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6년 한국인 최초로 글로벌 패션 회사 ‘코스(COS)’의 광고 캠페인에 참여한 가구 디자이너 문승지(왼쪽에서 두번째). 문 디자이너를 포함해 전세계 6명의 디자이너가 함께 했다.
“돌격 앞으로”를 외치며 오늘도 길을 만들어 가고 있는 이 젊은 가구 디자이너는 서울 장충동 복합문화공간 ‘파라다이스 집(ZIP)’에서 첫 번째 개인전(‘문승지.ZIP: 쓰고쓰고쓰고쓰자’전, 7월 19일~11월 3일)을 시작했다.

그런가하면 지난해 결성한 아티스트 그룹 ‘팀 바이럴스(Team Virals)’의 공동대표이자 아트 디렉터로서 다양한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SK그룹 계열 부동산개발기업인 SK D&D가 기획해 최근 완공한 역삼동 오피스텔 ‘비엘 106’의 내외부 디자인을 담당했다. 또 블랙야크가 인수한 미국의 친환경 아웃도어 브랜드 ‘나우(nau)’의 압구정 플래그십 스토어를 만드는 일도 총괄기획하고 있다.

문승지 가구 디자이너 및 작가가 서울 중구 동호로 268 파라다이스 문화재단 갤러리에서 재생가구 전시회인 '쓰고 쓰고 쓰고 쓰자' 전을 2018년 7월 19일부터 11월 3일까지 한다. '아껴쓰고 나눠쓰고 바꿔쓰고 다시쓰자' 를 구호로 한 아나바다 운동을 모티브로 쓰레기로 버려질 제래료를 이용해 가구를 만들어 전시했다. 문승지 디자이너가 포즈를 취했다. 신인섭 기자 2018.08.09.목
“말 안 듣는 제주 출신 꼬맹이”가 어떻게 국내외 기업으로부터 러브콜을 받는 디자이너로 성장하게 됐을까. 중앙SUNDAY S매거진이 전시가 열리는 ‘파라다이스 집’으로 찾아갔다.

복합문화공간 ‘파라다이스 집’에서 전시하고 있는 종이 화분. 테이크 아웃 커피잔을 활용했다.
문승지의 첫 번째 개인전 ‘문승지.ZIP: 쓰고쓰고쓰고쓰자’는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전국적으로 펼쳐졌던 ‘아나바다’ 운동을 오마주했다.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자는 당시 구호대로, 전시를 네 구역으로 나눠 구성했다. 그는 “폭염과 플라스틱 대란처럼 올 들어 많은 환경 이슈가 있었던 만큼 ‘아나바다’ 정신을 한 번 되새기면 어떨까 싶었다”며 “물건을 사용할 때부터 경제적인 측면뿐 아니라, 환경적인 측면까지 고려하는 작은 변화가 생겼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전시 첫 머리인 ‘아껴 쓰자’ 코너에서는 그를 세계 무대에 데뷔시킨 의자 ‘포 브라더스(Four Brothers)’를 볼 수 있다. 가로 2400㎜, 세로 1200㎜ 크기의 나무 합판 한 장으로 생김새가 다른 네 개의 의자를 만들었다.
‘쓰레기가 안 나오는 의자’가 컨셉트였다. 버리는 나뭇조각이 없도록 합판 위에 설계도를 그린 뒤 종이 오르듯 잘라내 조립했다. CNC(컴퓨터수치제어) 가공을 활용했다. 계원예술대 가구과 2012년 졸업작품이었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만들어진 의자가 가진 이야기의 힘은 컸다. 이듬해 글로벌 패션 브랜드 COS의 35개국 45개 도시 매장에 전시됐다. COS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카린 구스타프슨은 “생산 폐기물을 만들지 않고도 아름답고 일관성 있는 디자인을 만들어내는 그의 능력은 최고 수준의 혁신 사례임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자꾸 해봐야 직성이 풀려요. 하면서 배웁니다. 몸으로 부딪쳐야 아는 게 늘어갑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니까, 안 되더라도 좋은 경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포 브라더스 체어’처럼 합판 한 장을 잘라 네 개의 의자를 만들되, 가장자리를 구부려 변화를 준 ‘이코노미컬체어(Economical Chair)’.

기존 소파의 표피를 벗기고 대신 투명한 PVC를 씌워 안의 스펀지를 드러낸 ‘네이키드 체어(Naked Chair)’.
- 문전 박대당하거나 실패할 수 있다는 두려움은 없었나.
- “실제로 당했다. 하지만 공장 100군데를 돌다 보면 한 군데 정도는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한 곳 뚫으면 소개 받아 두 곳으로 만들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당시 귤 박스를 차에 넣고 다녔다. 호의적인 공장 사장님께 ‘저 제주 사람인데 이거 드릴게요’라고 하니 아주 좋아하시더라. 그때 만난 사장님들이 지금도 파트너로 지내고 있고, 그분들이 연결해준 덕에 현장 인맥이 늘었다.”
- ‘아님 말고’ 정신이다.
- “자꾸 해봐야 직성이 풀린다. 하면서 배운다. 몸으로 부딪쳐야 아는 게 늘어간다.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니까, 안 되더라도 좋은 경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해외 유수 매체에 졸업작품을 소개하는 e메일을 보냈고, 그 결과 COS와 협업하게 됐다.”
- 졸업 직후 만든 애완동물 가구 브랜드 ‘엠펍’은 시련을 주었는데.
- “쫄딱 망했다. 빚이 2억 원 가량 생겼다. 지금도 갚고 있다. 당시는 파산 신청도 생각하고 경제사범으로 감옥 가는 상황까지 상상하기도 했는데, 그 때의 경험 이후 별로 힘든 게 없다. 지금은 빚이라 절대 생각 안 한다. 스스로한테 투자한 거라고 생각한다. 이후 나는 많이 성장했다. 앞으로 더 성장할 것을 계산해보면 빚 이상의 돈을 벌 수 있을 거라 자신한다.”

반려동물을 위한 가구 브랜드 ‘엠펍’에서 만든 개집

카페 뉴벨의 정경.

김치 버무릴 때 쓰는 고무 대야에 시멘트를 넣어 굳혀 만든 의자 ‘새 로운 형태의 김치 프로젝트’
“연예인 기획사 개념인데, 아티스트에게도 기획사나 레이블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엠펍’을 창업했을 당시 영업하고 세무처리하고 디자인하고 저 혼자서 모든 것을 해야 하니 버겁더라고요. 디자인하는 시간은 10%도 안 됐어요. 대부분의 디자이너가 브랜드를 만들었다가 실패하는 이유가 이런 이유 때문이에요. 그래서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팀을 결성하고, 각자 잘하는 것에 집중하는 구조를 만들었죠. 디자인으로 돈 버는 게 목표입니다.”

팀 바이럴스가 브랜딩 및 디자인을 맡은 부산 송정 카페 ‘뉴벨’에서 만날 수 있는 ‘포 브라더스 체어’.

팀 바이럴스가 내외부 디자인을 맡은 오피스텔 ‘비엘 106’의 조감도.
팀 바이럴스 공동대표로 문승지는 고향인 제주에서는 창고 개조 프로젝트도 기획 중이다. 오래된 동네에 버려진 창고를 방ㆍ카페 등 다른 기능의 공간으로 디자인하는 프로젝트인데, 펜션이라면 한 건물에 있을 법한 여러 기능의 공간들을 마을 안에 분산시켜 마을 안을 계속 돌아다니게 하는 게 목적이다. “지역 상권과 문화를 발전시키고 싶다”는 소망이 담겼다.
가구 디자이너로 문승지는 유럽 전시회를 준비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영어 공부가 숙제라고 했다. 2016년 한국인 최초로 COS의 광고 캠페인에도 나왔던지라, 영어 능통자일 줄 알았던 그였기에 의외의 과제였다.
“처음엔 정말 못했는데, 지금은 아직 비즈니스까지는 아니고 친구랑 대화할 정도는 구사해요. 영어 공부는 제가 죽을 때까지 해야하는 거니까, 뭐, 하면 되죠.”
인도 영화 ‘세 얼간이’에서 나온 명대사 ‘All Is Well(알 이즈 웰)’을 왼팔에 새겨 넣은 청년 문승지는 가벼웠다. 밑져야 본전인 청춘이니까.
글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사진 신인섭 기자·파라다이스문화재단·팀 바이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