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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경직된 정책이 경제 부러뜨린다

중앙일보 2018.08.22 00:34 종합 27면 지면보기
김광기 경제연구소장·논설위원

김광기 경제연구소장·논설위원

일자리 전쟁에서 연전연패하고 있다는 비보에 문재인 대통령의 속이 타들어 간다. 장하성-김동연 두 장수의 갈등설에 화도 난다. ‘고용에 직을 걸라’는 최후통첩성 경고문이 하달됐다. 결연함과 비장함이 감지된다.
 
이렇게 허무하게 전선이 뚫릴 줄은 몰랐다. 한강의 기적을 일군 정예 연합군으로 경제팀을 짜지 않았나.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밑에는 노동 및 시민단체 운동으로 민주화에 기여한 일꾼들이 배치됐다. 이들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애정과 추진력이 강점이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밑에는 이 땅의 산업화를 기획하고 이끈 전문 관료 집단이 모여있다. 이들은 기업 및 시장과 소통하는 특기를 갖고 있다. 시장 규율을 위해 규제라는 무기를 쓰지만, 혁신을 돕기 위해 규제를 풀기도 한다.
 
국민은 양측이 손을 잡고 노사정 대타협의 정책을 펼치길 기대했다. 혁신을 통해 성장동력을 키우며 양극화도 해소해 나가는 것 말이다. 장 실장팀이 강성 노조를 설득하고, 김 부총리팀이 기업을 끌어들이면 못할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촛불혁명’ 주체세력이 포진한 장 실장팀에 힘이 실리면서 정책 운동장은 한쪽으로 기울었다. 장 실장팀은 최저임금과 근로시간, 부동산 등의 정책을 속전속결로 밀어붙였다. 김 부총리팀에 맡겨진 것은 과속의 후유증을 돈으로 막는 후방 보급 임무가 거의 전부였다. 그렇게 장 실장팀은 엄동설한에 모스크바로 진격한 나폴레옹 군단과 같은 엄청난 작전을 단행했다. 그 결과가 작금의 일자리 참사다. 실패 원인은 몇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그 뜻은 좋았으나 병사들의 체력을 돌보지 않고 단기간에 너무 혹사했다. 탈진해 쓰러지거나 고통을 견디지 못해 탈영하는 병사가 속출했다. 둘째, 주변 환경의 변화를 살피지 못했다. 때마침 미국과 중국 간 무역전쟁 등 상층 기류가 요동치면서 추위가 엄습하는데도 진군의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셋째, 국경의 의미가 없어질 정도로 세상이 열려있다는 사실을 무시했다. 기업과 부유층을 중심으로 민심이 이탈하면서, 투자와 소비를 해외로 옮기는 현상이 심해졌다. 이는 곧 일자리의 이탈을 뜻한다.
 
청와대와 여당은 일자리 전쟁의 재원 마련을 위해 세금을 더 거둬들일 태세다. 무슨 근거인지 향후 5년간 60조원의 세수가 저절로 늘어날 것이라고 장담한다. 경기가 가라앉는 상황에서 그게 과연 가능할지 의문이다. 결국 세금을 더 걷든지 국가부채를 늘릴 수밖에 없을 전망이다. 덕분에 좋은 일자리가 많이 생긴다면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이제껏 그래왔듯이 돈만 흔적도 없이 증발할 가능성이 크다.
 
더 이상 돌격 앞으로는 무리다. 별 성과 없이 상처만 키울 공산이 크다. 용맹하게 싸운다고 모든 전투에서 이기는 것은 아니다. 결정적 순간을 기약하며 몸을 낮추고 힘을 축적할 줄도 알아야 한다.
 
미·중 무역전쟁에서 중국이 보여주고 있는 태도가 그렇다. 미국의 관세 공격에 정면 대응하는 듯하다가 협상 테이블에 앉기로 했다. 중국의 지식인들 사이에선 “시진핑 정부가 섣불리 패권 의도를 드러내 미국을 자극했다”는 자성의 소리가 나온다. 중국은 도광양회(韜光養晦·조용히 때를 기다려 힘을 키운다)로 돌아가고 있다. “혁신을 가로막는 제도를 개혁하여 더 포용적이고 유연한 시장경제 시스템을 만들자. 그런 혁신 국가를 건설하는 게 궁극적으로 미국을 이기는 길이다.” 최근 한국에도 소개된 길림대 리샤오 교수 연설문은 우리 현실과 묘하게 비교된다.
 
좋은 일자리는 결국 기업과 시장에서 나온다. 정부가 아무리 결연해도 재정에 의존한 대책으로는 한계가 있다. 규제개혁을 통해 경제 주체들의 마음을 움직여 혁신적 투자가 저절로 움트게 하는 게 첩경이다.
 
북한에 보여주는 포용력과 유연함을 절반만 발휘해도 ‘혁신 성장’의 길은 열리기 시작하지 않을까.
 
김광기 경제연구소장·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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