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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인권 고발한 탈북 엘리트들이 무너져 내린다

중앙일보 2018.08.22 00:02 종합 26면 지면보기
[김수정 논설위원이 간다]  4·27 이후 탈북자 사회
2016년 4월 입국하는 류경식당 북한 종업원들. 이들에 대한 송환 이슈는 한국내 탈북자, 특히 중국을 거쳐 온 여성 탈북자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중앙포토]

2016년 4월 입국하는 류경식당 북한 종업원들. 이들에 대한 송환 이슈는 한국내 탈북자, 특히 중국을 거쳐 온 여성 탈북자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중앙포토]

4·27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 이후 남북 관계와 우리 사회 분위기가 변화하면서 ‘통일의 징검다리’라 불리는 탈북자 사회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한국 행을 택한 탈북자는 지난 6월 말 기준 3만1827명. 배가 고파서, 자유 없는 폭압을 피해 북한 땅을 떠난 이들에게 세습 통치자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판문점에서 던진 미소는 큰 충격이었다. 여기에다 대북 인권 운동 단체가 줄줄이 수사 선상에 오르거나 고발되고 테러까지 당하면서 단체를 이끌어온 엘리트 탈북자들의 활동이 크게 위축됐다. 이들은 “위축 정도가 아니라 초토화됐다”고 한다. “현 정부의 정책이 김정은의 변화를 끌어낼 것”이라며 과거 주장에서 방향을 튼 이들도 있다. 2년 전 류경식당 여종업원들을 데리고 탈북한 지배인 허강일 씨가 ‘유인·납치’라며 폭로전에 나선 것도 탈북자 사회 기류의 한 단면이란 분석도 나온다.

적폐 대상처럼 고발 수사 잇따르며
단체·개인 후원자 기부도 거의 끊겨

일부 시민단체와 언론 타깃 돼 위축
‘요덕스토리’ 정성산 감독 식당 테러

강연, 방송 섭외도 거의 사라지고
"안보, 인권 단어 빼라 요구받아”

  
북한 정권을 비판하고 인권 참상을 고발한 탈북자들은 북한에서 엘리트층에 속했던 이들이다. 한국에 와서 자신의 직업과 전공 등을 살려 단체를 꾸리고, 강연과 세미나, 정보 수집, 북한 변화 운동을 주도해왔다. NK 지식인연대(대표 김흥광), 자유북한방송(대표 김성민), 자유북한운동연합(대표 박상학), 탈북자동지회(회장 최주활), 북한인민해방전선(대표 최정훈) 등이다. 입국 당시 기준으로 전문대 이상 졸업자는 5300명. 이 가운데 절반 정도가 대북 인권 운동에 참여하거나, 탈북자들의 생활 적응, 취업과 청소년 교육, 성폭력 문제 등에 집중하고 있다고 한다.
 
북한 인권 단체들이 일부 시민 단체와 언론 매체의 타깃이 된 것은 지난해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다. 함흥 컴퓨터기술대학 교수 출신인 김흥광 대표는 천안함 폭침 이후 북한 사이버 부대의 ‘한국의 자작극’ 댓글 공격을 찾아내 방어 댓글을 달았다. 혐의는 ‘공직자 선거법’ 위반. ‘적폐’ 수사의 일환이었다. 대선 시기와 무관해 불기소 처분됐다. 올 들어 행안부 실사 이후 보조금 집행 과실이 드러나 지원금 일부 환수 통보를 받았다. 김 대표는 “관련 보도 과정에서 가짜 정보를 팔아먹는 단체로 매도 당하고, 탈북자들의 집까지 카메라가 들이닥쳤다”며 “악의적으로 이미지를 훼손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생명 위협까지 느끼면서 인권 운동에 참여하던 탈북자들이 생계에만 집중하는 경우도 생겼다”고 했다.
 
지난 5월 뮤지컬 ‘요덕스토리’ 정성산 감독이 운영한 식당 ‘평광옥’에 붙여진 비난 글과 낙서. 정 감독은 최근 식당 문을 닫았다. [중앙포토]

지난 5월 뮤지컬 ‘요덕스토리’ 정성산 감독이 운영한 식당 ‘평광옥’에 붙여진 비난 글과 낙서. 정 감독은 최근 식당 문을 닫았다. [중앙포토]

2006년 북한 내 정치범수용소의 참상을 다룬 뮤지컬 ‘요덕 스토리’로 국내외에서 주목받은 정성산 감독은 최근 인천의 냉면 가게 ‘평광옥’을 개업 9개월 만에 닫았다. 지난 4월 세월호 단식 농성에 반대하는 집회를 다룬 지상파 프로그램에 정 감독의 모습이 10여 초 방송된 여파다. 방송 이후 가게 문에 스프레이로 세월호 리본이 그려지고, 비방 대자보까지 붙었다. 구청을 통해 식당에 대한 온갖 고발이 이어졌다. 동업자 세 명의 신상까지 알아내 협박하는 전방위 공격에 결국 정 감독은 손을 들었다. “평광옥은 ‘평양의 광복을 위하여’란 뜻을 담은 상호다. 대한민국이 눈감는 북한의 인권, 진실을 말하기 위해 열정을 쏟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유다(예수를 배반한 제자)가 돼버렸다. 좌·우 정치적 이념을 떠나 민주주의 사회에서 어떻게 생계 수단까지 빼앗을 수 있나. 정치적인 잣대로 휘젓는 세력의 인민재판식 공격이다.” 정 감독은 “나는 대한민국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대한민국 국민이다. 이번 사태는 내가 겪고 이겨내야 할 한고비”라고 말했다.
 
이런 기류가 1년여 지속하면서 북한 인권 운동 단체들에 대한 기업과 개인의 후원금도 끊겼다. 여파는 방송과 강연 현장에도 이어졌다. 활동 탈북자들 상당수는 TV 출연과 군부대, 학교, 기업, 신규 탈북자 대상 강연으로 생활비를 보탠다. 취재에 응한 탈북 인사들은 “통일·안보 강연에도 배제되고 TV 출연 섭외도 오지 않는다”고 했다. 강연을 계속하는 경우 가이드라인도 있다고 했다. 6년째 안보 강연을 해온 A씨는 “지난해 가을쯤 ‘인권’이란 단어를 빼고 하라더니 연초엔 ‘안보’라는 말을 빼고, 화해·평화 이런 얘기로 풀어달라고 해 요령껏 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락성 탈북자 프로그램 외엔 탈북자들을 찾는 경우는 드물다. 탈북자들은 지난 4월 이후 방송사에서 김정은과 부인 이설주의 직책을 붙이라는 요구를 들었다고 했다. B씨는 “방송국에서 ‘위원장’ ‘여사’ 호칭을 붙여달라고 해 나는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들을 존중할 추호의 마음도 없다고 하고 그냥 토론했더니 더는 연락이 오지 않았다”고 했다.
 
전국탈북민인권연대 회원들이 지난달 여종업원 송환 문제가 제기된 뒤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뉴시스]

전국탈북민인권연대 회원들이 지난달 여종업원 송환 문제가 제기된 뒤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뉴시스]

북한에 대한 인식에서 국내 입국 탈북자들은 대개 보수진영과 궤를 같이했다. 하지만 지난해 치러진 대선 때는 다른 분위기가 감지되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 후보를 지지하는 ‘탈북민연합단체’선언 등이 그것이다. 최근엔 북한 이탈주민 출신 교수가 민주당 대표 경선과 관련해 “민족공동체의 회복과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만들어갈 문재인 정부를 뒷받침할 분”이라며 한 후보를 공개 지지하는 글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렸다. 판문점 회담 뒤 엘리트층의 한 탈북자는 김정은 시대 남북관계 진전을 기대하면서 “천안함은 이명박 정부가 대북 정책을 잘못해서 초래한 것”이라는 취지의 글을 올렸다.
 
북한 고위 인사로 3년 전 한국 행을 택한 D씨는 “남북관계가 좋아지고 정세가 완화돼서 통일로 가자는데 반대할 명분은 없다”며 “탈북자들이 고향 부모 형제를 만날 수 있다는 기대를 갖는 건 당연하고, 남북관계가 좋아지면 탈북자에 대한 북한 정권의 시선도 부드러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관계가 나쁠 땐 ‘배신자’라 비난하지만, 교류 협력할 땐 ‘뭐 배고파서 나간 건데…’ 정도로 눈을 두지 않을 것이란 얘기다. 그러면서 판문점 정상회담 때 김정은이 탈북자를 언급한 것도 좋은 신호로 해석했다. 당시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 수석은 김정은이 문 대통령과의 대화에서 “오면서 보니, 실향민들과 탈북자, 연평도 주민 등 언제 북한군의 포격이 날아오지 않을까 불안해하던 분들도 우리 만남에 기대를 가지고 있는 것을 봤다” “이 기회를 소중히 해서 남북 사이에 상처가 치유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고 전했다.
 
이를 다르게 해석하는 인사들도 있다. 북한이 그 이후 류경식당 종업원 송환 문제를 강하게 들고 나왔고, 국경지대 탈북자 단속과 북송된 탈북자 처벌을 더 심하게 하고 있어서다. 탈북자적응센터인 부산하나센터장을 맡은 강동완 동아대 교수는 “이전 탈북 루트였던 두만강 쪽은 최근엔 접근조차 힘들어졌고, 압록강 혜산 쪽 루트는 철조망이 세워지고 있다. 뇌물이 통하지 않도록 국경 경비대 전체도 물갈이했다”고 전했다. 류경 여종업원 이슈는 중국을 통해 한국에 온 젊은 여성 탈북자 사회에서 파장이 컸다고 한다. 김정아 탈북 맘 연합회 대표는 “많은 회원들이 자신도 북송될 수 있다는 두려움에 떨었다”며 “지난 몇 개월 사이 다 정리해서 한국을 떠난 여성들도 있다”고 말했다.
 
강동완 교수는 “자신을 ‘하(下)바닥 사람’ ‘평백성’ 이라고 하는 탈북자들, 특히 중국에서 생활하다 온 여성들은 가족을 만날 수 있다는 기대는 하지만 돌아가는 남북 상황엔 크게 관심 없다”며 “대부분 먹고사는 일에 집중한다”고 했다. 반면, 중상층 이상 출신 탈북자들은 대외 활동을 하지 않더라도 “그렇게 속고도 모르나. 김정은은 핵을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김정은의 조작 이미지를 남한 사람들이 왜 구분하지 못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안타까워하는 경향이 있다고 소개했다.
 
4·27일 정상회담 때의 일이다. 북한 음식 연구가로 대북 인권 활동도 하는 이애란 자유 통일문화원 원장은 당시 정상회담 만찬에 오를 메뉴를 평가해 달라는 방송사의 요청을 거절했다. 이때 한 말이 탈북민들 사이에 화제가 됐다. 이 원장에게 물어봤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섭외 요청을 왜 거절했나.
“양심이 허락지 않아서 못한다고 했다. 살인자가 와서 뭘 먹든지 나는 관심 없다. 북한 사람들이 얼마나 고통을 겪고 있는데 내가 앉아서 그런 방송 할 입장이냐고.”
 
남북관계가 좋아지면 북한 사람들이 더 잘살 수 있다는 얘기도 하지 않나.
“북한 사람들의 고통은 왕조 독재 체제 때문이다. 그들이 어디가 모자라서 그렇게 고생하며 살겠나. 물자가 없어서 북한이 저리된 게 아니라, 체제가 잘못돼서다. 과거에도 조총련에서 물자가 대규모로 갔고, 여기 정부도 보냈다. 그럴수록 통치 세력만 힘을 얻어서 북한 주민들은 더 고통받는다.”
 
그래도 지난해 전쟁위기에서 벗어나 평화를 가져왔다고 하지 않나.
“김씨 왕조를 없애지 않는 한 북핵은 해결되지 않는다. 트럼프 대통령은 계약직이고 자신은 종신직이니 소낙비만 피하면 된다고 하는 일이다. 북한 사람들 300만명 굶어 죽을 때 조용했다. 그걸 평화라 하나. (핵 보유한) 깡패한테 무릎 꿇으며 사는 걸 평화라고 미화해선 안 된다.”
 
강동완 교수는 “탈북자 사회가 출신이나 탈북 경로, 현재 위치 등에 따라 분화하는 모습을 보인다”며 “분명한 것은 인권 단체 위축으로 탈북민 엘리트 사회가 무너져 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 인사는 “북한에 우호적인 정책을 펼친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도 탈북자 사회는 건재했는데, 지금은 정권의 짐이 된 듯한 분위기다. 한국 대학생들이 ‘태영호 체포조’, ‘박상학 체포조’를 결성하는데 뭔 말이 필요하냐”고 반문했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탈북인권단체 총연합회 34개 단체가 하나의 사무실을 얻자고 얘기할 정도라고 한다. 김흥광·이애란 대표 등은 유튜브 개인 방송으로 활동을 대체하고 있다. 현재 탈북자 중에 북한 최고위층인 태영호 전 영국 공사가 국가안보전략연구소에서 나온 뒤 ‘태영호의 남북동행포럼’ 블로그를 개설했다. 취재에 응한 많은 탈북 지식인들은 태 공사에게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 사망 후 탈북자 사회의 구심 역할을 기대하는 분위기였다.
 
김수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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