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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옥탑방 시장실의 가성비

중앙일보 2018.08.23 00:33 종합 30면 지면보기
이경희 디지털콘텐트랩 차장

이경희 디지털콘텐트랩 차장

박원순 서울시장이 ‘시민과 동고동락’ 강북구 삼양동 옥탑방 한 달 살이를 마쳤다. 그가 옥탑방에서 시청사로 출퇴근하는 동안 서울시 홈페이지에서 관련 결재 문서를 틈틈이 들여다봤다. 옥탑방의 가성비는 나쁘지 않았다. 월세 200만원은 바가지를 쓴 게 틀림없지만 숙소 열쇠 제작, 방문 손잡이 수리, 그늘막 구매를 서울시 비용으로 한 것 외에 살림살이 관련 문서는 딱히 눈에 띄지 않았다.
 
시청 살림을 담당하는 총무과를 비롯해 여러 부서 직원들도 옥탑방 관련 업무추진비를 시청과 삼양동 인근 식당에서 썼다. 7월 한 달치만 살펴보니 연인원 200여 명, 300만 원가량이다. 하지만 이건 옥탑방을 핑계 삼지 않았더라도 썼을 예산이다. 삼양동 노상주차장을 발굴하라, 소방도로 미확보 지역 화재대책을 세우라는 등의 시장 지시사항도 공개돼 있었다.
 
오히려 한 달 살이 끝에 위의 자잘한 문서에 비해 거창해 보이는 1조원 강북 투자계획이 나온 게 어리둥절했다. 우이~신설 연장선 등 교통 인프라를 강북지역에 우선 투자하고, 빈집을 사들여 청년과 신혼부부에게 우선 공급한다는 등의 청사진이다. 한 달 만에 급조할 내용은 아니었다.  
 
가령 서울 국공립어린이집 간판 교체 방안 관련 결재 문서에는 ‘강북구 동고동락’과 관련해 시장이 지난 5월과 7월에 지시한 사항이라고 적혀 있었다. 박 시장은 이렇게 미리 준비해 둔 계획을 생생하고 임팩트 있게 알리려고 옥탑방을 택한 걸까.  
 
삼양동 동네 쉼터 조성이나 175세대 도시가스 신규 공급 같은 디테일한 환경 개선안은 옥탑방 현장에서 나왔을 듯하다. 하지만 서울시 행정동이 424개나 되는데 시장이 한 달씩 살아야 주차난도, 도시가스 문제도 해결된다면 그게 더 심각한 일 아닌가. 겨우 한 달 살아본 시장 눈엔 불편함이 보이는데, 구청·동사무소 직원과 지방의원은 매일 보면서도 눈감았나.
 
현장으로 향하는 박 시장의 진심은 응원하고 싶다. 하지만 “조선 시대 임금도 변복하고 시중을 돌아다녔다”며 시장을 임금에 빗댄 진성준 정무부시장의 발언, 직원이 아침으로 샌드위치를 사 날랐다는 일화나 책 읽는 ‘지아비’ 옆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부채질해 주는 아내의 사진을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내보내는 홍보 감수성은 안타깝다. 한 달 살이 발표 자료를 박 시장 화보처럼 만든 것도 과했다. 동네 구청 소식지 페이지마다 구청장 사진이 나와 세금으로 선거 공보물을 만드나 싶어 넌더리 났는데, 2018년의 서울특별시가 그 수준이란 말인가.
 
이경희 디지털콘텐트랩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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