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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와 친했지만 둘은 거리뒀다… 文·김병준 20년 애증

중앙일보 2018.08.22 11:00
 참여정부 좌·우 노선 대표하는 실세였지만 깊은 교감 없어 경제 정책 놓고선 충돌, 정부가 노선 수정하면 협치(協治) 길 열릴 수도
 

노무현과 가장 가까운 사람 (對) 노무현을 가장 잘 아는 사람

비록 불발에 그쳤지만 여야 영수회담이 성사됐더라면 문재인 대통령과 김병준 자유한국당 혁신비대위원장이 청와대에서 얼굴을 맞댔을 것이다. 지금은 일국의 대통령과 야당의 비대위원장으로 자리를 바꿔 앉은 두 사람은 한때(참여정부)는 청와대에서 같은 주군(노무현 전 대통령)을 모셨다. 서로의 속살을 익히 아는 이들이기에 더 조심스럽고 더 의식하는지도 모른다.
 
1. 8 월 13일 대한민국 건국 70주년 기념 토론회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는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대위원장. / 2. 8월 10일 청와대에서 열린 헌법기관장 초청 오찬에서 인사말을 하는 문재인 대통령. / 사진:연합뉴스

1. 8 월 13일 대한민국 건국 70주년 기념 토론회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는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대위원장. / 2. 8월 10일 청와대에서 열린 헌법기관장 초청 오찬에서 인사말을 하는 문재인 대통령. / 사진:연합뉴스

 
"그건 영감이 하세요!”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관계자 중에는 노무현 대통령의 이 한마디에 깜짝 놀란 경우도 있다. 노 대통령이 아랫사람인 문재인 민정수석에게 이같이 ‘영감’이라는 호칭을 불쑥 붙였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참모인 민정수석에게 ‘영감’이라는 표현을 쓰게 되면 주변에서는 불편해 하게 마련이다. 이를 의식한 듯 노 대통령은 “검사를 높여 부르는 그런 ‘영감’이 아니라 아주 오래전부터 문 수석 별명이 ‘영감’이었다”고 설명을 붙였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그 자리에서 이 말을 들었던 참여정부 인사는 문 수석이 부산 시절부터 점잖고 신중하다고 해서 붙여진 애칭이 ‘영감’이란 걸 그때에서야 알게 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노 대통령과 인간적으로 가깝기는 문재인 수석을 따를 사람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당시를 돌이켰다.
 
이 인사는 문재인 수석(이후 비서실장)과 함께 노 대통령과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 김병준 당시 청와대 정책실장을 꼽기도 했다. 김병준 실장을 노무현 대통령과 ‘정책과 노선’을 함께한 사람이라고 불렀다. 그러면서 “내가 경험한 바로는 비중으로 치자면 김병준 실장이 위였고, 인간적으로 가까운 곳은 문 수석”이라고 총평했다.
 
이와 관련해 임동욱 대통령학연구소장(한국교통대 교수)은 “많은 이들이 이광재, 안희정을 노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생각하지만 현실 정치에서는 정책은 김병준, 정무는 문재인이 도맡아 보좌했다”고 언급했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보수정권이 들어선 뒤로도 고난을 함께 겪었다. 문 대통령은 자신의 저서 [문재인의 운명]에서 정치보복의 시작이 ‘참여정부 사람들에 대한 치졸한 뒷조사’에서부터 시작됐다고 규정했다. “이해찬 전 총리, 한명숙 전 총리에 대한 뒷조사가 이뤄지고 있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이병완 전 비서실장과 김병준 전 교육부총리는 아예 주변 인물들을 대놓고 잡아들이며 약점을 캐고 있다는 얘기도 속속 들려왔다.”
 
“우리는 서로 언쟁하거나 다툰 적이 한 번도 없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신임 김병준 정책실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신임 김병준 정책실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한배를 탄 인연으로 고락을 같이했던 ‘노무현의 남자’ 두 사람이 지금은 서로 다른 진영에서 맞서 있는 형국이다. 김병준 전 정책실장은 7월 17일 자유한국당의 혁신비상대책위원장에 취임해 문재인 대통령이 이끄는 정부·여당을 향해 연일 견제구를 날린다. 문 대통령이 국가의 수반이자 여권의 무게중심이라면 김병준 비대위원장은 제1 야당의 ‘얼굴’로 등장한 셈이다.
 
참여정부 5년 동안 거의 모든 기간 동안 노 전 대통령을 그림자 보좌했던 두 사람이지만 서로가 막역하거나 친밀한 관계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김병준 위원장은 대통령 자문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장, 청와대 정책실장,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장, 정책특보 등 참여정부 요직을 섭렵했다. 그는 이 시절 문 대통령과의 인연에 대해 “우리는 서로 언쟁하거나 다툰 적이 한 번도 없다”면서 “그렇다고 맨날 같이 밥 먹고 어울려 다닌 사이도 아니다”라고 월간중앙에 소개했다. 두 사람이 약속을 정해 밥을 먹은 건 한두 번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는 최근 사석에서 “문 대통령과 깊이 있게 얘기해 본 적이 거의 없어 솔직히 문 대통령이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알지 못한다”는 취지의 말도 했다고 한다. 밖에서 보는 것과 달리 두 사람은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다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사실 두 사람은 생활공간이 달랐고 활동 반경도 엇갈렸다. 김 위원장은 1993년 원외에 있던 노무현 민주당 최고위원이 만든 지방자치실무연구소 소장을 맡아 본격적인 호흡을 맞추기 시작한다. 노무현재단에서 펴낸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서전 [운명이다](2010년 4월)는 이때를 일러 “김병준 교수는 내가 정치를 하는 동안 꾸준히 정책 자문을 해준 유일한 대학교수였다”며 노 전 대통령은 고마워했다. 문 대통령은 1982년 사법연수원을 차석으로 수료했음에도 유신 반대시위 전력 때문에 판사 임용에 탈락한 뒤 부산에서 변호사로 일하던 노 전 대통령과 운명적으로 만났다. 그 뒤로 줄곧 문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 인생의 동반자로 함께한다.
 
두 사람의 생활공간은 이렇듯 서울과 부산으로 나뉘었다. 서로 같은 공간에서 일한 시점은 참여정부 출범에 즈음해 문 대통령이 상경한 이후라고 봐야 한다고 참여정부 청와대 출입기자로 일했던 차재원 부산가톨릭대 교수는 말한다. 차 교수는 “노무현 정권이 출범하기 전까지는 두 사람이 서로 만날 이유가 없었고 활동 지역도 떨어져 있었다”고 말했다.
 
청와대에서도 두 사람의 업무는 엄격히 구분된 편이다. 참여정부에 몸담기는 했지만 문 대통령 스스로가 현실 정치와 거리를 두려 했고, 본인의 캐릭터 또한 살갑게 사람을 대하기보다는 낯을 가리는 축에 속했다고 차 교수는 기억한다. “이런 사유로 문 대통령은 청와대 민정수석→시민사회수석→민정수석(2003년~2006년)을 거치는 동안 소관 업무 외 정책 현안의 전면에 나설 상황이 아니었다”면서 “김 위원장이 정책실장으로 재직하던 2004년부터 2006년까지 두 사람은 청와대에서 각기 역할 분담에 충실했다”고 전했다.
 
김 위원장의 기억에 문 대통령은 어떤 인물로 새겨져 있을까? 그는 참여정부 당시 문 대통령의 이미지에 대해 “인권·노동·통일 문제에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입장도 나름 명확한 분으로 기억된다”고 월간중앙에 말했다. 그는 나아가 “쉽게 꺾이거나 양보할 분으로는 보이지 않았다”고도 평했다. 하지만 이슈에 참여하고 논쟁을 주도적으로 벌인 기억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그건 제가 대답할 사안이 아닌 것 같다”고만 말해 여운을 남겼다. 다만 “평소 말을 많이 하시는 분은 아니니까 정책 토론 같은 걸 많이 하는 분도 아니다”고 덧붙였다. 적어도 문 대통령의 스타일이 자신의 그것과 대척점에 있다고 느꼈을 법하다.
 
친노 좌파의 문재인 VS 친노 우파의 김병준
05년 5월 청와대에서 열린 한 행사에서 자료를 보며 이야기하는 문재인 민정수석과 김병준 정책실장. / 사진:연합뉴스

05년 5월 청와대에서 열린 한 행사에서 자료를 보며 이야기하는 문재인 민정수석과 김병준 정책실장. / 사진:연합뉴스

그런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이제 한국 정치의 한가운데서 맞닥뜨렸다. 주요 국정 현안과 정치 의제를 둘러싼 힘겨루기가 불가피한 관계다. 김 위원장은 자유한국당 혁신도 혁신이지만 옆길로 새는 국정을 바로잡는 야당의 역할도 소홀히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김 위원장 영입에 앞장섰던 김용태 자유한국당 사무총장은 “그는 잘못 가는 나라를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방치해선 안 된다는 일념으로 비대위원장을 맡게 된 것”이라고 확인했다. ‘국정 운영에서 여권과 맞장이라도 뜰 참인가’라는 질문에 김 총장은 “근저에 깔려 있지 않겠나”라고 이를 부인하지 않았다.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김병준 위원장은 ‘간단치 않은 인물’이라는 게 정치권 전반의 시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김 위원장은 반(反)역사적 계파논리와 진영논리를 타파하겠다는 대의명분을 앞세우고 가치논쟁과 정책논쟁을 실천과제로 제시했다”면서 “당을 아수라장으로 만들 수 있는 인적 청산 부분은 슬그머니 뒤로 미루는 ‘영리함’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과의 관계에서는 “한때 한솥밥을 먹었던 문 대통령에 대해서는 ‘국가주의’ 대 ‘자율주의’ 프레임으로 분명한 각을 세웠다”고 평했다. “보수진영은 그동안 프레임 전쟁에서 진보진영에 번번이 졌지만 김병준 위원장은 프레임 전쟁을 선제적으로 치고 나와 여권을 곤혹스럽게 했다.”
 
그래서인지 여권은 김 위원장에게 경계의 눈길을 보낸다. 참여정부 청와대 부속실장을 역임한 전재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당신의 출세를 위해 노무현 전 대통령님을 입에 올리지 말아 달라”고 주문했다. 참여정부에 몸담았던 인사들 중에는 아예 김 위원장에 대한 언급을 피하기도 한다. 그 시절 청와대 상황실에서 활동했던 한 인사는 김병준 비대위원장과의 인연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이미 오래전의 일이고 해서 제가 언급할 사안이 아니다”며 입을 다물었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 관계를 전설의 복서 무하마드 알리와 그의 도전자에 비유하는 시각도 있다. 임동욱 대통령학 연구소장은 챔피언 알리에게 무수한 선수들이 도전장을 냈지만 기억에 남는 건 조지 포먼과 조 프레이저가 고작이라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조지 포먼은 강펀치, 프레이저는 발군의 테크닉 보유자였다. 둘 다 고배를 마시기는 했지만 끝까지 화끈한 경기력으로 관중들의 뇌리에 선명한 기억을 남겼다. 말과 글 솜씨에다 공력을 갖춘 김 위원장은 ‘국가주의’라는 펀치를 문 대통령에게 날렸다. 이게 강펀치인지 테크닉 펀치인지는 모르겠으나 휘둘러 상대를 힘들게 하고 있다. 기억에 남는 도전자로 기록될 가능성이 보인다.”
 
“이해찬 총리는 고집 있어도 내 눈치 봤는데…”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대위원장이 7월 19일 국회 당대표실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축하 난을 가져온 한병도 정무수석의 예방을 받았다. / 사진:조문규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대위원장이 7월 19일 국회 당대표실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축하 난을 가져온 한병도 정무수석의 예방을 받았다. / 사진:조문규

두 사람 사이에 접점이 많다고 할 순 없지만 국정에 참여하다 보면 본의 아니게 서로에게 관여할 일도 생긴다. 과거 여권 인사들이 남긴 기록에서도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은원(恩怨) 관계가 슬며시 그 자락을 드러낸다.
 
사실 참여정부 시절 김 위원장은 노 대통령이 늘 총리 후보로 염두에 둔 1순위의 인물이었다. 2006년 당시 이해찬 국무총리가 철도 파업 첫날이자 3·1절 기념식이 거행되고 있을 시점에 부산에서 골프를 쳤던 것으로 드러나 결국 옷을 벗은 적이 있다. 그때 김 위원장이 유력한 총리 대안이었다는 건 다음과 같은 기록에서 확인된다.
 
“대통령의 생각을 가장 많이 아는 사람이 가장 강한 총리가 될 것입니다. 결국 일에 대해서나 인간에 대해 신뢰가 있어야지요. 그럼 대강 결론이 났네요. 김병준 실장이 나가는 수밖에. 김 실장, 올해 나이가 얼마나 되시지요?”
 
이해찬 총리가 물러서고 후임 총리로 김병준 정책실장을 염두에 둔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바보, 산을 옮기다], 저자 윤태영)이다. 그때 김병준 실장은 사실상의 총리 내정자였다. 이로부터 얼마 뒤인 3월 하순 총리 지명을 위한 회의가 청와대 관저에서 열렸다. 이병완 비서실장, 문재인 민정수석, 이백만 인사수석 등이 모였다. 당시 언론이 김병준 실장을 유력한 후보로 보도할 즈음이다.
 
이날 회의에서 문재인 민정수석이 다음과 같은 의견을 냈다 “야당은 당 출신보다는 대통령 사람에 대해 반대가 더 심합니다.” 그러면서 한명숙 의원을 총리 후보로 추천했다고 [바보, 산을 옮기다]는 적고 있다. 당시 문 수석은 “한명숙 의원이라면 청문회 통과가 무난하리라 본다”고 했고, 이병완 대통령 비서실장이 “박근혜씨를 대비하는 카드라 할 수 있다”며 거들었다. 이때 노 대통령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고 [바보, 산을 옮기다]는 전한다.
 
“김병준씨를 총리로 기용한다는 구상을 오래전부터 갖고 있었는데 그것을 뒤집는 얘기네요. 이해찬 총리는 자기 고집대로 하더라도 내 눈치를 볼 것은 보고 그랬는데.” 이렇게 아쉬움을 내비친 대통령은 며칠간 고심 끝에 차기 총리 후보로 한명숙 의원을 낙점했다. 그러면서 노 대통령이 한 말이 도드라진다. “김병준씨 편은 나밖에 없네요.” 그러면서 노 대통령은 김병준 실장을 중용하려는 이유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했다는 것이다.
 
“어떻게든 영남에서 활용할 수 있는 인재를 키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선후보 시절 우리 캠프를 저 양반이 짰습니다. 야당과의 관계에서 유연한 정치력을 보여주기만 하면 영남지역의 간판으로 내놓을 만하다는 생각에서 애착을 갖고 있습니다.”
 
노 대통령은 임기 마지막 순간까지 김 위원장을 곁에 두고자 했다. [바보, 산을 옮기다]에 따르면 큐레이터 신정아씨의 가짜 학위논문 논란 끝에 변양균 청와대 정책실장이 물러난 2007년 9월에도 노 전 대통령은 “내 생각에는 김병준씨가 정책실장으로 컴백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고 진한 속내를 내보였다. 김 위원장은 늘 총리와 비서실장 물망에 오르면서도 막판에 번번이 미끄러지는 불운의 참모이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차재원 교수는 “김 위원장 입장에서는 문재인 비서실장이 적극 밀어줬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가졌을 수도 있다”고 추측했다.
 
“대통령의 안위가 그의 모든 것이었다”
참여정부에서 추진된 한·미 FTA 협상은 여권 내에서도 찬반 의견이 갈렸다.

참여정부에서 추진된 한·미 FTA 협상은 여권 내에서도 찬반 의견이 갈렸다.

“대선후보 시절 우리 캠프를 저 양반이 짰다”는 노 대통령의 말처럼 김병준 위원장은 노무현 대통령의 탄생과 참여정부 출범에 주춧돌을 놓았다는 자부심은 터질듯해 보인다.
 
김 위원장의 저서 [대통령 권력]에 그 단면이 묘사되고 있다. 2002년 대선을 앞두고 김 위원장은 교수들에게 노무현 후보를 도와 달라고 요청했으나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김 위원장은 노 후보에게 “교수를 모아 볼 테니 이들 앞에서 원고 없이 ‘역사와 인간, 그리고 정치’에 대해 두 시간 정도 이야기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교수들에게는 “한번 들어봐 달라. 들어보고도 도울 수 없다 하면 절대 다시 부탁하지 않겠다”고 설득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자리에서 노 후보는 원고 없이 자신이 지닌 인간관과 계몽주의적 가치를 솔직히 털어놓고 국가와 공동체에 대한 생각을 전했다. 이렇게 해서 상당수 참석자들이 돕겠다고 나선 것이다. 김 위원장은 [대통령 권력]에서 이렇게 묻는다. “5년마다 치르는 대통령선거, 수많은 지식인이 소위 ‘캠프’에 합류한다. 이 중 얼마나 많은 지식인이 이 정도의 과정이라도 거쳤을까? 얼마나 큰 확신을 가지고 후보를 돕고, 또 쫓아다닐까?”
 
반면, 김 위원장은 이 책에서 고(故)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에 대해 남다른 평가를 내렸다. 참여정부 말기 강 회장은 대통령의 뜻이라며 김 위원장에게 대선 출마를 권하면서 전폭적인 후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제안했다고 한다. 강 회장은 “같이 대장 걱정하자는 얘기”라며 출마를 강권하다시피했다. 이에 김 위원장은 “대장? 나한테는 대장 아니다. 존경하는 정치 지도자이자 대통령이다. 무조건 따르는 게 아니라 따를 만한 공적 가치가 있어 따른다”고 답했다. 강 회장의 간곡함에 감동했던지 김 위원장은 “대통령이 부러웠다. 어떻게 저런 사람을 옆에 둘 수 있었을까? 대통령을 향한 끝없는 애정, 그야말로 대통령의 안위가 그의 모든 것이었다”고 술회했다.
 
나아가 김 위원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쏟아진 동정여론을 기반으로 정치적 재기를 모색하던 친노(親盧, 친노무현계) 인사들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고 그를 잘 아는 참여정부 청와대 고위 인사가 전했다. 친노 인사들이 노 전 대통령의 정신과 가치는 뒷전이고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 확장에 노 전 대통령 동정 여론을 활용하려 든다는 불만을 김 위원장이 피력하더란 것이다. 이 인사는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김 위원장과 친노 진영의 사이가 벌어지기 시작했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전했다. 김 위원장은 공개 석상에서 친노의 행보에 유감을 표하기도 했다. 2015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 6주기 추도식을 즈음해 그는 “노 전 대통령 추도식이 현실 정치의 연장선상으로 부상했다”면서 “이는 노무현 정신을 거스르는 것으로 노 전 대통령은 생전에 이런 상황을 걱정했다”고 일침을 가했다.
 
이후 펴낸 저서에서는 “노 전 대통령 정신을 부정한다”는 이유로 친노 인사들에게 직격탄을 날린다. 더불어민주당이 예상 밖의 선전을 펼친 20대 총선 직전인 2016년 3월. 그는 [김병준 대담]이라는 책에서 당시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불신을 여과 없이 표출하고 있다. 다음은 책에 실린 대화의 한 도막.
 
김병준_ 소위 주류인 ‘친노’라는 사람들이 오히려 노무현 대통령이 추구하던 주요 정책들을 부정하고 있다. 한·미 FTA 문제가 그랬고, 제주 해군기지 문제가 그랬다. 또 지금 문제가 되는 서비스산업 육성 문제도 그렇다. 모두 노무현 대통령이 추진한 정책이었는데 반대 깃발을 들고 있다.
 
이상돈 당시 중앙대 명예교수_ 문재인 대표가 자신이 물러나는 것만 빼고 다 바꾸겠다고 했다. 당을 전면 개혁한다는 말이다. 한명숙 대표 체제 이래 고착화된 정책기조도 바꿀 수 있을까? 아마 어려울 것이다. 두고 보자.
 
“노무현 정책 부정하면서 ‘친노 간판’ 달아서야”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도 주민들의 찬반 논란 속에 결실을 보았다.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도 주민들의 찬반 논란 속에 결실을 보았다.

김병준_  못 바꾸면 ‘친노’라 하지 말아야지. 노무현 대통령의 가장 핵심적인 정책들을 부정하면서 ‘친노’ 간판을 달아서 되겠나.
 
이상돈_ 그렇게는 못한다. 지지세력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여권 지지층에게 ‘친노’는 국가보안법 폐지, 사학법 개정 같은 부정적 이미지로 비치고 있다. 반면 새정치연합은 노 전 대통령을 매개로 지지세력을 결집시키고 있다. 지금 야당은 노 전 대통령에게서 버리면 안 되는 것은 버리고, 버렸어야 하는 것은 버리지 못하고 붙잡고 있는 것이다.
 
김병준_  결국 도식적 이념노선으로 돌아갔다는 말 아니냐.
 
이상돈_ 핵심 지지세력의 눈치를 너무 보니 그렇다. 이런 입장이 결국 보수를 결집시키도록 했고, 믿을 수 없는 집단으로 공격받게 만들었다.
 
문 대통령과 친노 인사들이 주축이 된 당시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에 대한 사실상의 비토 내지 결별 선언으로 읽히는 구절들이다.
 
예컨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하나만 보더라도 사안에 임하는 자세가 사뭇 다르게 와 닿는다. 김병준 위원장은 참여정부 시절 한·미 FTA를 추진할 때를 일러 “잘못하면 제2, 제3의 이완용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고 [김병준 대담]에서 말했다. 당시 인요한 연세의료원 의사와 만나 이렇게 언급한 그는 “세계 최강국 미국에 시장을 연다? 걱정이 없을 수 없었다. 그러나 믿는 게 있었다. 바로 한국인의 저력이었다. 뭐든 넘어갈 수 있다고 보았다”고 추진 경위를 밝혔다. 반면, 문 대통령은 참여정부 임기 말에 추진된 한·미 FTA 논의과정에는 비서실장이면서도 참여하지 못했다고 회고한다. [문재인의 운명]에서 그는 “FTA 논의과정에는 참여하지 못했다”면서 “나중에 협상이 상당히 진도를 낸 후에야 시민사회의 반대 때문에 논의에 관여하게 됐다”고 기록했다.
 
이 사안에 누가 더 절박하게 접근했는가를 보여 주는 대목이다. 참여정부에 정무를 주로 담당한 문 대통령은 ‘친노 좌파’, 정책을 맡았던 김 위원장은 ‘친노 우파’로도 불렸다. 친노 좌파들은 한·미 FTA, 제주 강정 해군기지 건설 등을 ‘지지층 기대에 반하는 정책’이란 이유에서 경원시했고, 친노 우파들은 ‘정파의 이익보다는 국익이 우선’이라는 관점에서 이들 의제를 강하게 밀어붙였다. 참여정부에서 문 대통령과 얼굴 한 번 붉힐 일 없었다던 김 위원장도 청와대 시절 정책 문제로(문재인 수석과) ‘간접적으로’ 부딪친 일은 많았다고 언급했을 정도다.
 
현 정부·여당과 김 위원장의 이 같은 견해차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참여정부의 정책을 설계했다고 자부하는 김 위원장이기에 노 전 대통령의 후예들의 행보를 ‘일탈’로 규정하고 분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김 위원장은 2012년 초 발행한 [99%를 위한 대통령은 없다]는 책에서 [자본주의 4.0]을 저술한 아나톨 칼레츠키의 말을 인용한다.
 
“진보주의자들은 반대할 줄만 안다. 말하자면 ‘정의롭지 못한’ 상황이 있으면 이를 반대한다. 그러나 이런 상황을 바로잡기 위한 대안이나 어떻게 하겠다는 계획은 없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에 대한 합의가 없을 뿐 아니라, 무엇을 추구하며 왜 추구하는지에 대한 합의도 없다. 결국 반대만 한다.”
 
나아가 그는 “분배를 주로 생각해 온 집단이 집권하고서도 또다시 분배를 생각하면 국민은 불행해진다([99%를 위한 대통령은 없다])”고 덧붙였다. 분배 이전에 분배할 것이 부족해지기 때문이다. 정치도 그만큼 불안해진다고 그는 믿는다. 지금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은 얼마 못 가 성패가 판가름 날 수도 있다. 김 위원장은 경제 분야에 실적을 내지 못하는 정부에 대해 후한 평가를 할 의향이 없어 보인다.
 
이와 대조적으로 문 대통령의 소득주도 성장론은 분배론에 기초해 있다. 대선 전부터 그는 수출 대기업을 육성해 봤자 일자리 창출이 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정했다. 성장의 혜택이 대기업과 부자에게만 다 가버리고 중산층과 서민에게는 오지 않아서 사회 양극화가 심해졌다고 봤다. 수출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내수를 함께 성장의 동력으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굳힌다. 그는 내수를 진작할 수 있는 소비 능력을 높이려면 가계소득이 높아져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소득의 분배’ 단계에서부터 불평등을 줄이는 전략을 택했다.
 
이쯤 되면 두 사람의 충돌은 또 하나의 ‘운명’과도 같은 결과를 빚을 수 있다. 김 위원장에게 현 여권의 주류를 이루는 친문·친노 진영은 ‘가치 결사체’가 아닌 ‘진영논리에 함몰된 이익집단’이라는 인식이 뇌리에 깔렸을 수 있기 때문이다. 친노·친문 진영의 생리를 잘 아는 김 위원장이 여권에 치명적 위협이 되는 이유다.
 
김 위원장이 여권에 치명적인 위협인 이유
2006년 7월 한명숙 총리와 김병준 교육부총리가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해 노무현 대통령의 얘기를 듣고 있다.

2006년 7월 한명숙 총리와 김병준 교육부총리가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해 노무현 대통령의 얘기를 듣고 있다.

반면, 여권은 협치 가능성을 열어두고자 한다. 김 위원장 역시 참여정부 노무현 대통령의 대연정을 제안에 기본적으로 공감하는 편이다. 김 위원장은 7월 20일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만나 상견례를 가졌다. 이 자리서 추 대표가 노무현 정부의 대연정 제안을 화제에 올렸고, 김 위원장은 “대연정이라는 큰 카드를 꺼냈다가 많은 분이 반발하고 야당이 반대해 무산된 것을 여전히 아프게 안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추 대표는 김 원장에게 취임을 축하하는 난과 ‘협치 수박’을 보내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추 대표와) 남북 관계 부분에서 서로 잘 협조하고, 경제 정책도 서로 협력할 것은 협력하고 경쟁할 것은 경쟁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언론에 전했다.
 
원론적 입장에서 협치를 언급했다고는 하지만 갈 길은 멀어 보인다. 먼저 김 위원장은 7월 31일 한 방송 인터뷰에서 “소득주도 성장은 잘못인 만큼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며 “지금 당장 협치 내각은 안 되는 것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조건을 달았다. 문 대통령이 소득주도 성장 정책을 수정해야 협치를 고려해 볼 수 있다는 말로 들린다.
 
‘노무현과 가장 가까운 사람(문재인)’과 ‘노무현을 가장 잘 아는 사람(김병준)’이 빚어낼 한국 정치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지에 정치권의 이목이 집중된다.
 
- 박성현 월간중앙 기자 park.su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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