린 예멘인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페이스북에 이 같은 포스팅을 한 무함마드는 중앙SUNDAY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체류 중인 예멘인들의 SNS를 통해 한국에서는 월 2500달러까지 벌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페북·유튜브 등 SNS 통해 한국 정보 얻어
 
출도 제한으로 발이 묶인 예멘인 465명 가운데 203명(16일 기준)은 승마장·어선 등에서 일하고 있다. [이유정 기자]

출도 제한으로 발이 묶인 예멘인 465명 가운데 203명(16일 기준)은 승마장·어선 등에서 일하고 있다. [이유정 기자]

취업 알선 정책은 지금까진 절반의 성공이다. 제주 출입국청은 지금까지 360명에게 일자리를 주선해 203명(지난 16일 현재)이 일터에 남아 있다. 예멘인 2명을 고용한 승마장 관리책임자 문모(58)씨는 “승마장에서 말 먹이를 주고 청소하는 일을 한국 젊은이들은 안 하려고 한다”며 “일손이 부족하던 터에 예멘 사람들이 와서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이 승마장에서 일하는 이브라힘(30·가명)은 “다행히 적당한 일자리를 빨리 찾은 편이다”고 말했다. 그는 “고향에 간절히 돌아가고 싶은 건 우리다. 전쟁은 모든 나라가 겪었거나 겪게 될 수 있는 일인 만큼 당분간은 계속 일할 수 있게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반면 예멘에서 인테리어업을 했다는 칼리드(29·가명)는 “한 번에 21시간 넘게 배를 탄 적도 있다. 일이 너무 힘들다”고 말했다. 어업 현장에선 근무 첫날 배멀미로 고생만 하다가 임금을 못 받고 그만둔 사례도 적지 않다. 취업 현장에서 생기는 업주, 다른 외국인 노동자들 사이의 갈등을 관리하는 업무도 출입국청 몫이다. 18일 교육에 참석한 예멘인들은 “배를 탔는데 월급을 안 준다” “자는 동안 몽골인에게 맞았다” 등의 하소연을 쏟아냈다.
 
직접 구직 활동에 나선 이들도 있었다. 유세프(28·가명)도 그중 한 명이다. 알리는 “5월 제주도에 들어온 이후 종이에 ‘일 구해요’라고 써서 일일이 음식점 문을 두드리고 다닌다”며 “‘한국 말을 못 한다’고 하면 곧바로 ‘(일자리) 없어, 없어’ 한다”고 말했다. 예멘에서 영문학을 공부했다는 그는 “제주는 섬이라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 내 주변의 99%는 서울·인천·부산 같은 대도시 공장에서 일하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강 과장과 통역관인 이상겸 반장은 토요일인 지난 18일엔 새벽 6시에 출근했다. 이날 애월항으로 들어오는 토종닭 100마리를 예멘인 60여 명이 머물고 있는 한 구호센터에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출입국청 공무원 출신의 한 사업가가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예멘인들을 위해 육지에서 후원해 준 것이다. 강 과장은 풍랑으로 배가 지연되는 사이 대한적십자 제주지사로 뛰어갔다. 구충제 등 구호물자를 담은 박스를 출입국청으로 실어왔다. 익명을 요청한 제주 출입국청의 한 직원은 “3개월이 넘도록 밤낮 없이 일했지만 끊임없이 새로운 일이 터진다. 체계적인 심사와 관리를 모두 해내기에는 턱 없이 부족한 인력”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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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보도팀=임장혁·박민제·이유정 기자 deep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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