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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도전 21번 낙방 … 소년범, 마침내 경찰관이 되다

중앙일보 2018.08.20 00:02 종합 14면 지면보기
박삼중 스님과 김모 순경이 지난 16일 경기도 안성에 있는 영평사에서 만났다. 소년원 출신인 김모 순경은 10년 동안 22번의 경찰공무원 시험에 응시한 끝에 결국 지난해 합격했다. [김상선 기자]

박삼중 스님과 김모 순경이 지난 16일 경기도 안성에 있는 영평사에서 만났다. 소년원 출신인 김모 순경은 10년 동안 22번의 경찰공무원 시험에 응시한 끝에 결국 지난해 합격했다. [김상선 기자]

‘2008년 1·2차 필기 불합격, 2009년 1·2차 최종 탈락…2017년 1차(상반기) 필기 불합격, 2017년 2차(하반기) 최종합격.’ 10년 동안 같은 시험에 스물한 번 도전했다. 마침내 스물두 번째 최종 합격의 영광을 안았다.
 

19세 때 술김에 ATM 부수다 체포
“좋은 향기 난다” 스님 말씀에 용기

26세 첫 도전, 최종면접 14번 고배
‘가장 선한 직업’ 경찰 포기 못 해

지난 6월 30일 경찰 공무원에 임용된 김모(36) 순경의 이야기다. 그의 합격이 더 의미 있는 건 긴 시간 굴하지 않는 도전을 했다는 점 외에 한 가지 더 있다. 그는 ‘소년범(少年犯)’ 출신이다. 소년범 출신의 경찰 임용은 전례를 찾기 어렵다.
 
법의 심판을 받던 그가 법을 집행하는 일을 맡기까지의 과정은 긴 고통이었다. 실패가 반복되자 2011년 5번째 도전 때부터는 가족들에게조차 시험준비를 숨겼다. 밤에 닥치는 대로 일하며 공부할 돈을 모았다. 낮에 휴식을 취해야 했지만, 천근만근인 몸으로 책상 앞에 앉았다. 사람과의 관계도 끊었다. 문득 불합격의 원인이 과거 범죄전력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면 괴로움·좌절감에 허덕였다. 하지만 그때마다 그를 일으켜 세운 건 ‘직업으로서 가장 선(善)한 일은 경찰’이라는 신념이었다.
 
지난 16일 경기도 안성에 있는 사찰 영평사에서 김 순경을 만났다. 영평사는 10대 소년범 김군의 절망을 깨뜨리는 ‘울림’을 준 박삼중(전국교도소재소자교화후원회 회장) 스님이 거처하는 곳이다. 김 순경은 스님께 정복 입은 모습을 보여드리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고 했다. 그는 익명을 요청했다.
 
울림의 인연은 15년 전이다. 당시 전국 12개 소년원에서 선발한 17명의 모범 보호 학생이 4박 5일 일정으로 일본 문화체험을 떠났다. ‘전례 없는’ 한·일 교류였다. 한국 부산의 자비사와 일본 후쿠오카의 남장원이 함께 후원하면서 성사됐다. 당시 자비사 주지가 바로 삼중 스님이었다. 김 순경은 모범 보호 학생 중 한 명이었다.
 
김 순경은 “부산으로 돌아오는 여정에서 삼중 스님께서 ‘너 한테서 좋은 향기가 난다’고 말씀하신 게 가슴에 깊이 박혔었다”며 “‘세상에 악취를 풍기기보다는 향기를 퍼뜨리는 사람이 되라’는 뜻이셨다”고 회상했다. 소년원생이라는 손가락질 받던 삶은 절망스러웠다. 이때 삼중 스님의 한마디가 놀라운 변화를 일으킨 것이다. 김 순경은 “마음에 연꽃이 피는 듯했었다”고 당시 울림을 기자에게 전했다. 울림은 삶의 전환점이었다.
 
그는 “그래서 경찰이라는 직업을 선택했다. 직업으로서 가장 선한 일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며 “하지만 주위에서 다들 말렸고, 돌아오는 답은 늘 이랬다. ‘음주운전 전력만 있어도 안 되는데…, 넌 안될 가능성이 커’였다”고 말했다. 김 순경은 26살 되던 해인 2008년 첫 도전 후 21번의 잔인한 좌절을 경험했다. 최종 면접단계에서는 14번 떨어졌다. 그 사이 30대 중반의 나이가 됐다. “그 기간은 내가 얼마나 어리석고 불완전하며, 죄 많은 인간이었는지 깨닫는 시간이었다”고 담담히 말하는 김 순경이다.
 
소년원을 가게 된 사연은 이랬다. 고교 3학년 때 시인으로 등단한 뒤 2002년 모 대학 문예창작과에 수석 입학했다. 하지만 ‘인생의 끝(심연)을 보고 싶다’는 문학 열병을 앓았다고 한다. 방랑 아닌 방황을 이어간다. 세상에 대한 회의도 컸다. 그해 11월 술에 취해 한 은행 현금인출기를 돌로 부수려 했다. 돈이 목적은 아니었지만, 곧 출동 경찰에 의해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당시 만 19세로 소년범 적용 대상이었다.
 
김 순경은 운명의 마지막 면접을 떠올렸다. 그는 “그동안에는 ‘이번에 떨어지면 또 도전하겠다’고 했지만 지난해 2차 시험 마지막 면접 때는 ‘다시 응시할지 모르겠다’고 한 걸로 기억난다”며 “다만, 면접관에게 ‘살아가면서 많은 부분이 바뀌고 변하겠지만, 인간에 대한 연민과 세상에 대한 선의 한 가지 만큼은 끝까지 품겠다’고 답변했다”고 밝혔다.
 
합격 통지서를 받은 날은 하염 없이 울었다. 9년 10개월의 세월 자체가 큰 공부였다고 전한다. 향기를 품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게 그의 다짐이다.  
 
안성=김민욱 기자 kim.min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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