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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윤의 시시각각] 부모의 도적질을 막아라

중앙선데이 2018.08.25 01:00 598호 34면 지면보기
김종윤 논설위원

김종윤 논설위원

1984년 1월 청와대. 전두환 대통령이 쏘아붙인 말이 울려 퍼졌다.
“당신은 미국에서 오래 살아서 잘 몰라. 한국에서 이런 거 하면 경제가 망해.”

국민연금 위기는 신뢰 무너진 탓
지급보장, 보험료 인상 결단해야


 
한국개발연구원(KDI) 안승철 원장과 서상목 부원장은 당황했다. 국민연금 도입 필요성을 제기하자 전 대통령의 반응이 차가웠기 때문이다. 당시는 선진국에서 복지국가 위기론이 퍼질 때다. 개발도상국 한국에서도 복지지출이 경제를 망친다는 시각이 팽배했다. 
 
이런 국면이 극적으로 바뀐 게 86년 4월이었다. 전 대통령과 정부 관계자는 영국·독일 등 유럽 4개국을 방문해 은퇴자들이 안정된 삶을 누리는 걸 접했다. 연금 덕이었다. 그해 12월 국민연금법이 제정된 배경이다. 그렇다고 문제가 해결된 건 아니었다. 얼마를 내고, 받아야 할지 난제였다. 서상목 박사의 증언.
 
소득 대체율을 높게 잡았다.
“40년 가입하면 연평균 소득의 70%를 지급하는 거로 짰다. 당시 공무원·군인연금의 소득 대체율과 맞췄다.”
 
내는 보험료가 너무 낮지 않았나.
“처음엔 평균 소득의 3%로 시작하고 5년마다 3%포인트씩 올려 소득의 15% 이상 내도록 했다. 9%가 된 98년까지는 스케줄대로 착착 진행됐다.”
 
처음엔 싸게 공급하고, 점차 가격을 정상화하겠다는 ‘염가 세일’ 전략이었다. 가입자는 무조건 이득을 봤다. 국민연금이 빠르게 정착한 이유다. 문제는 98년 이후다. 보험료가 동결됐다. 서상목 박사는 “두 자릿수는 안 된다는 정치 논리가 개입하면서 비틀거렸다”고 말했다.
 
국민연금 위기의 본질은 ‘무너진 신뢰’다. 받는 만큼 적정하게 보험료를 올리겠다는 약속이 깨진 순간 ‘국민연금=믿을 수 없는 연금’이라는 주홍글씨가 새겨졌다. 부모 세대는 이미 꽤 남는 연금 장사를 했다. 지금 구조로도 연금을 10년 받으면 그간 낸 보험료를 다 회수한다. 21년 수령하면 낸 돈보다 1.9배 더 받는다.
 
청년 세대는 다르다. 이들은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부모보다 가난해질 운명이다. 저출산·고령화 핵폭탄은 이미 터졌다. 연금을 받아야 할 윗세대는 넘치는데 보험료를 낼 아랫세대는 준다. 지금 제도를 그대로 두면 기금이 2057년 고갈된다는 추계는 그리 놀랍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청년이 국민연금을 불신하는 건 공포 마케팅에 놀아난 과잉반응이 아니다.
 
신뢰 회복의 열쇠는 세 가지다. 국가가 국민연금의 지급을 보장해야 한다. 국민연금법에는 ‘국가는 연금급여가 안정적·지속적으로 지급되도록 필요한 시책을 수립·시행해야 한다’고 돼 있다. 한 걸음 더 나가면 된다. 국가가 지급을 보장하면 연금 적자는 나랏빚이 된다. 국가채무가 늘면 국가 신인도가 떨어진다고 걱정한다. 이건 그동안 빚을 빚이 아니라고 가린 대가다. 연금을 지급하지 못할 정도면 나라는 망한 거다. 국민연금은 탄생 순간부터 나랏빚을 떠안는 숙명을 안았다.  
 
특수직역연금과 통합하겠다고 선언해야 한다. 공무원·군인·사학연금은 ‘귀족 연금’으로 불린다. 물론 가입 기간이 길고 보험료를 더 많이 낸다. 그런데도 혜택이 월등하다. 더구나 국가가 지급을 보장한다. 지난해 공무원 연금 적자 2조3000억원, 군인연금 적자 1조5000억원을 국민 세금으로 메웠다.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건 부모 세대의 양보다. 보험료를 더 내는 길뿐이다. 많은 혜택을 본 부모가 더 챙겨 가겠다는 건 자식의 부를 빼앗는 도적질과 같다. 연금보험료 9%는 신성불가침의 숫자가 아니다. 마의 9%를 깨야 한다. 내리사랑이 치사랑보다 못한 적은 없었다. 청년이 희망을 품지 못하는 사회, 미래는 없다.
 
김종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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