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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낭만주먹 낭만인생 43. 형무소 생활 <상>

중앙일보 2006.05.11 20:57 종합 30면 지면보기
간첩죄로 수감되기 직전 어머니와 함께 한 필자.
간첩죄로 기관원에게 끌려간 뒤 무혐의로 풀려나기까지 나는 꼬박 6개월 동안 형무소 신세를 졌다. 잡범도 못되는 내가 사상범으로 둔갑돼 고초를 겪었지만, 사실고문은 너무도 고통스러웠다. 처음에는 간첩죄를 허위로라도 자백하려 했을 정도였다.


소설가 이호철은 검사에게 호통
이재오는 맘대로 복도 들락거려

범어사 중 노릇 때 고시생 신분으로 만났던 문호철 검사의 능글거리는 자백 강요도 만만치 않았다. 그때마다 힘이 됐던 것은 아내 뱃속의 아이였다. 얼굴도 못 본 아빠인데, 그 아이가 아빠를 김일성과 무전교신을 하는 간첩이라고 믿게 만들 수는 없었다. 굳세게 버텼다.



감방 동기들의 응원도 힘이 됐다. 독방 생활을 주로 했지만, '서대문호텔'로 불렸던 교도소 안에는 백기완.이호철.임헌영을 포함해 아는 얼굴들이 수두룩했다. 내 방은 3사하 1호실, 즉 형무소 내 세 번째 동(棟)의 1층이었는데, 이호철은 내 방의 바로 위였고 임헌영은 옆방이었다.



"야, 기완아! 나 배추야."



"배추 너도 왔구나. 건강이 최고야. 기 죽지마 임마!"



독방시절에는 변기 바로 위에 작은 창이 있었다. 종일 창 밖을 내다보는 게 습관이 됐는데, 저쪽에서 백기완의 모습이 어른거렸다. 장준하와 함께 개헌 논의를 가로막는 긴급조치 1호 위반 명목으로 끌려온 것이다. 2상 1호(건너편 2동 1호실)에 있던 그가 검사의 취조를 받으러 복도에서 마개비(간수)의 손에 이끌려 복도를 오갈 때 한두 마디 주고 받으며 힘을 얻곤 했다.



마개비는 우리끼리의 은어였다. 울분이 쌓였던 우리들이 '망할 녀석''개자식''빌어먹을 녀석'의 앞 글자를 따서 만든 게 마개비인데, 지금도 그런 말을 쓰는지는 모르겠다. 어쨌거나 지금도 기억에 선한 것이 소설가 이호철의 당당한 모습이었다.



수염을 깎지 않아 임꺽정처럼 변해버린 그는 걸음걸이부터 장군만큼이나 당당했다. 검사에게 호통까지 쳤으니 그건 배짱과 신념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겉으로는 안 그런 척하면서도 알고 보면 속으로는 벌벌 떠는 내 꼴이 부끄러웠을 정도다. 역시 나는 잡범이자 소인배에 불과할까? 그런 생각을 그때 했다.



이호철.임헌영은 '문인지식인간첩단사건'으로 끌려왔다. 재일동포 노동당원에게 포섭돼 대중선동을 지령받았다는 게 수사기관이 발표한 거창한 혐의였다. 하지만 재야의 광범위한 유신헌법 개헌 논의에 재갈을 물리려는 조작 사건임은 세상이 다 알았다.



독방에서 벗어난 뒤 감방 동기들을 두루 사귀었다. 당시 대학생이던 유홍준(문화재청장).이재오(한나라당 원내대표)씨 등과는 이후 30년 넘은 지금까지 친분을 쌓고 있다. 특히 성격 좋은 이재오의 활달함은 인상적이었다. 기결수도 아닌 신분에 복도를 무상으로 출입해 부러움을 샀다. 그건 대단한 특권이었다.



"야, 어떻게 복도를 마구 다니냐?"



"이거 아무나 하는 거 아닙니다. 형님들, 힘내세요."



형이 확정된 기결수들 중에 철창 밖에서 간수들을 돕는 이들은 간혹 봤지만, 그는 그것도 아니었으니 대단한 수완이었다. 나중에 그를 통해 시인 김지하가 교도소에 들어왔다는 소식도 전해 들었다.



배추 방동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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