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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념 “연말에도 경제 힘든데 … ‘잘 되고 있다’ 용비어천가만”

중앙선데이 2018.08.25 01:12 598호 6면 지면보기
진념 전 경제부총리는 ’현재의 문제를 과거의 잘못으로만 돌리지 말고 미래를 위해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지 집중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김경빈 기자]

진념 전 경제부총리는 ’현재의 문제를 과거의 잘못으로만 돌리지 말고 미래를 위해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지 집중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김경빈 기자]

한국 경제에 위기의 경종이 잇따라 울리고 있다. 금융위기 수준으로 쪼그라든 고용 지표에 대한 쇼크가 가시기도 전에 10년 만에 최악의 수준으로 벌어진 소득 양극화에 따른 빈부 격차의 악화는 충격을 주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성패는 이제 경제정책 운용에 달렸다는 진단까지 나오고 있다.
 

경제정책 운용
방향 틀렸으면 아니라고 말해야
대통령 주변 직언하는 사람 없어

시급한 과제
정부 내부 소통의 ‘화석화’ 심각
경제는 실용 … 현실 맞춰 유연해야

소득주도 성장
창업·고용 늘리는 혁신 없으면
‘소득 감소 주도 정책’으로 변질

경제 원로의 한 사람으로 꼽히는 진념(77) 전 경제부총리는 “작금의 경제 사정이 답답하다”며 23일 기자를 만나 현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쓴소리를 이어갔다.
 
소득 분배 지표가 10년 만에 최악의 수준으로 나타났다. 현 정부의 경제정책이 오히려 빈부 격차를 악화시킨 게 아닌가.
“(한숨을 쉬며) 현 상황이 무척이나 걱정스럽다. 저소득층의 소득이 줄어들었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정부는 이제 현실적인 처방을 고민해야 할 때다. 원인은 역시 일자리에서 비롯됐다. 제조업과 우리 경제의 허리인 40대의 일자리가 사라지면서 소득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일자리 창출을 최우선 목표로 내세우고 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현 정부가 일자리 정부를 표방하면서 일자리위원회와 일자리수석을 두고 54조원의 막대한 예산을 투입했지만 지난 1년4개월간 정책 성과가 얼마나 나타났나. 이제까지 그 많은 예산을 어디에다 썼는지 국민에게 솔직하고 상세하게 알리는 게 우선이다. 그래서 예산을 더 쓰자고 설득해야 국민이 납득하고 동의한다.”
 
청와대에선 정책 효과가 나타나려면 좀 더 기다려 달라고 하는데.
“연말까지 가도 경제 상황이 크게 개선되리라고 볼 순 없다. 조선·기계·자동차 업종에서의 구조조정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를 대체하는 일자리가 새로 창출되지 않는 것이 핵심이다. 가장 안정적이어야 할 제조업 부문에서 일자리와 일거리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여기에 도소매업 등 서비스업종과 영세 자영업자들의 사정까지 악화하고 있다.”
 
말 나온 김에 현재 경제 상황을 진단해 보자. 무엇이 문제인가.
“가히 위기다. 우리 경제의 버팀목인 반도체마저 호황을 누리기가 쉽지 않은 상황에 부닥쳤다. 기업들은 활력을 잃고, 신성장동력은 보이지 않고, 구조조정으로 일자리는 줄어만 가고, 청년들의 일자리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게 위기가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인가.”
 
정부가 이런 문제를 일부러 외면하지는 않을 게 아니냐. 다 잘 되라고 하는 정책일 텐데 왜 이런 결과가 나왔나.
“정책 하나를 펴더라도 제대로 해야 한다. 방향이 잘못됐다.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기업들을 지나치게 위축시키고 있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정부가 ‘재벌들 혼내주겠다’는 식으로 완장을 찬 듯 행동하고 있다. 경제에선 가장 나쁜 게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이다. 그런데도 기업 세무조사와 압수수색이 계속 이어지면서 산업계 전체의 불안감으로 이어지고 있다. (기업들이) 움츠리면 뛸 수 없지 않는가. 기업의 기 살리기가 우선이다.”
 
작금의 경제정책 운용을 보면서 가장 걱정스러운 점은.
“이제는 정부가 모든 것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을 접어야 한다. 국민 세금으로 돈을 왕창 풀어 해결하겠다는 생각도 위험하다. 정부가 더 이상 산타클로스는 아니지 않나. 모든 경제 정책의 출발은 ‘자조(自助·self-help)’에서 시작해야 한다. 도덕적 해이를 불러오는 퍼주기식 지원은 독약이다. 항상 정책의 효율성과 지속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정책을 펴나가야 한다. 그러면서 정부가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확실하게 구분해야 한다.”
 
정부가 하지 말아야 할 일은 어떤 것인가.
“개별 기업들을 불러다 놓고 투자와 고용 증대를 요청하며 이래라저래라 하는 모습은 영 아니지 않나. 정부는 더는 간섭하지 말고 기업들이 열심히 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만 해야 한다. 규제를 과감하게 풀어 일자리를 만들고 기업인들에게 이만큼만 하면 된다는 믿음을 주면서 이끌어 가는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한 때다.”
 
무엇부터 풀어나가야 할까.
“과감하게 규제 개혁을 해야 한다. 중국도 선 허용, 후 규제 방식으로 각종 규제를 풀어가고 있는데 우리만 감감무소식이다. 방탄소년단(BTS)이나 LPGA에서 우승하는 한국 프로골퍼들도 정부가 나섰더라면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다 아는 이야기인데도 쉽게 실행하지 못하고 있다.
“각계 고충을 들어주고 갈등을 조정하고 가야 할 방향을 잡아나가는 게 경제정책의 리더십이다. 과거 정부의 잘못만 탓하지 말고 이해 당사자끼리 머리를 맞대고 난상토론을 벌여서라도 공통 인수를 찾아내는 게 정부의 역할이다. 세계 경제의 흐름 속에서 본질을 제대로 봐야 한다. 경제 생태계를 구축하고 합리적인 경쟁과 보상체계를 만들어 나가는 게 바로 정부의 할 일이다.”
 
현 정부는 소득주도 성장을 주장한다.
“대학 시절 들었던 ‘경제학에서 냉철한 두뇌와 뜨거운 가슴으로 문제에 접근하는 게 제1의 덕목’이라는 앨프리드 마셜의 말을 지금까지 명심하고 있다. ‘인간 중심 경제’ ‘소득주도 성장’이라는 말 자체론 얼마나 좋은 뜻이냐. 담론과 수사만 내세울 게 아니라 이를 어떻게 실현하느냐를 놓고 냉철하게 고민하는 게 우선돼야 한다.”
 
현 정부 들어 주 52시간제, 최저임금 인상 등 새로운 정책이 이어졌다.
“이 모든 게 소득이 늘어나야만 감수할 수 있는 정책이다. 원칙은 존중하지만 속도 조절과 유연한 대응이 필요하다. 정책의 탄력성과 유연성을 버려선 안 된다. 주 52시간 근무만 해도 1953년 근로기준법 제정 때 규정됐던 내용이었다. 지금까지 시행하지 못했던 현실적인 이유가 있었다. 일정 기간 업종별·규모별 유예와 탄력 근로 시간제를 도입해야 한다.”
 
현 정부의 경제정책 운용이 너무 경직됐다는 말인가.
“경제는 살아 있는 생물이다. 이 정부의 정책만이 분배의 정의를 이루는 패러다임의 대전환이라고 주장해선 안 된다. 원칙만 내세워선 어렵다. 고용 문제만 해도 안정성과 유연성의 조화가 이뤄져야 하는데 현 정부에서 고용의 유연성 문제는 한 번도 논의된 적이 없지 않는가. 노동 존중의 사회가 아니라 노동조합 존중의 사회가 돼버리고 말았다.”
 
청와대에 포진한 운동권 출신들 때문에 ‘운동권 경제’라는 말까지 나오더라.
“경제는 실용이다. 이념적 좌표에 고정되지 않고 균형 감각을 키워나가는 게 중요하다. 실물 경제를 다루기 위해선 현실적인 어려움을 이상과 조화시켜야 한다. 경제정책을 실험 대상으로 여겨선 곤란하다.”
 
‘김앤장’ ‘장앤김’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경제부총리와 청와대 간 경제정책의 컨트롤타워 논란이 여전하다.
“(반문하며) ‘빛이 샐 틈이 없을 정도로 서로 협력하고 있다’는데 무슨 말을 더 하나. 과거 이야기를 하면 적폐라 몰아붙일지 모르겠지만 경제정책은 늘 대통령이 부총리와 정례적으로 만나 협의해 결정해왔다. 필요하면 서별관회의에서 부총리가 총대를 메고 관계 장관들을 모아 정하면 그게 바로 정책이 됐다. 지금은 사공이 너무 많다. 갖가지 외곽 기구에다 당까지 끼어들고 장관들도 제각각이다.”
 
정책 집행 부처엔 문제가 없나.
“(뜸을 들이다가) 다들 후배들인데 이래라저래라 하기가 그렇다. 하지만 공무원들이 적폐 청산이다 뭐다 해서 사기가 너무 떨어져 있고 소신껏 의견도 내지 못하고 있다. 경제단체나 정부출연 싱크탱크들도 찍힐까 봐 아무 소리도 못 내고 있다. 소통의 ‘화석화’가 심각한 수준이다. 대통령 주변에선 온통 ‘잘 되고 있습니다’는 식의 용비어천가만 나온다. ‘직’을 걸고 과감하게 ‘노’라고 직언하는 사람을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다. 방향이 틀렸으면 아니라고 말해야 한다. 제발 대통령 좀 잘 모셔라.”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 늙은이가 무슨 말을 하면 정치하려고 나선다고들 입방아를 찧기에 말하기가 싫다. (잠시 생각하더니) 소득주도 성장은 여태 가보지 않은 길이지만 창업과 일자리, 일거리를 늘리는 혁신성장이 뒷받침되지 않고는 사상누각이다. 무엇보다 새로운 소득이 생겨나야 한다. 일자리와 일거리가 줄어서 소득이 줄어들면 소득주도 성장은커녕 소득 감소 주도 정책이 돼버리고 만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홍병기 선임기자 klaatu@joongang.co.kr

진념 전 경제부총리 노태우·김영삼·김대중 정부를 거치면서 동력자원부·노동부·기획예산처·재정경제부 등 다양한 부처에서 여섯 차례나 장관을 맡아 ‘직업이 장관’이라 불렸던 정통 경제관료다. 1962년 행정고시(14회)에 최연소 합격해 경제기획원 사무관으로 공직을 시작한 그는 환란 이후 경제정책의 사령탑인 경제부총리를 맡아 경제 안정 정책을 펼치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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