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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의 추락···바둑기사 왜 30세 넘으면 내리막일까

중앙일보 2018.08.22 02:54
※ '미주알고주알(바둑알)'은 바둑면에 쓰지 못한 시시콜콜한 취재 뒷이야기를 다루는 코너입니다.  

 이세돌 9단. [프리랜서 김성태]

이세돌 9단. [프리랜서 김성태]

 

[정아람의 미주알고주알] 이세돌의 추락, 나이와 기력의 상관관계

지난 6월 개막한 KB국민은행 바둑리그가 어느새 전반기를 마치고 후반기에 돌입했습니다. KB리그가 진행되는 동안 이런저런 일들이 있었지만, 가장 큰 화제는 이세돌 9단의 성적 부진입니다. 
 
이 9단은 현재까지 1승 7패의 성적으로 승률 12.5%를 기록했습니다. 40명의 KB리그 선수 가운데 꼴찌입니다. 이 9단은 홍성지 9단에게 단 한 번 승리했을 뿐, 윤찬희·신진서·설현준·송지훈·최철한·김지석·박하민에게 모두 패배했습니다. 아무리 이세돌 9단이 하강세라고는 하지만 충격적인 결과입니다.
 
지난 16일 윤찬희에게 패배하며 KB리그에서 1승 7패를 기록한 이세돌 9단(왼쪽). [사진 한국기원]

지난 16일 윤찬희에게 패배하며 KB리그에서 1승 7패를 기록한 이세돌 9단(왼쪽). [사진 한국기원]

세계 최강이었던 이세돌 9단이 이러한 모습을 보이는 데는 '나이'가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힙니다. 이세돌 9단은 1983년생으로 올해 35살. 바둑 세계에서는 전성기를 훌쩍 넘긴 나이입니다. 
 
바둑에서 최고의 나이는 언제일까요. 20대 초중반이라는 게 바둑계의 정설입니다. 보통 프로기사들은 20대까지는 자신의 최고 성적을 유지하다가 30살이 넘어서면 서서히 내리막길을 걷는 모습을 보입니다. 
 
일인자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이세돌 9단은 30살인 2013년 8월, 처음으로 한국 랭킹 1위 자리를 박정환 9단에게 내줬습니다. 우승만 하던 각종 대회에서 2013년에 처음으로 준우승하기 시작했습니다. 2013년 이세돌 9단은 처음으로 무관으로 전락했는데, 네 개의 대회(제9회 춘란배, 2013 삼성화재배, 제41기 하이원리조트배 명인전, 제14회 맥심커피배)에서 준우승을 차지했습니다. 
1975년생인 이창호 9단.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1975년생인 이창호 9단.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이창호 9단도 비슷합니다. 거의 모든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던 이창호 9단이 처음으로 준우승하기 시작한 것은 2005년, 그의 나이 30살이 된 해였습니다(이창호 9단은 1975년생입니다). 2005년에 이창호 9단은 네 개의 대회(제10회 삼성화재배, 제1기 한국물가정보배, 제10기 GS칼텍스배 프로기전, 제48기 국수전)에서 준우승했습니다. 절대 빼앗기지 않았던 일인자의 자리를 누군가에게 내어주기 시작했단 의미입니다.
 
스승 조훈현 9단을 꺾고 일인자 자리에 오른 이창호 9단(왼쪽). 30살에 일인자에서 물러나기 시작했다. [사진 한국기원]

스승 조훈현 9단을 꺾고 일인자 자리에 오른 이창호 9단(왼쪽). 30살에 일인자에서 물러나기 시작했다. [사진 한국기원]

30대가 되면 기력이 떨어지는 데는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체력'이 그중 하나로 꼽힙니다. 바둑은 다른 스포츠와 달리 신체 움직임이 적어 체력이 별로 중요하지 않을 듯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몇 시간 동안 최고의 집중력을 유지하기 위해선 엄청난 체력이 요구됩니다.
 
30대가 되면 신체 기능이 20대보다 떨어지기 때문에 집중력을 유지하는 데 방해 요소가 생겨납니다. 유창혁 9단은 과거 인터뷰에서 "젊은 시절에는 밤새워서 바둑을 두고 나도 체력이 남았는데, 요즘에는 바둑을 두러 나가는 길에 체력이 소진된다. 바둑을 시작하기도 전에 피로감을 느낄 때도 있다"며 나이에 따른 체력 변화를 호소했습니다.
 
또 다른 원인으로 나이가 들면서 생기는 '고정관념'을 들 수 있습니다. 이세돌 9단은 과거 인터뷰에서 "나이가 들면 어쩔 수 없이 과거의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쌓이게 된다. 어렸을 때는 겁 없이 과감하게 시도해보던 것도 나이가 들면 실패가 두려워 안정적인 것만 찾게 된다. 이러한 것들이 바둑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김영삼 9단 역시 "바둑도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옛것을 버리고 새것을 취해야 하는데, 나이가 들수록 고정관념에서 탈피하지 못하게 되는 것 같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밖에 원인으로 '집중 분산'을 꼽는 프로기사들도 있었습니다. 어렸을 때는 온종일 바둑 하나만 생각하고 바둑에 매진하지만, 30대가 넘어서면 결혼을 해서 가장이 되거나 승부사 이후를 준비하는 등 관심사가 여러 갈래로 흩어지기 때문에 예전만큼 바둑에 집중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어떻게 보면 바둑의 전성기가 너무 짧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이러한 전성기는 바늘 한 땀으로 승부가 갈리는 프로의 세계에 해당되는 이야깁니다. 바둑을 즐기는 아마추어 입장에선 크게 고민할 필요가 없는 문제입니다. 다행히, 바둑을 즐기는 데는 평생 나이 제한이 없습니다. 
 
정아람 기자 a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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