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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콘크리트 유토피아’

중앙선데이 2018.08.25 01:00 598호 35면 지면보기
승효상 건축가·이로재 대표·동아대 석좌교수

승효상 건축가·이로재 대표·동아대 석좌교수

뉴욕 현대미술관이 흥미로운 건축전시회를 개최하고 있는데 제목이 ‘콘크리트 유토피아’라 했다. 이 전시는 유고슬라비아가 1948년부터 1984년까지의 공산체제 시절 이상사회 건설을 꿈꾸며 콘크리트로 지었던 건축들을 소개한다. 교육과 건강·문화의 질적 혁신을 이루기 위한 새로운 정책을 ‘사회적 기준’이라 칭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지은 이 공공건축들은, 공산체제가 붕괴된 후 무려 7개 나라로 각기 독립된 지 30년이 지난 지금에도 각 지역의 공공 서비스를 위한 핵심적 시설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듯 건축은 오늘만이 아니라 내일의 삶을 지속하게 하며, 특히 공공건축은 그 사회공동체를 형성하는 중요한 기반이 된다.
 

동사무소·도로 포장·전신주 등
훌륭한 공공시설은 자긍심 줘
그러나 우리 공공건축은 ‘꼴불견’
지역밀착형 시설 투자 환영하지만
나쁜 발주시스템 바뀌지 않는 한
저질의 시설 확대하는 결과 낼 것

요즘 우리 사회의 이슈는 온통 경제다. 고용 쇼크, 최저임금의 폐해, 자영업자 몰락, 경기지수 하락…. 연일 온 매체가 이런 불편한 제하로 기사를 쏟아내고 이로 인해 지지율이 떨어진 정부는 대책 마련에 전전긍긍인데, 해결책이 그리 쉽게 나오는 것 같지도 않다. 그런데, 이럴 때마다 떠오르는 의문. 아마도 정부가 목표로 삼는 경제지수가 있을 텐데 그 수치를 달성하면 우리는 행복해질까?
 
돌이켜 보면 우리는 이런 경제지수적 삶에 너무도 익숙해 있다. 내 어릴 적,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 라는 노래를 귀에 못이 박일 정도로 들었고, 경제개발 몇 개년 계획은 일상의 언어요 구호였다. 그래서 불과 반세기가 지나지 않아 세계 최빈국 대열에서 경제 10대 강국이라고 하는 기적도 이루고, 국제통화기금(IMF)가 발표한 1인당 국내총생산(GDP)에서도 올해 한국은 세계 29위를 기록했으니 그 짧은 시간에 엄청나게 부자가 된 거다. 그런데, 그 지지리도 못살던 때보다 지금 우리는 행복한가? 유엔 산하 자문기구인 ‘지속가능발전 해법네트워크(SDSN)’라는 곳에서 매년 국가별 행복지수 순위를 매기는데 올해의 한국은 세계 57위다. 경제는 29위인데 행복은 57위. 이 불균형은 무엇 때문일까?
 
그 행복지수를 따지는 기준은 6개 항목이었다. 그 나라의 국내총생산, 국민의 기대수명, 사회적 지원, 선택의 자유, 부패에 대한 인식 그리고 사회의 관용. 이 중에서 돈에 관한 것은 국내총생산 하나일 뿐이며 나머지 기준들은 사회적 환경에 대한 것인데 건축에 관련된 사항이 적어도 세 가지다. 그러니 우리가 행복하지 못한 원인을 달리 말하면, 문화와 여가에 관련한 시설 부족과 천편일률적 도시풍경, 단지화된 공동체의 모습들 때문인 게다. 뿐만 아니라, 삶의 질에 대한 도시의 순위를 매기는 머셔컨설팅의  평가기준 10개 항목 중에서도 경제는 하나일 뿐이며 나머지는 주택이나 문화, 교육과 공공서비스 등이다. 우리의 서울은 도시경제 규모는 6위라는데 삶의 질은 올해도 76위에 머물렀다. 도시나 국가의 목표가 시민과 국민의 행복증진이라면 경제수치 달성은 우리가 목표로 삼아야 할 과제 중 10분의 1이나 6분의 1일뿐이란 말 아닌가?
 
얼마 전 여름휴가를 마친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한 청와대 회의에서 도서관, 체육·보육·문화 시설 등 지역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지역밀착형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를 과감하게 확대하라고 지시했다는 뉴스를 접했다. 건축이 등장한 게 반갑기도 하지만 ‘지역밀착형 건축’이라는 말에 더없이 기쁘다.  
 
따지고 보면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건축은 결코 기념비적이나 랜드마크 같은 큰 건축이 아니다. 나로 말하면 남산의 서울타워에는 여태 한번 밖에 가지 않았고 여의도의 63빌딩은 건너 동네의 일일 뿐이니, 이들 랜드마크는 내 일상과는 관련이 없다. 우리 삶이 깊이 영향받는 건축은 매일 지나다 만나는 동사무소나 파출소, 우체국, 어린이집, 학교 같은 동네시설이며 이들 모습이 훌륭하면 우리는 매일 기쁘다. 뿐만 아니라, 집을 나서면 곧 만나는 도로의 포장이나 맨홀 뚜껑, 전신주, 교통표지판, 가로등, 지하철 입구 등이 굿디자인이면 왠지 나는 문화도시에 사는 것 같아 자긍심이 높아진다.
 
그러나 이들 공공시설에 쏟아붓는 나라 재정이 한 해에도 무려 30조원이며 매년 6000개가 지어진다는데 이들의 꼴은 언제나 꼴불견이며, 최악의 건축을 선정하면 공공건축이 늘 선두에 선다. 그 이유는 두말할 것 없이 설계가 나쁜 까닭이고 이는 가격입찰제나 턴키 같은 나쁜 발주시스템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니 대통령이 말한 지역밀착형 시설에 대한 투자확대를 쌍수로 환영해야 하지만 이를 구현하는 시스템이 바뀌지 않는 한 저질의 시설만 확대하는 결과일 게 뻔해서 우리의 행복지수는 어쩌면 더 나빠질지도 모른다. 시스템을 바꿔야 우리도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이룰 수 있으며, 그러면 70년이 지나 우리의 행복도 어느 미술관에서 전시될 수 있을 게다.
 
승효상 건축가·이로재 대표·동아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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