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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하는 세상] 벼랑 끝 참혹한 슬럼가, 시에라리온 수잔스베이

중앙일보 2018.08.22 00:02 종합 20면 지면보기
지난달 30일 시에라리온 수잔스베이에서 한 소녀가 시장에 내다 팔 음식을 머리에 지고 있다. [여성국 기자]

지난달 30일 시에라리온 수잔스베이에서 한 소녀가 시장에 내다 팔 음식을 머리에 지고 있다. [여성국 기자]

지난달 30일, 서아프리카 시에라리온 수도 프리타운에서 차로 1시간쯤 떨어진 수잔스베이(Susan’s Bay)로 가는 길에는 500m 넘게 늘어선 대형 시장이 있었다. 어린아이들은 책가방 대신 고기나 채소가 들어있는 바구니를 머리에 짊어졌다. 6살 정도 된 아이는 한 두살 남짓 동생을 업고 차량으로 다가와 생수를 팔았다. 유니세프에서 구호물품으로 받은 하늘색 가방을 양팔에 주렁주렁 걸고 시장에서 파는 청소년도 있었다. 소·돼지 도축장은 물론 닭 판매장도 있다. 절벽 위에는 시장이 아래에는 수잔스베이, 도시 빈민가가 있다. 시장에서 흘려보낸 오염물질은 빈민가로 스며든다.
 

가난한 이들이 사는 도시 빈민가
화장실 없어 아이들 질병에 노출
학교도 못 가고 폐품 모아 생계
초록우산어린이재단서 환경 개선

1인당 국내총생산(GDP) 약 505달러. 오랜 기간 영국의 식민지였고, 내전을 겪은 서아프리카 국가 시에라리온. 다이아몬드 매장국이지만 이는 유혈 분쟁의 씨앗이 됐다. 영화 ‘블러드 다이아몬드’의 배경이 됐던 곳이기도 하다.
 
수잔스베이 빈민가에 있는 게임장. [여성국 기자]

수잔스베이 빈민가에 있는 게임장. [여성국 기자]

이날 오후 4시쯤 수잔스베이에서 만난 소년 모하메드 칼보(12)는 “오늘 한 끼도 못 먹었다”며 “친구 알리와 플라스틱 병을 주워 판매해 돈을 번다”고 말했다. 1㎏을 모아 팔면 손에 쥐는 돈은 500리온 남짓. 우리 돈 100원도 안 된다. 모하메드의 부모는 2015년 에볼라로 사망했다. 여동생은 다른 친척에게 맡겨졌고, 누구도 모하메드를 돌보지 않는다. 잘 곳이 없는 모하메드는 고모부가 운영하는 동네 게임장의 낡은 의자에서 잠을 청한다. 2년 전부터는 돈이 없어 학교도 못 간다. 그는 “플라스틱을 줍는 대신 학교에서 수학 공부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곳은 1961년 시에라리온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기 전까지는 부두와 어장, 창고가 있는 항구 지역이었다. 산허리와 절벽을 따라 낡은 건축자재로 지은 무허가 집들이 늘어서 있다. 가구마다 부엌도 화장실도 없다. 집 앞 작은 화로를 이용해 요리를 한다.  
 
수잔스베이 개울의 쓰레기더미에 돼지가 누워있다. 주민들은 여기서 빨래를 하고, 아이들은 물놀이를 한다. [여성국 기자]

수잔스베이 개울의 쓰레기더미에 돼지가 누워있다. 주민들은 여기서 빨래를 하고, 아이들은 물놀이를 한다. [여성국 기자]

빈민가를 가로지르는 물가에서 아이들은 물장구를 친다. 10m 떨어진 거리에 돼지들이 있다. 아이들을 공동 화장실에 가는 대신 근처에서 볼일을 봤다. 조금 떨어진 곳에는 빨래를 하는 이도 있었다. UN 산하 기구와 각종 구호단체들의 보고서에 따르면 이런 위생 환경은 콜레라는 물론 각종 질병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빈민가에서 학교에 못 가는 건 소녀 마리아마 바리(11)도 마찬가지다. 마리아마는 학비와 교복 살 돈이 없어 학교에 못 다닌다. 부모와 동생들은 이웃나라 기니에 있다. 수잔스베이에서 이모와 할머니가 마리아마를 돌본다.  
 
마리아마는  온 몸에 하얀 각질이 일어나 온몸이 건조해지는 피부병을 앓고 있었다. 그는 “팜오일을 바르며 가려움을 견딘다”며 “심하면 면도칼로 가려운 곳을 긁기도 한다”고 했다. 마리아마는 인근에서 비정규교육과정인 공부방을 다닌다. “언젠가 학교로 돌아가 간호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이날 마리아마는 병원 진료를 위해 초록우산어린이재단과 함께 프리타운의 종합병원에 방문했다. 마리아마를 진료한 의사 에드워드 응고베(36)는 “피부 진균증이 의심된다. 정밀 검사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시에라리온

시에라리온

이 가운데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은 현재 아프리카 일대에서 ‘슬럼아웃(Slum OUT)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학교를 못 가고 질병 위험에 노출된 모하메드와 마리아마 같은 아이들을 위해서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 김경하 해외사업본부 팀장은 “열악한 주거환경과 위생시설을 개선해 슬럼지역 아이들을 보호한다”며 “위생 시설을 만들어 아이들이 깨끗한 환경에 생활할 수 있도록 돕고, 슬럼 지역 내 인식 개선활동을 펼친다”고 설명했다.
 
사람들은 흔히 ‘죽음은 공평한 것’이라고 말한다. 죽음은 부자에게나 가난한 이에게나 공평하게 찾아오기 때문이란다. 수잔스베이에서 이 말은 틀린 말이었다. 가난한 아이들은 에볼라와 산사태 등 질병과 사고로 부모를 떠나보내고 혼자 남겨졌다. 한글로 ‘태권도장’이라고 적힌, 한국에서 보낸 목이 잔뜩 늘어난 헌 옷을 입고 있는 아이들. 학교 대신 나무를 하러 가고, 구걸을 하러 가는 아이들. 빈민가의 모든 아이들은 질병 위험에 노출돼있다.
 
군복무중 해외아동 후원"학교 갈 수 있게 됐어요”
지난 2일 시에라리온 카발라 지역의 한 마을에서 후원자가 보낸 편지를 들고 있는 무수 마라. [여성국 기자]

지난 2일 시에라리온 카발라 지역의 한 마을에서 후원자가 보낸 편지를 들고 있는 무수 마라. [여성국 기자]

“무수 마라 안녕? 나는 대한민국에 사는 최지수야. 얼마 안 되는 후원금이지만 너에게 의미 있게 사용됐으면 좋겠어. 힘든 일이 있어도 잘 이겨내고 씩씩하게 자라나길 바랄게.”
 
지난 2일 시에라리온 카발라 지역의 한 시골 마을에서 만난 소녀 무수 마라(8·사진)는 한국어로 이같이 적힌 편지를 들고 있었다. 최지수(22)씨는 무수 마라의 후원자다. 최씨의 도움으로 형편이 어려운 무수 마라는 학교에 다닐 수 있게 됐다. 춤추고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하는 무수는 마을 사람들 앞에서 가장 좋아하는 노래를 불렀다. “사회에 나가면 엄마, 아빠 위해 일을 할게요”란 내용의 가사였다.
 
무수는 “편지를 받으면 기분이 너무 좋다”고 했다. 이제는 번역된 편지도 읽을 수 있다. 무수는 사회 과목을 좋아한다. “지역 사회와 공동체에 대해 배울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무수의 꿈은 변호사가 돼 지역사회의 더 어려운 이들을 돕는 것이다.
 
시에라리온=여성국 기자 yu.sungk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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