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본문

"사람이 자원이다” 40년 투자 결실 맺는 ‘인재경영’

중앙선데이 2018.08.18 01:00 597호 17면 지면보기
고 최종현 회장(왼쪽)이 1986년 해외 유학을 앞둔 한국고등교육재단 장학생들에게 장학증서를 전달하고 있다. [사진 SK]

고 최종현 회장(왼쪽)이 1986년 해외 유학을 앞둔 한국고등교육재단 장학생들에게 장학증서를 전달하고 있다. [사진 SK]

“21세기 한국은 세계 10대 경제강국이 될 것이다. 지금은 변방의 후진국이지만 인재양성 100년 계획을 세워 지식산업사회를 구축해 일등국가로 발전해야 한다.”
 
고(故) 최종현 SK그룹 회장이 40년 전인 1978년 한국고등교육재단 장학생과 나눈 대화다. 오는 26일로 타계 20주기를 맞는 최 회장은 ‘사람’을 가장 중시했던 대표적 기업인이었다. 최 회장은 우리나라와 같이 자원이 부족한 나라는 사람이 가장 큰 자원이고, 기업 경쟁력 역시 사람에서 비롯된다고 확고하게 믿었다. 최 회장의 많은 업적 중 ‘인재보국(人才報國)’의 실천은 20주기가 되는 지금에 와서도 가장 빛난다. 한국 경제가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지 못하고 안팎으로 위기에 처한 지금 최 회장이 평생을 두고 가장 중시했던 인재양성과 인재경영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다가오고 있다.
 
올해로 설립 44년째를 맞는 한국고등교육재단(KFAS)은 최 회장의 분신과도 같은 존재다. 최 회장은 세계적 학자 양성이란 목표를 가지고 사재를 출연해 1974년 한국고등교육재단을 설립했다. 재단의 지원을 받아 하버드·시카고·스탠퍼드·MIT·예일·프린스턴·존스홉킨스 등 해외 유명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인재는 740여 명이나 된다.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알 수 있는 우리 사회 지도자들이 대거 포함돼 있다. 동양계 최초 예일대 학장인 천명우 박사(심리학), 한국인 최초 하버드대 종신교수 박홍근 박사(화학과)도 재단이 지원한 석학들이다.
 
재단의 해외유학장학생으로 선발된 김용학 연세대 총장은 1980년 시카고대학에 들어가 86년 사회학 박사학위를 땄다. 김 총장은 “당시 이공계의 경우 국가장학금으로 유학하기도 했지만 사회과학 쪽은 해외 유명 대학 유학을 감히 꿈꾸기도 어려웠다”고 말했다. 김 총장은 “기업 총수가 금전적인 것 외에 비금전적인 것도 중요시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며 “기업이 사회적 가치 창출에 기여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느꼈다고 회고했다.
 
 
“기업 이익은 처음부터 사회의 것”
 
최 회장이 프로그램 폐지 위기에서 구해낸 ‘장학퀴즈’. [사진 SK]

최 회장이 프로그램 폐지 위기에서 구해낸 ‘장학퀴즈’. [사진 SK]

정종호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도 재단의 지원을 받아 2000년 예일대 박사 학위를 땄다. 정 교수는 "미국 시카고대학에서 공부한 최 회장은 휴먼 캐피털(인적 자본)을 중시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최 회장은 이왕 할 거면 세계 최고 수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고등교육재단은 초일류 인재 양성을 위해 학비는 물론 생활비까지 모든 비용을 다 부담했다. 정 교수는 “아르바이트 같은 것 하지 말고 공부에만 전념하라는 취지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사회에 빚진 것이니 받은 만큼 사회에 봉사하라”는 최 회장의 메시지가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고 정 교수는 회고했다. 최 회장은 실제로 1995년 울산대공원 조성을 약속하며 "우리는 사회에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라 빚을 지고 있는 것이다. 기업 이익은 처음부터 사회의 것이었다”고 말했다.
 
최 회장이 처음부터 재원이 넉넉해 재단을 설립한 것은 아니었다. 설립 당시만 해도 SK는 국내 50대 기업에 겨우 포함될 정도의 중견기업에 불과했다. 따라서 상당한 비용이 소요되는 장학재단 설립을 두고 회사 내부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컸다고 한다.
 
한국고등교육재단은 설립 때부터 지금까지 조건 없는 지원, 유학 전 사전교육, 유학생과의 토론 등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정범모 전 서울대 교수의 회고에 따르면 당시 회사 임원 일부가 “해외 유학생 장학금으로 연간 4만~5만 달러는 너무 많다”는 의견을 내놓자 최 회장은 "이왕이면 최고 수준의 장학금으로 합시다. 돈 좀 아낀다고 뭘 하겠소. 그리고 돈 걱정 없어야 24시간 공부에 전념할 수 있지 않겠소”라고 답했다고 한다. 직원 중에는 몇 년 치 봉급을 다 모아야 겨우 유학생들의 1년 치 유학비밖에 되지 않는다며 직원 복지에 더 신경을 써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해외 유명 대학 박사 740여 명 길러내
 
중국판 장학퀴즈. [사진 SK]

중국판 장학퀴즈. [사진 SK]

거액의 유학비용을 지원하는 조건은 ‘국가와 사회를 위한 일꾼이 되어 달라는 것’ 단 한 가지뿐이었다. 절대 SK로의 입사는 원하지 않는다는 점을 장학생들에게 강조해 왔다.
 
재단 대학특별장학생 1기로 뽑혔던 최병일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최 회장은 단지 장학금을 쾌척하고 만 것이 아니라 학생들에게 애정을 쏟고 영혼을 불어넣은 선각자였다”고 회고했다. 최 교수는 “최 회장이 뿌린 씨앗은 40년이 지난 지금 결실을 맺고 있다”며 “이제는 그분의 인재 선행투자로 성장한 우리 세대가 지식을 공유하고 창출하는 데 앞장서서 우리 사회의 질적인 도약에 기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고등교육재단 장학생들과 소프트볼을 즐기는 최종현 회장. [사진 SK]

한국고등교육재단 장학생들과 소프트볼을 즐기는 최종현 회장. [사진 SK]

최종현 SK 회장 하면 누구나 떠올릴 수 있는 키워드는 ‘장학퀴즈’다. "청소년에게 유익한 프로그램이라면 열 사람 중 한 사람만 봐도 조건 없이 지원하겠다.” 최 회장은 1973년 TV ‘장학퀴즈’가 광고주를 구하지 못해 폐지 위기에 처하자 구원투수를 자청하고 나섰다. SK(당시 선경)는 그해 2월 18일 방영 프로그램부터 이례적으로 단독 광고주로 든든한 후원자가 됐다.
 
장학퀴즈는 지금까지도 명성을 유지하고 있는 대표적인 청소년 지식 경연 프로그램의 원조다. 1996년 MBC에서 EBS로 옮겼으며 지난달 말까지 총 2200회 이상 방영됐다. 2만 명이 넘는 장학퀴즈 출신들은 학계·재계·법조계·의료계·언론계 등 사회 각 분야에 진출해 오피니언 리더로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인간은 석유와 비교도 되지 않는 중요하고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자원이다. 석유는 한 번 쓰면 없어지지만 인간의 능력은 사용할수록 향상되고 가치가 커진다.” 최종현 회장의 메아리는 그가 떠난 지 20년이 지난 아직도 귓가에 쟁쟁하다. SK그룹은 최종현 회장 20주기를 맞아 오는 24일 서울 워커힐호텔 비스타홀에서 경영철학을 재조명하는 행사를 가질 예정이다.
 
한경환 기자 han.kyunghwan@joongang.co.kr

구독신청

공유하기

Innovation Lab

Branded Content

광고 닫기