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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江南人流]버려진 물류창고 … 쉴 곳 있으니 사람들이 찾아왔다

중앙일보 2018.08.23 00:01 강남통신 4면 지면보기
공간이 좋으면 아무리 외진 곳이라도 또 굳이 알리지 않아도 사람이 몰리는 법이다. 최근 경기도 용인시 기흥에 생긴 라이프스타일 공간 '동춘175' 역시 그런 공간이다. 지난 7월 문을 연 이곳은 대중교통으로는 접근하기 어려울 만큼 외진 곳에 있지만 연일 여성 고객이 몰려들어 북새통이다. 오픈 한 달 만에 인스타그램 게시물만 5000개가 넘었다. 대체 어떤 곳이길래. 동춘175를 만든 박이라 세정과미래 대표(세정그룹 부사장)와 이향은 교수(성신여대), 손지민 마켓움 대표를 직접 만나봤다. 
글=윤경희 기자 annie@joongang.co.kr 사진=최정동 기자 
7월 초 오픈한 경기도 용인의 라이프스타일 공간 '동춘 175'를 만든 사람들. 왼쪽부터 트렌드 분석가 이향은 성신여대 교수, 세정그룹 박이라 부사장, 마켓 기획자 손지민 대표. 최정동 기자

7월 초 오픈한 경기도 용인의 라이프스타일 공간 '동춘 175'를 만든 사람들. 왼쪽부터 트렌드 분석가 이향은 성신여대 교수, 세정그룹 박이라 부사장, 마켓 기획자 손지민 대표. 최정동 기자

‘동춘175’에서 가장 넓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라이프스타일 편집 브랜드 ‘동춘상회’의 모습. ‘모던 코리안’을 컨셉트로 감각적인 국산 먹거리와 그릇, 가방, 공예품들을 소개하는 공간이다.

‘동춘175’에서 가장 넓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라이프스타일 편집 브랜드 ‘동춘상회’의 모습. ‘모던 코리안’을 컨셉트로 감각적인 국산 먹거리와 그릇, 가방, 공예품들을 소개하는 공간이다.

 
-어떻게 동춘175를 만들게 됐나.
박이라(이하 박)  몇 해 전부터 시장조사차 일본에 갈 때마다 사람들이 음식, 라이프스타일 상품, 의류가 함께 결합해 있는 감성 좋은 장소를 찾는 걸 봤다. 반대로 일본 백화점은 점점 손님이 줄었다. 우리도 그런 매장을 시도해봐야겠다는 결심을 했고, 라이프스타일 분야에 대한 비전도 가졌다.  
 
동춘175는 인디안·올리비아로렌·디디에두보 등의 브랜드를 전개하는 패션기업 '세정'이 만든 라이프스타일 컨셉트 공간이다. 물건을 파는 공간이지만 쇼핑보다는 '여유'와 '쉼'을 강조한다. 원래 1974년부터 운영된 세정의 1호 물류센터 자리였는데 최근 4년간은 텅 빈 창고에 행거를 가져다 놓고 철 지난 상품을 파는 창고형 아웃렛으로 사용했다. 박 대표는 아버지(세정그룹 박순호 회장)와 회사의 역사가 녹아있는 이곳을 새롭게 만들길 원했다. 의류 제조 기업의 DNA는 지키되 라이프스타일을 접목시켜 30~40대 여성의 마음을 사로잡는 감도 높은 공간으로 변화시키겠다는 꿈을 꿨다. 이 꿈은 이향은 교수와 손지민 대표를 만나 현실이 됐다. 
 
-세 사람은 어떻게 만났나.  
이향은(이하 이) 2016년 세정에 소비 트렌드 강의를 나갔다가 박 대표를 처음 만났다. 강의 후 새로운 유통업의 변화,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세정의 비전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박 대표의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최신 트렌드를 더한 '모던 코리안 라이프스타일'이란 구체적인 방향을 만들게 됐다. 공간은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온 안지용 건축가의 '매니페스토' 팀이 맡았고, 라이프스타일 상품 구성을 위해 손 대표가 합류했다.
박  손 대표의 ‘마켓움’을 본 순간 속으로 '심봤다'를 외쳤다. 마켓의 감성이 너무 좋더라. 손 대표가 라이프스타일 파트를 맡아주기만 하면 성공할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동춘175 내 1층에 있는 오래된 환편기(천을 짜는 기계) 앞에서 박이라 대표가 포즈를 취했다. 환편기는 1990년대 중반부터 부산 서창 공장에서 사용하던 것을 동춘175로 옮겨왔다.

동춘175 내 1층에 있는 오래된 환편기(천을 짜는 기계) 앞에서 박이라 대표가 포즈를 취했다. 환편기는 1990년대 중반부터 부산 서창 공장에서 사용하던 것을 동춘175로 옮겨왔다.

-마켓움은 자유롭고 독특한 마켓으로 유명한데, 기업과 함께 하길 결정한 이유는.
손지민(이하 손)  당시 많은 기업에서 러브콜이 왔지만 다 거절했다. 한데 세정은 좀 달랐다. 일단 박순호 회장님은 부산의 전설이다. 작은 시장 상점으로 시작해 패션 기업을 일군 스토리를 나를 포함한 부산 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런 세정에서 전에 없던 라이프스타일 공간을 만들면서 한국산 브랜드·제품과 '상생' 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함께 하자니 마음이 끌렸다. 상생은 마켓움을 있게 만든 내 철학이자 고집이다. 
 
-이름도 세정의 역사와 관련이 있다.
  아버지가 부산 중앙시장에 처음 열었던 가게 이름이 '동춘상회'다. '동쪽에서 불어오는 희망(봄 소식)'이란 의미로 직접 지은 이름이다. 
  박 대표가 '뚝심 있다'고 느낀 적이 여러 번 있었는데, 이름이 그 중 하나다. 동춘이란 이름이 복고를 좋아하는 요즘 감성에는 잘 맞지만, 세련된 느낌은 적어 모두 반신반의했다. 하지만 박 대표가 '걱정마라. 그대로 가도 된다'고 했다. 경영자가 방향을 명확하게 잡아주니 힘이 났고 모든 게 쉽게 진행됐다. 동춘상회는 이 공간의 중심이 되는 라이프스타일 편집 브랜드 이름으로 사용했다. 단, 원래 이름의 '장사 상(商)'자를 '서로 상(相)'자로 바꿔 상생의 의미를 강조했다. 공간에는 '동춘'만 따고 뒤에 지번 175를 붙였다.   
 
부지 1만2853㎡(3888평), 연면적 9,256㎡(2800평)의 넓은 공간엔 여자들이 좋아할 만한 것으로 가득하다. 그릇·가방·인테리어 소품 등 시선을 잡아끄는 물건들은 물론 커피·빵·샐러드 등 먹거리에 옷을 싸게 살 수 있는 패션 아웃렛, 아이가 뛰어놀 수 있는 놀이 공간까지 구비돼 있다. 물건을 사지 않아도 구석구석 마련된 소파에 앉아 천정까지 쌓여있는 책 중 하나를 골라 읽으며 쉬어도 된다. 
동춘175에서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한 라이프스타일 편집숍 '동춘상회'. 여유, 쉼이라고 쓰여있는 현수막이 이 공간의 컨셉트를 잘 말해주고 있다.

동춘175에서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한 라이프스타일 편집숍 '동춘상회'. 여유, 쉼이라고 쓰여있는 현수막이 이 공간의 컨셉트를 잘 말해주고 있다.

1층 안쪽에 자리한 카페 공간. 동춘상회와 의류 공간의 중간 지점으로 평일 점심과 주말엔 앉을 자리를 찾을 수 없을 만큼 사람들이 가득 찬다.

1층 안쪽에 자리한 카페 공간. 동춘상회와 의류 공간의 중간 지점으로 평일 점심과 주말엔 앉을 자리를 찾을 수 없을 만큼 사람들이 가득 찬다.

동춘상희 옆쪽에 마련된 계단형 휴식공간과 책들.

동춘상희 옆쪽에 마련된 계단형 휴식공간과 책들.

여기엔 숨겨진 배경이 있다. 박 대표와 이 교수는 40세 동갑내기, 손 대표는 39세로 비슷한 나잇대다. 그들 스스로가 타깃 고객으로 삼은 3040세대이다 보니 무엇이 필요하고 또 있어야 하는지를 잘 알았다. 그들의 의기투합에 쓸모를 잃었던 물류창고는 평일 하루 5000명, 주말 1만명 이상의 손님이 찾는 감각적인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쇼핑과 상관없는 공간이 많다.
 사람이 많이 찾는 공간의 공통점이 공급자의 욕심을 줄인 공간, 고객이 쉴 수 있는 여유가 많은 공간이더라. 소비자 중심으로 시각을 바꿔 쇼핑보다는 보고 먹고 즐길 수 있는 공간을 키웠다. 그러면 결국 매출로 이어진다는 확신도 있었다. 
 
-실제로 매출이 많이 올랐나. 
박 창고형 아웃렛으로 운영할 땐 30억원 정도 매출이 나던 공간이었는데 올해 동춘175의 목표는 150억원이다. 지금 추세로 봐선 무난하게 달성할 것 같다. 3층에 배치한 아울렛만 해도 매출이 2배 늘었다. 
동춘상회의 모습. 공간 한 가운데 모던하게 재해석한 한옥 모형을 들여놔 동춘상회가 취급하는 한국적인 물건과 음식의 분위기를 더했다.

동춘상회의 모습. 공간 한 가운데 모던하게 재해석한 한옥 모형을 들여놔 동춘상회가 취급하는 한국적인 물건과 음식의 분위기를 더했다.

일단 맛을 보란 의미로 예쁘게 소포장한 '용인 백옥쌀'과 '부엉이곳간 간장'.

일단 맛을 보란 의미로 예쁘게 소포장한 '용인 백옥쌀'과 '부엉이곳간 간장'.

동춘상회에서만 볼 수 있는 도자기 브랜드 '구김'의 그릇.

동춘상회에서만 볼 수 있는 도자기 브랜드 '구김'의 그릇.

 
부산을 기반으로 한 유명 마켓 '마켓움'의 손지민 대표.

부산을 기반으로 한 유명 마켓 '마켓움'의 손지민 대표.

-라이프스타일 파트인 ‘동춘상회’가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했다. 
 원래는 카페 자리였는데 내가 바꾸자고 했다. 사람이 모이는 곳은 동선이 가장 중요하다. 이곳에 온 사람이라면 물건은 안 사도 커피는 꼭 마신다. 때문에 의류 공간과 동춘상회 중간에 카페를 배치하면 양쪽 물건을 다 볼 수 있는 동선이 생겨 시너지가 난다. 마켓을 하며 터득한 노하우다.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에 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우리 타깃 고객층인 '3040세대 엄마'와는 딱 맞는 위치다. 실제로 조사를 해보니 30~40대 가구 비율이 가장 많은 도시가 마침 물류창고가 있는 용인이더라.  
 1호 물류창고인 기흥 창고를 재생하는 게 중요했다. 한국에서 50년간 의류업을 지속한 기업이 재생건축을 통해 헤리티지를 끄집어 내 세상에 보여줬다는 데 의미가 있다.
 
트렌드 분석가 이향은 성신여대 교수.

트렌드 분석가 이향은 성신여대 교수.

-동춘175가 성공한 비결은.

 기획 단계부터 경영자와 트렌드 분석팀, MD팀, 공간 전문가가 함께 시작했다. 실제 고객이 될 3040 여성 대상으로 리서치를 꼼꼼하게 진행하며 뭐를, 어떻게, 왜 해야 하나를 고민하고 컨셉트를 잡는데 6개월이나 공을 들였다.  
 다른 곳에서 쉽게 볼 수 없는 특화된 제품 구성, 그것도 한국산 제품이 어필했다고 본다. 동춘상회는 한국산 제품만 취급하는데 이게 참 어려운 일이다. 이걸 소비자들도 알아봐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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