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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 인사이트] 시진핑은 시대의 영웅인가 역사의 반동인가

중앙일보 2018.08.21 00:02 종합 24면 지면보기
시진핑 장기집권 체제의 위험성
지난해 가을 중국 공산당 19차 대회에서 표방된 ‘신(新)시대’는 사실상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장기집권 시대 개막을 알리는 ‘시(習)시대’ 선언에 다름 아니다. 여기서 의문이 든다. 마오쩌둥(毛澤東) 시대 일인통치의 정치적 폐단을 너무 잘 알고 있고, 또 직접적 피해 당사자이기도 한 시진핑은 왜 이런 역사의 퇴행으로 보이는 변화의 길을 선택했을까. 그리고 이제 불확실성이 한층 커진 향후 중국정치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위험요인은 또 무언가.  

시진핑 신시대 선언 이후 중국은
장기집권 정당화 작업에 열 올려

마오쩌둥 우상화 현상 거론되며
공개 비판 목소리 나오기 시작해

경제와 엘리트정치 균열 생기면
시진핑 체제 안정성 흔들릴 전망

 
시진핑과 그의 참모들은 시진핑의 장기집권 체제 구축을 국내외적 도전을 이겨내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 믿는 듯하다. 먼저 국내적 도전은 개혁지체에 따른 위기의식이다. 중국은 그동안 고도성장을 이뤘지만, 경제사회구조의 질적 전환이란 과제를 풀지는 못했다. 2006년 제기된 ‘경제성장 방식의 전환’이란 개혁 목표는 뚜렷한 성과 없이 지금까지 구호만 반복되고 있는 실정이다. 강력한 개혁으로 질적 전환을 이루지 못하면 자칫 ‘중진국 함정’의 덫에 빠져들 수 있다는 위기감이 크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시진핑은 개혁의 가장 큰 장애는 기득권 엘리트층의 뿌리 깊은 부패구조와 개혁에 대한 저항에 있다고 본다. 집권 초기부터 반부패운동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전면적 개혁심화(全面深化改革)와 함께 엄격한 당의 통치(從嚴治黨)를 강조한 건 이런 맥락에서다. 시진핑의 국가경영은 반부패 운동을 통한 개혁 저항 세력의 제거, 전면적 개혁심화를 통한 경제사회구조의 질적 전환, 그리고 이를 실천하기 위한 효율적인 리더십 구축으로서의 권력집중이 하나의 패키지로 작동되고 있다. ‘반부패-개혁심화-권력집중’의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또 다른 도전은 국제정세 변화다. 세계적으로 민주주의가 퇴행하고 경쟁 관계에 있는 대국들의 경제민족주의가 부상하고 있다. 미국의 트럼프, 러시아의 푸틴, 일본의 아베, 그리고 인도의 모디 총리까지 자국 우선주의를 앞세우는 스트롱맨들의 등장은 중국에 위기와 기회를 동시에 제공한다. 미·중 무역전쟁은 그런 위기의 한 단면이다.
 
그러나 한편으론 중국에 기회이기도 하다. 미국의 리더십이 추락하며 중국이 도전할만한 정세가 도래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2014년에 공식화한 ‘중국특색의 대국외교’, 이른바 ‘시진핑 외교사상’에선 중국식 발전경험과 정치체제에 대한 강력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도광양회(韜光養晦)’ 전략을 버리고 ‘분발유위(奮發有爲)’ 전략으로의 전환을 선언했다. 중화민족주의 고취와 강력한 국내 리더십 구축만이 미국과의 경쟁을 이겨내고 강국의 꿈을 완성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신시대’라는 새로운 어젠다를 제시하고 고도의 권력집중과 장기집권을 선택한 시진핑은 성공할 수 있을까. 그의 희망대로 마오쩌둥의 ‘자주독립 실현(站起來)’과 덩샤오핑의 ‘부유한 중국 실현(富起來)’에 이어 ‘강대국 실현(强起來)’을 완성한 신시대의 역사적 위인이 될지, 아니면 중도 좌절로 모든 실패의 책임을 떠안은 채 역사의 반동으로 전락할지는 미지수다. 확실한 건 성공이든 실패든 그 공과를 시진핑 자신이 오롯이 떠안게 될 것이란 점이다.
 
시진핑 일인집권 강화를 정당화하기 위한 조치는 광범위하게 진행 중이다. 시진핑은 이제 당의 ‘핵심(核心)’을 넘어 ‘영수(領袖)’로 불린다. 또 당헌(黨章)에 ‘시진핑 사상’을 지도이념으로 삽입한 뒤 전 사회적으로 ‘시진핑 사상’ 학습 열풍을 조장하고 있다. 군에선 문혁 시기 마오쩌둥 어록을 그대로 모방한 시진핑 어록 소책자를 발간했다. 지린(吉林)성 창춘(長春)에선 시진핑 어록으로 지하철을 도배한 ‘시진핑 사상 열차’가 운행되기도 했다.
 
문혁 시기 마오쩌둥 우상화를 연상케 하는 이런 현상은 매우 위험하다. 일인지배체제의 공고화와 장기집권은 필연적으로 당내 간부들의 과도한 충성경쟁과 민심이반을 초래한다. 또 강력한 통제 속에서도 시민들의 불만은 표출된다. 지난 7월 초 상하이의 한 여성은 길거리에 걸린 시진핑 대형 사진에 먹물 세례를 퍼부으며 “시진핑 독재에 반대한다”고 외쳤다.
 
지식인들의 공개비판 목소리도 등장했다. 8월 1일엔 시진핑의 아프리카 순방에 대한 비판 인터뷰를 진행하던 산둥대 쑨원광(孫文廣) 교수가 생방송 도중 공안에 연행됐다. 7월 24일엔 칭화대 쉬장룬(徐章潤) 교수가 중국의 권위 있는 민간 경제연구소인 텐저(天則)경제연구소 웹사이트에 시진핑 독재와 중국정치의 퇴행을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
 
물론 이런 징후만으로 중국 정치체제의 위기를 논하기엔 이르다. 아직도 대다수 중국 국민은 생계에 직접적 타격이 없다면 정치는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이 많다. 중화민족주의 정서의 확산과 함께 집단적 자기만족과 최면상태에 빠져있다. 지식인들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상당수 지식인은 현재의 시기는 권력의 분산(分權)보다는 집중(集權)이 더 필요하다는 데 동의한다. 중국의 역사는 분권과 집권의 사이클이 반복되는 데 현시기는 집권이 옳다는 논리다.
 
여기에 강력한 사상통제에 따른 공포심도 작용한다. 2013년 당 9호 문건으로 하달된 이른바 ‘일곱 가지 금지(七不講: 헌정, 보편가치, 언론자유, 시민사회, 신자유주의, 당의 역사에 대한 허무주의, 중국특색사회주의에 대한 비판 금지)’ 지침은 모든 언론과 대학에서 철저하게 관철되고 있다.
 
향후 시진핑 체제의 안정성을 위협할 가장 중요한 변수는 경제문제와 엘리트정치의 균열 가능성에 있다. 중국 현대사에서정치 불안은 경제문제에 따른 민심이반과 상층 엘리트정치의 균열이 결합할 때 폭발하곤 했다. 마오쩌둥 시대 문혁의 혼란은 직전의 대약진운동 참사에 따른 민심이반과 엘리트정치에서의 이념투쟁으로 촉발됐다. 덩샤오핑 시대에 발생한 천안문(天安門) 사건 역시 급격한 인플레이션과 학생운동에 대한 지도부 내 이견 때문에 더욱 증폭됐다.
 
예측과 통제가 가장 어려운 경제문제가 폭발하면 공산당이 통치안정을 위해 활용하던 민족주의 정서가 부메랑이 돼 돌아올 수 있다. 강압 통치에 숨죽이던 비판자들과 반부패운동에서 숙청된 수많은 정적은 반격의 시기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일인 장기집권을 선택한 시진핑 체제는 과연 중국사회에 짙게 드리운 문혁의 집단적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을까. 글쎄다. ‘중화민족 부흥의 신시대’는 역설적으로 중국정치의 ‘불확실성의 신시대’를 재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문기
중국 베이징대에서 중국정치 전공으로 박사학위 취득. 진보와 보수의 진영논리를 넘어 한국의 국가발전 전략을 고민하는 민간 싱크탱크 (사)미래전략연구원 원장으로 활동 중. 중국의 정치변동과 한·중 관계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
 

이문기 세종대 국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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