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종전선언 딜레마, 한국 무장해제 노림수

중앙일보 2018.08.24 00:02 종합 26면 지면보기
종전선언 시기와 조건
종전선언을 두고 북한은 조바심을 내고 한국은 서두르며 미국은 시기상조라 한다. 북한 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는 어제 미국에 종전선언을 촉구했다. 북한은 지난달 30일 노동신문에서 종전선언에 반대하는 한국 보수세력을 비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12일 싱가포르 매체 스트레이츠타임스와 인터뷰에서 “올해 종전선언이 목표”라고 말했다. 그러나 해리 해리스 주한 미 대사는 지난 13일 “종전선언 논의는 시기상조”라며 “비핵화 조치가 선행돼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북한은 종전선언에 왜 매달리는가.  

문 대통령 "올해 종전선언 목표”
해리스 미 대사 "북 비핵화 선행”

전문가, ‘국제법적인 준평화협정’
북핵 등 전쟁 요인 제거돼야 선언

주한미군 철수와 유엔사 해체 촉진
NLL 소멸로 서해안 안보 불안 불러

 
한반도 종전선언은 지난 4.27 판문점 정상회담에서 남북이 합의한 사안이다. 문 대통령은 인터뷰에서 “종전선언은 (남북) 상호 적대관계를 끝내고 평화적으로 공존하는 관계로 나아가겠다는 정치적 선언”이라며 “평화 정착 과정을 견인할 이정표”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말에 일리가 없지는 않다. 그러나 전제조건이 있다. 4.27 정상회담은 남북관계 정상화를 목표로 하지만 그 전에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 추진됐던 일이다. 그런데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약속과 달리 비핵화에 한 발짝도 들이지 않고 있다. 그래서 종전선언이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종전선언은 노무현 대통령 때에도 추진됐다. 2006년 11월 하노이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부시 미 대통령은 북한이 핵 개발을 포기할 경우 ‘한국전쟁의 종료선언’을 제시했다. 이 제안은 노 정부에서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의 단계적 추진이라는 구상으로 발전했다. 정상들이 만나 종전선언을 발표해 북핵 폐기의 추동력을 확보한 뒤, 북핵이 완전히 폐기될 시기에 항구적인 평화협정을 체결한다는 2단계 프로세스다.(조성렬의 ‘한반도 평화체계 구축에 관한 단계적 접근’) 이런 노 정부의 구상은 일 년 뒤 2차 남북 정상회담에서 발표된 ‘10.4 선언’에서 “종전선언 추진에 협력한다”는 형태로 정리됐다. 그러나 종전선언 추진은 북한의 2차 핵실험(2009.5)과 함께 허공에 날아갔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문 정부 들어 다시 추진 중인 종전선언의 모습은 10년 전의 데자뷔다. 노 정부 당시나 지금이나 종전선언과 북핵을 둘러싼 남북과 미국의 입장이 거의 같은 구조다. 미국은 ‘북한 비핵화→종전선언’ 입장이지만, 우리 정부는 ‘종전선언→북한 비핵화→평화협정’이다. 그래서 종전선언 시점과 조건을 두고 여전히 남북과 미국의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남북 정부는 종전선언을 재촉하지만 미국은 비핵화가 전제조건이다.
 
전문가들도 종전선언을 문 대통령과 달리 보고 있다. 종전선언은 문 대통령 해석처럼 단순한 정치적 선언이 아니라 준평화협정이어서 평화협정 효과를 낸다는 것이다. 서울대 로스쿨 이근관 교수는 “(종전선언이) 지구 상 최후의 냉전지역으로 일컬어지는 한반도의 전쟁 상태를 종료시킬 정치적·외교적·군사적 의미를 갖는다”며 “전쟁의 종료, 평화조약의 체결 등 국제법상의 중요한 범주”라고 주장했다.(‘한반도 종전선언과 평화체제 수립의 국제법적 함의’) 이 교수는 리처드 백스트 전 하버드대 교수 등 저명한 국제법 학자들과 미 법원의 해석 등을 들었다. 정전협정이 이미 한국전쟁을 오랜 세월 동안 종료시켜 전쟁 재발을 방지해왔고, 강화조약처럼 포로 교환까지 이룬 준평화조약이라는 것이다.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조성렬 박사도 종전선언은 준평화협정으로 북핵 동결을 지나 불능화 과정에서 마지막 핵 폐기를 촉진하는 데 의미가 있다고 했다. 이 말은 종전선언은 적어도 마지막 핵 폐기 단계에서나 가능하다는 의미다. 따라서 북 비핵화가 전혀 이행되지 않고 있는 현시점은 종전선언을 선포할 시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독일 무관 출신인 김동명 박사는 평화협정이 체결되려면 한반도에 전쟁이 재발할 수 있는 위험이 없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기 위해선 남북한 사이에 전쟁의 근원인 핵이 종전선언이나 평화협정 이전에 제거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정은 반대다. 미 정보당국을 인용한 외신보도에 따르면 북한은 현재 60여 개의 핵탄두를 갖고 있고 더 생산 중이다. 전쟁 요인이 제거되기는커녕 더 커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종전선언을 서두르기에 앞서 북한에 비핵화를 먼저 촉구할 필요가 있다.
 
종전선언을 통한 북한의 노림수와 그로 인한 한·미연합체제 와해도 우려된다. 첫째가 주한미군 철수와 유엔사 해체다. 이 두 가지는 북한이 1975년 유엔총회에서 주장한 이후 단골 메뉴로 내놓고 있다. 북한은 종전선언과 함께 평화협정 논의가 본격화되면 주한미군과 유엔사 문제를 또다시 들고나온다는 게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물론 주한미군은 한미상호방위조약에 근거한 한미동맹 차원에서 주둔하고 있어 종전선언이나 평화협정과는 무관하다. 유엔사 해체도 미국의 소관이라는 게 갈리 전 유엔사무총장의 북한에 대한 공식 답변이다. 문제는 그렇더라도 종전선언을 하면 주한미군과 유엔사의 존속에 영향을 준다는 점이다. 여기에다 한국 정부가 모호한 태도를 취하고 반미여론까지 생기면 한미동맹은 직접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있다.
 
둘째로 종전선언을 하면 한·미 연합훈련이 중단된다. 남·북·미가 전쟁 종료를 선언한 마당에 북한의 도발에 대비한 연합훈련을 할 명분은 없어진다. 주한미군이 한국군과 훈련을 하지 않으면 주둔 자체가 어렵게 된다. 훈련하지 않는 군대는 존재 이유가 없어서다. 셋째는 서해 북방한계선(NLL)의 소멸이다. NLL은 한국전쟁 직후 클라크 유엔군사령관이 남북 간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설정했다. 따라서 종전선언을 하면 NLL은 더는 유효하지 않는다는 게 전 외교부 당국자의 해석이다. 문제는 NLL이 없어지면 남북 사이에는 영해(12해리)만 인정된다. 영해 바깥 해상인 공해에서 북한의 출입이 자유로워진다. 북한 해군이 백령도와 연평도 뒤를 돌아 인천 앞바다까지 접근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렇게 되면 서해 평화수역은 쉽게 조성할 수 있지만, 북한은 언제든 기습공격을 할 수 있다. 남북간 해상 충돌 가능성이 더 커진다는 역설이 생긴다.
 
넷째는 우리 군사작전계획의 약화다. 종전이 된 이상 북한 도발은 없을 것이라는 가정 아래 작전계획의 전반적 수정이 불가피하다. 따라서 작전계획은 수세적으로 돌아갈 게 뻔하다. 작계가 수세적으로 바뀌면 대비태세도 낮아지고 우리 군은 느슨해질 가능성이 있다. 벌써 올해 국방백서에 ‘북한군=주적’ 개념을 삭제키로 했고, 대량응징보복전략에서 ‘참수’ 용어도 사용하지 않고 있다. 이와 함께 우리 군의 공격적이고 위력이 큰 무기체계 확보는 제한될 것이다. 하지만 북한의 핵무기는 계속 늘어나 2020년엔 최대 140~150개가 될 것이라는 계산이 지금 현실이다. 그런 만큼 북한의 비핵화로 도발 요인을 완전히 제거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종전선언은 우리 스스로 무장을 해제하는 꼴이 될 수밖에 없다.
 
김민석 군사안보연구소장 겸 논설위원 
먼지알지 런칭 이벤트
공유하기
광고 닫기

미세먼지 심한 날엔? 먼지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